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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6

태조 왕건 6

: 삼한의 제왕

이환경 | 밀알 | 2000년 09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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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48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41801962
ISBN10 894180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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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환경
1950년 인천에서 출생. 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에 『겨울 바람』이 당선하여 등단했으며 86년 스포츠 서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불멸의 땅』이 당선되었다. 80년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로 입문한 이후 대표작으로는 『훠어이 훠어이』, 『무풍 지대』, 『적색 지대』, 『파천무』, 『용의 눈물』외에 단막극 다수를 썼다. 현재 방송작가 협의회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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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는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마침내 철원에 이르렀다. 그의 미륵 사상은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구원의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철원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미륵진인이 현신할 것이라는 참언이 떠돌고 있었다. 궁예는 그들에게 빈부의 귀천이 없는 세상을 설파하고 다녔다. 그런데 궁예가 참언의 주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많은 백성들이 궁예의 얼굴을 보기 위해 철원으로 몰려들었다. 궁예는 그들에게 구세주로 받아들여졌다. 궁예는 미륵 사상을 설파하고 다녔다.

"미륵대장만세!"

"만세!"

백성들은 궁예가 이르는 곳마다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다. 그가 강설을 할 때는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철원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도성과 황궁이 건설되고 있었다. 곳곳에 공사를 하는 역부들이 보이고 역부들을 독려하는 장수들도 보였다. 왕건이 자신이 송악에 황궁을 건설할 때보다도 훨씬 더 큰 규모로 도성이 건설되고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공사에 동원된 역부들이나 백성들의 얼굴에 고달파하는 빛이 역력했다. 철원으로 천도하기 위한 공사가 강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역력히 알 수 있었다.
--- pp.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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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888년, 단기로는 3221년인 통일신라 진성여왕 2년 여름의 서라벌. 왕륭 부자는 송악을 떠나 수도인 서라벌로 들어서고 있었다. 송악 지방의 호족이자 이 일대의 영주이기도 했던 왕륭은 이때 열 살 난 아들, 왕건을 데리고 그의 본업인 무역을 겸해 신라 왕정의 고관들에게 정례적인 인사를 전하기 위해 이 곳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서라벌로 오면서 도적 떼를 만나게 되었고 우연히 애꾸눈의 젊은 승려를 만나 도움을 얻게 된다. 그는 훗날 궁예라 불리는 사나이였다. 그리고 왕륭 부자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당시의 실력자 각간 벼슬의 위홍이라는 대신 집에 머물게 되면서 또 한 사나이를 보게 된다. 당시 여왕의 근위부대 비장이면서 각별히 위홍을 경호했던 무장 견훤이라는 사나이였다. 이 때 왕건의 나이는 열 살, 궁예는 열 여섯 살, 견훤은 스무 살이었다. 훗날 이 세 사나이가 후삼국을 놓고 자웅을 겨루는 당대의 영웅들인 것이다.

이 때의 신라는 혼란의 극치였다. 당나라의 힘을 빌어 삼국을 통일한 지 어언 200여 년, 대망의 통일이 이루어지자 신라의 왕정은 귀족들간의 치열한 왕권 싸움과 벼슬아치들의 사치와 향락이 극에 달해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진성여왕이 왕위에 오른 이 시기는 부패하고 쇠퇴해 가는 국정의 어지러움이 그중 최고조에 달해있던 때였다. 그리고 천 년 사직의 몰락을 예고하는 조짐들이 서서히 그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한 시기였다. 진성여왕은 왕위에 오르자 처음에는 나름대로 선정을 베풀고자 노력했었다. 그러나 여왕은 곧 미혹에 빠져 자신의 숙부이자 유모의 남편이기도 한 위홍과 불륜에 빠져 모든 눈을 가리우게 된다. 백성들의 원성은 쌓여갔고 왕명은 그 권위를 잃어갔다. 가뭄과 전염병이 끊임없이 창궐하였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유랑자가 되거나 도적이 되어 약탈을 일삼았다. 그리고 드디어는 곳곳에서 무리들이 떼를 지어 일어나 이른바 반란의 불길들이 솟기 시작했다. 사벌주(상주)에서 일어난 원종과 애노의 반란을 신호탄으로 각지에서 농민들의 봉기가 이어졌고,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지방 호족들은 신라 정부에 반감을 품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나갔다. 바야흐로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시대는 난세를 평정할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선은 천 년 서라벌의 지기가 쇠퇴하고 새로운 시대의 기운이 송악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았다. 십여 년 전 도선은 장차 삼한을 통합할 군주의 탄생을 예견했었다. 그가 바로 송악일대를 중심으로 해상의 상권을 잡고 있었던 왕륭의 아들, 왕건이었던 것이다.

서라벌에는 견훤이 제일 먼저 와있었다. 그는 사벌주의 한 쪽을 맡고 있던 농민 출신의 호족 아자개의 아들이었다. 나이 열 다섯에 심복 부하들과 함께 수도였던 서라벌로 왔는데, 그 이면에는 그가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 뜻이 맞지 않았다. 아버지는 장자인 자신보다는 동생들을 편애하였고 또한 계모의 말에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였다. 그는 타고난 장사였고 용력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 밑에서는 그 뜻을 펴기 어려웠었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 사벌주에 주둔했다가 서라벌로 돌아가는 군대에 편승하여 지금처럼 왕실의 근위부대 부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성여왕 2년인 이 해에 왕륭 부자와 궁예를 상면하였던 것이다.

왕건 일행과 만나 서라벌로 들어온 궁예는 지금의 영월 지방에 있는 세달사라는 절의 승려였다. 그는 신라 왕실의 서자였다. 경문왕의 아들로서 후비의 소생이었다. 그가 애꾸눈이 되어 승려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의 혼란했던 신라 왕실의 권력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름이 남아있지 않은 그의 어머니는 여러 왕비들의 극심한 견제를 받았고 거기다 아들까지 낳자 모함을 받게 된다. 더구나 반역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오월 단오가 그의 생일이었고 그가 태어났을 때, 상서롭지 못한 무지개가 집을 감쌌다 하여 당시 왕실의 일관은 궁예의 죽음을 경문왕에게 권하게 된다. 그리하여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궁예는 한 쪽 눈을 잃었고 유모와 함께 달아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궁예는 유모와 함께 유리걸식을 하다가 세달사에서 승려가 되었는데 타고난 총명함이 지나쳐 어려서부터 그 많은 불서를 다 섭렵하였고 서라벌로 올 때쯤에는 이미 그 스승이 가르칠 것이 없었다. 당시 혼란한 세태 속에서 승려들도 참선을 위주로 하는 승려들과 이른바 재가화상이라 하여 속세와 별다름이 없는 승려로 나뉘어 있었는데, 궁예는 양쪽을 다 넘나들었다. 때문에 재가화상들이 주로 하는 무예도 일가견이 있었고 불경 공부에도 막힘이 없었다. 그가 서라벌에 온 것은 오랜 승려로서의 길을 벗어나 나름대로의 뜻을 펼치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그는 어지러운 세상을 보며 나름대로 세상을 구제할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불법에 전해져오는 내세의 미륵사상에 그는 특히나 심취해 있었다. 이른바 그 스스로 난세를 구원하는 미륵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서라벌로 온 것은 세상을 돌아보고 또한 자신의 출생의 내력을 한 번 더 확인해 보려는 생각에서였다.

왕건은 예성강의 대무역상이며 송악일대의 영주였던 왕륭의 아들이다. 왕륭은 선친대대로 이어져 온 무역상으로서 일찍부터 범상치 않은 아들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진나라의 여불위가 나라를 얻기 위해 장사를 했던 것처럼 그 또한 아들인 왕건을 위해 일찍부터 많은 것을 투자하고 있었다. 그의 조상은 당나라에서 건너온 신라(그중 옛 고구려) 출신의 무역상이었다. 그 때문에 왕륭은 일찍부터 바다 사정에 능통했다. 더불어 중국과 일본을 지나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 사정에도 매우 밝았다. 그는 이 어지러운 난세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잘 알고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아낌없이 자식을 위해 투자했다. 자신의 세력권을 넓혔으며 인심을 모으는데 주력했고 신라 왕실과 조정에도 주기적으로 인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나 왕건이 태어나기 전, 당대의 신승으로 불리는 도선선사와의 만남은 운명적인 것이었다. 도선은 송악에 와서 산세를 보고 다니다가 왕륭을 보았고 천혜의 명당 자리에 집을 지으려하는 왕륭을 보면서 '메기장을 심을 땅에 왜 삼을 심느냐'라고 하였다. 그리고 먼 훗날 삼한을 호령할 인재가 나올 땅이라고 하며 명년에 아들을 낳을 것까지도 예언해 주었던 것이다. 이 때 왕륭은 도선이 시키는대로 그 정지한 땅에 서른 여섯 칸의 집을 지었고 왕건이 태어나자 더욱더 그를 교육시키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서라벌에서 왕륭 부자는 각간 위홍의 집안에 머물렀다. 그들이 만나본 위홍은 이미 예의 총명한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조카인 진성여왕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여왕의 유모였던 본처와는 이미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여왕의 질투 때문이었다. 가뭄과 전염병 그리고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은 여왕을 비교해 암탉이라 부르며 망해가는 왕실을 저주하였고 연일 왕정을 비난하는 격문들이 서라벌에 나돌았다. 왕륭은 이미 신라가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보고 있었다. 세상 인심을 가리고자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였고 사치와 향락을 유지하고자 백성들의 조세를 다그쳤다. 거리에는 시체들과 굶주린 백성들로 즐비했고 그 한 쪽에는 부패한 관료들의 술자리와 잔치소리들이 요란했다. 은자에 묻혀 지내던 당대의 시인, 왕거인을 붙들어 가두어서 민심을 잡고자 하였으나 왕거인은 스스로 옥문에 깨져 제 발로 걸어나오는 일이 일어났다. 한 여름에 서리와 우박이 쏟아졌고 대궐 기와 위에서 부엉이는 울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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