심리학에서 모두 파악했다고 생각한 개인이 특정한 조건에서는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며 행동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심리학은 설명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 특정한 조건이란 ‘심리적 군중’의 성질을 띤 인간무리에 개인이 들어간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군중’이란 무엇인가? 군중은 개인의 정신생활에 그토록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어떻게 얻는가? 그리고 군중이 개인에게 강제하는 심리 변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이론적인 집단심리학의 과제다. --- p.16~17
그렇다면 ‘군중’이란 무엇인가? 군중은 개인의 정신생활에 그토록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어떻게 해서 얻는가? 그리고 군중이 개인에게 강제하는 심리 변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이론적인 집단심리학의 과제다. 추측건대 이 과제에 접근할 때는 세 번째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개인의 변화된 반응에 대한 관찰은 집단심리학에 재료를 제공한다. 무언가를 설명하려면 먼저 설명의 대상을 서술해야 하기 때문이다. --- p.17
르 봉이 군중의 지도자에 대해 말한 것은 별로 철저하지 못하며, 기본 원리를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중략)대체로 르 봉은 지도자가 광적으로 믿는 사상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믿는다. 그 밖에 그는 이 사상과 지도자에게 신비로우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부여하는데, 그는 이 힘에 ‘위세Prestige’라는 이름을 붙인다. --- p.27~28
르 봉의 견해에 들어 있는 두 가지 명제, 즉 군중에서는 지적 활동이 집단적으로 억제된다는 명제와 감정이 고조된다는 명제는 그 직전에 시겔레가 공식화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르 봉 고유의 것으로 남는 것은 무의식이라는 관점과 원시인의 정신생활과의 비교라는 관점 이 두 가지뿐인데, 이 두 관점도 물론 이전에 여러 번 언급된 것이다. --- p.30
교회(우리는 편의상 가톨릭교회를 보기로 삼을 수 있다)와 군대가 그 밖의 점에서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이 두 집단에서는 집단의 모든 개인을 평등한 사랑으로 대하는 우두머리(가톨릭교회에서는 그리스도, 군대에서는 총사령관)가 있다는 똑같은 기만(환상)이 통용된다. 모든 것은 이 환상에 달려 있다. 환상이 사라지면, 외적인 강제가 작용할 경우 교회와 군대는
곧 붕괴할 것이다. --- p.45
다른 집단 유대가 종교적인 집단 유대를 대신한다면-지금은 사회주의의 집단 유대가 그렇게 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데-종교전쟁 시대와 똑같은 불관용이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나타날 것이다. --- p.52
정신분석이 증명한 바에 따르면, 두 사람 사이에 오래 지속되는 친밀한 감정 관계-결혼, 우정,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거의 모두 적대적인 거부 감정의 앙금을 지니고 있지만, 이것은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인지되지 않을 뿐이다. 동료 간에 다툴 때나 부하가 상사에 대해서 불평할 때,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사람들이 좀 더 큰 단위로 모일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두 집안이 혼인으로 맺어질 때마다 각 집안은 상대방 집안보다 자기네가 더 낫거나 신분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이웃한 두 도시는 서로 질투하는 경쟁 상대가 된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다른 마을을 경멸하며 깔본다. 바로 인접한 두 종족은 서로 멀리한다. --- p.54~55
집단이 형성되면 이 모든 불관용이 일시적으로든 영구적으로든 집단 안에서는 사라진다. 집단 형성이 지속되거나 확대되는 한에서는, 개인들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독특한 개성을 참아내고, 자신을 그와 같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어떤 반감도 품지 않
는다. 우리의 이론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런 나르시시즘의 제한은 오직 한 가지 요인에 의해서만 생겨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리비도 유대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오직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즉 대상에 대한 사랑뿐이다. --- p.56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동일시에서 자아가 어떤 때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모방하고, 또 어떤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모방한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동일시가 부분적이며 지극히 제한된 것이어서 대상으로 삼은 인물의 한 가지 특징만 빌려 온다는 것도 우리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다. --- p.62
집단이 우리에게는 원시 유목집단의 재생인 것처럼 보인다. 마치 모든 개인의 마음 속에 원시인이 잠재적으로 보존된 것처럼, 그 어떤 인간 무리에서도 원시 유목집단이 다시 생겨날 수 있다. 집단 형성이 사람들을 통상적으로 지배하는 한, 우리는 거기서 원시 유목집단의 존속을 확인한다. 우리는 집단심리가 가장 오래된 인간 심리라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 p.84
오늘날에도 집단 속의 개인들은 지도자에게 똑같이 공평하게 사랑받는다는 환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도자 자신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필요가 없다. 그는 지배자의 성질을 지닐 필요가 있다. 즉, 절대적으로 자기만을 사랑하지만 자신만만하고 독립적일 필요가 있다.
--- p.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