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를 찌르는 통증이 느껴졌다. 왼쪽 귀에서 통증과 함께 멍한 폭풍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피가 말라붙은 왼뺨을 카펫에 대고 있다. 왼쪽 귀 속에는 무열의 정액이 가득 찬 채 말라가고 있었다... 귀 속의 정액을 향해서 수천 마리의 개미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개미들은 카펫과 내 가슴과 목에 뒤덮여 있었다. 귀의 통증과 소음은 그것 때문이었던 것이다.
--- p.186-187
'이 나쁜 년.'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남자가 여자를 때릴 거라고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고 무열도 코밑을 긁고 있던 요리사도 그리고 요릿집 안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그러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의 손목을 잡고 기름이 끓고 있는 튀김 솥 안으로 집어넣었다.
'당신 나를 절대로 떠날 수 없을 거야아아아아아아악!'
무서운 광경이었다. 여자의 얼굴이 불붙은 숯덩이처럼 검붉게 변하더니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커지고 고통과 쇼크때문에 기절했다. 튀김 솥에서 꺼낸 여자의 손은 껍질을 벗겨낸 짐승처럼 피부가 터지고 짓물러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종업원 중의 한 명이 재빠르게 119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뭐 하는 거요? 튀김 기름을 망쳤잖아. 변상해 줘야겠어.'
요리사가 사색이 되었다. 무열이 젓가락을 테이블에 집어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여기서 나가자.'
요릿집을 나가면서 나는 보았다. 피부가 터지고 짓무른 여자의 손. 끔찍하게 부풀어 올라 반쯤 익어버린 채 파괴된 조직 사이로 피가 벌겋게 배어나오는 살.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의 고통. 붉은 손이다.
--- p.90-91
'우리들의 목적은, 문서화 되어 있지는 않지만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삶입니다. 아주 평화롭죠. 그러나 그런 삶은 많은 것들의 규제를 받습니다. 법률이나 제도나 관습이나 규법이죠. 그런 것들은 우리를 외롭게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안정감을 주고 행복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두가지 세계에 다 의존해서 생을 마치죠.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어도 처음에 외로웠던 사람들은 끝까지 외롭습니다. 타협을 선택하기 싫은 사람은 없어요. 인간은 약하니까요'
--- p.52
앞으로 남자 따위는 절대로 사귀지 않겠어. 정말이야. 어두운 길을 사납게 운전하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그때 스물아홉 살이었고 두 명의 남자와 동거한 적이 있지만 진지한 의미의 사랑에 빠져본 경험은 없다. 아마 그런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방부의 대위가 특별히 나빴던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적절한 상황에서 그에게 적절하게 행동한 것에 불과하다. 권력 구조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 세상 사람들의 이치를 그와 나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행위와 남녀가 같이 옷을 벗거나 혹은 입은 채 관계를 맺게 되는 행위는 그 동기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엄청나게 나쁜 일을 당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 p.46
당신 지옥을 예언하는 군요. 그리고 붉은 손 클럽이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죠. 이반은 크게 웃었다. 나를 과대 평가하는 군요, 내가 무슨 신이라도 됩니까.나는 그런 신성의 발바닥의 핥을 정도의 존재도 못 되죠.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 p.95
나는 천천히 카펫 위로 쓰러졌다. 나는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살고 싶다는 마지막 욕구, 왜 없었겠는가. 그러자 폐에서 산소와 피가 새어나오는 듯 했다. 날카롭게 부러진 갈비뼈가 살을 찢고 나온 것이다. 내 손이 찢어진 살 위에 가서 피에 젖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자리한 붉은 손 클럽의 모임이다. 그리고 끝내 접근할 수 없었던 인생의 사람, 아방가르드 요리 편집장이 선택한 그 붉은 손 클럽의 그림이었다.
이반, 나는 붉은 손 클럽에 왔어요.
난 당신과의 약속을 지켰어요. 그러니,
이제 그를 만나면 죽이세요.
--- 본문 <붉은 손 클럽으로 가다> 중에서
나는 냉장고를 뒤져 과일 통조림과 초콜릿 쿠키를 찾아 부스러기 한개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리고 커피도 마셨다. 식욕은 왕성해서 커피 찌꺼기라도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신촌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반에게 전해주세요.' 내가 아무 말없이 불쑥 엽서를 내밀자 튀김 솥앞에 서 있던 요리사가..
--- p.129
그러나 아방가르드 요리 편집장이 소파에 앉으면서 그 위에 있던 신문들을 치우자 티슈에 싸여져 있던 사용한 콘돔이 가펫에 툭 떨어졌다. 사용한 지 몇 달이나 지나 완전히 말라붙어 있는 것이었다. 아방가르드 요리 편집장의 눈과 내 눈이 동시에 그것을 향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고 아방가르드 요리 편집장은 무표정했다. 나는 발로 그것을 소파 아래로 밀어넣었다. 아방가르드 요리 편집장은 못본 체했다. 나는 가스 불을 켜고 물을 올렸다. 양파와 고추를 볶고 라면이 익을 무렵이 되어 흰 된장을 아주 조금 플어넣고 기다릴 때 아방가르드 요리 편집장이 내 뒤로 다가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p.25-26
"미안해. 난 아파. 나갈 수가 없어."
전시회가 시작된 다음 신미술아카데미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나는 전시회가 열리는 백화점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정말 아팠던 것이다. 비를 맞은 다음의 가벼운 열 같은 것으로 시작했지만 나는 약을 먹지도 않았고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열은 점점 더 높아지기만 했다. 우편함에는 세금 고지서들이 쌓여갔다. 나는 그것들을 가지고 와 소파 아래에 던져버리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한낮에 벨이 두 번 울렸지만 나가보지 않았다. 분명히 싸구려 나염의 넥타이를 팔러 다니는 행상일 것이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엽서를 썼다.
이반. 만나고 싶어요. 당신이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나는 붉은 손 클럽에 가입하겠습니다. 나는 부자는 결코 아닙니다만 약간의 돈이라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주술을 사고 싶군요. 한나.
마지막에는 세 가지 다른 방법으로 서명했다. 면도칼로 손가락 끝을 X자로 긋고 거기서 나온 피로 서명한 것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술을 향해 도취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어서 압박 붕대를 감아도 피가 스며나왔다. 흰 이불과 침대 시트에 피가 떨어졌다. 그리고 열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옛날부터 나는 병이 나면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기보다는 가만히 누워 병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편이었다. 열이 높아 혼수상태에 있으면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때 내 뱃속에서는 강아지가 끙끙거리며 짖는 듯한 소리가 나고 온몸이 멍하게 풀리고 눈동자를 움직일 수가 없다.
---pp.125~126
"미안해. 난 아파. 나갈 수가 없어."
전시회가 시작된 다음 신미술아카데미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나는 전시회가 열리는 백화점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정말 아팠던 것이다. 비를 맞은 다음의 가벼운 열 같은 것으로 시작했지만 나는 약을 먹지도 않았고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열은 점점 더 높아지기만 했다. 우편함에는 세금 고지서들이 쌓여갔다. 나는 그것들을 가지고 와 소파 아래에 던져버리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한낮에 벨이 두 번 울렸지만 나가보지 않았다. 분명히 싸구려 나염의 넥타이를 팔러 다니는 행상일 것이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엽서를 썼다.
이반. 만나고 싶어요. 당신이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나는 붉은 손 클럽에 가입하겠습니다. 나는 부자는 결코 아닙니다만 약간의 돈이라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주술을 사고 싶군요. 한나.
마지막에는 세 가지 다른 방법으로 서명했다. 면도칼로 손가락 끝을 X자로 긋고 거기서 나온 피로 서명한 것이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술을 향해 도취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어서 압박 붕대를 감아도 피가 스며나왔다. 흰 이불과 침대 시트에 피가 떨어졌다. 그리고 열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옛날부터 나는 병이 나면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기보다는 가만히 누워 병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편이었다. 열이 높아 혼수상태에 있으면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때 내 뱃속에서는 강아지가 끙끙거리며 짖는 듯한 소리가 나고 온몸이 멍하게 풀리고 눈동자를 움직일 수가 없다.
---pp.125~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