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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바다 (하)

기억의 바다 (하)

이정길 | 문학과현실사 | 2000년 10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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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63쪽 | 404g | 153*224*20mm
ISBN13 9788974802288
ISBN10 8974802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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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정길
경북고 졸업. 고려대학교 독문학과 졸업한 뒤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독문학ㆍ철학ㆍ역사를 전공. 현재 한양대 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0년 '현진건 문학상'을 수상.

저서로는 『춤추는 철학도』『안골 이야기』『휘파람 골짜기』『프로 조객』『우물 속의 달』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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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타자구요!"

"어쩔려고요?"

"가야지요, 조산원에."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이게 전부였다. 봐이드만이 임부를 그이 차에 태웠다. 돌을 실어 나르고, 나무나 퇴비를 싣기도 하는 그의 짐차 조수석에, 그렇게 병원으로 갔고, 한국에서 온 미봉 피셔는 결국 어머니가 되었다.

"엠마가 태어났어요. 축하합니다."

간호사가 축하해 주며 아이를 산모의 배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미봉은 찢어지는 고통, 그 모두를 한꺼번에 잊었다. 어쩜 마음의 고통까지도, 이제 그녀는 어머니였다. 어머니, 소리내어 스스로를 불러보며 자신도 모르는 작은 기쁨이 그녀를 미소짓도록 강요했다. 축하해 주는 한 사람이 그녀 가까이에 있었다.

"축하해요, 엠마 어머니."

봐이드만이었다. 그가 꽃을 내밀었다.

"당신이 여태 기다리고 있었군요."

부인은 고맙다는 말을 이렇게 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가 축하의 선물로 가져온 산나리가 들양귀비와 잘 어울렸다.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했는데, 모르겠다, 자신이 어디쯤에 와 있는가를, 하여간 미봉 피셔는 어머니가 되었다. 기쁨은 아니고, 그리고 슬픔도 모르는 그런 어머니. 불륜의 씨앗을 낳은 못나빠진 여지. 누구를 원망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자신을 저주하기에도 사실은 지쳤다.

딸은 어머니의 성 피셔를 물려받았다. 아이는 그래서 엠마 피셔다. 국적은 물론 독일이고, 어디에도 아이가 이태리 아버지의 피를 받고 태어난 흔적은 없다. 아무튼 법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이태리 남자임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 pp.149-150
"자, 타자구요!"

"어쩔려고요?"

"가야지요, 조산원에."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이게 전부였다. 봐이드만이 임부를 그이 차에 태웠다. 돌을 실어 나르고, 나무나 퇴비를 싣기도 하는 그의 짐차 조수석에, 그렇게 병원으로 갔고, 한국에서 온 미봉 피셔는 결국 어머니가 되었다.

"엠마가 태어났어요. 축하합니다."

간호사가 축하해 주며 아이를 산모의 배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미봉은 찢어지는 고통, 그 모두를 한꺼번에 잊었다. 어쩜 마음의 고통까지도, 이제 그녀는 어머니였다. 어머니, 소리내어 스스로를 불러보며 자신도 모르는 작은 기쁨이 그녀를 미소짓도록 강요했다. 축하해 주는 한 사람이 그녀 가까이에 있었다.

"축하해요, 엠마 어머니."

봐이드만이었다. 그가 꽃을 내밀었다.

"당신이 여태 기다리고 있었군요."

부인은 고맙다는 말을 이렇게 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가 축하의 선물로 가져온 산나리가 들양귀비와 잘 어울렸다.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했는데, 모르겠다, 자신이 어디쯤에 와 있는가를, 하여간 미봉 피셔는 어머니가 되었다. 기쁨은 아니고, 그리고 슬픔도 모르는 그런 어머니. 불륜의 씨앗을 낳은 못나빠진 여지. 누구를 원망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자신을 저주하기에도 사실은 지쳤다.

딸은 어머니의 성 피셔를 물려받았다. 아이는 그래서 엠마 피셔다. 국적은 물론 독일이고, 어디에도 아이가 이태리 아버지의 피를 받고 태어난 흔적은 없다. 아무튼 법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이태리 남자임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 pp.1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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