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소유하고 조합원 공통 의 욕구와 갈망, 권익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체이며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조합원들의 이용 실적에 따라 분배하는 기업이다. 개인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창업하므로 협동조합 설립을 결심하는 발기인들은 먼저 자율적인 결사체로 모인다.
아이쿱생협은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회원으로 ICA 정의에 비추어 협동조합을 설명한다. 즉 협동조합은 ‘자발적으로 단결한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사체’로 정부의 개입이나 외부의 압력 없이 만들어진다.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목적은 ‘함께 뭉친 사람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욕구와 갈망을 충족하고자 함’이며, ‘함께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사업체’라는 수단을 통해 그 목적을 실현한다.
이상의 정의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혼자가 아니라 공통의 목적 실현을 위해 경제사업을 수행하는 시민들의 조직이다. 자본기업의 방식과 달리 경제사업의 기본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주체가 조합원이며 모든 결정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p.14~15
사회적경제는 19세기 전반에 프랑스인들이 발명한 개념이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 등장한 경제학은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고 불렸다. 당시 정치경제학은 지금도 경제학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스미스-맬서스-리카도 등으로 이어지는 연구처럼 주로 생산력 증대와 생산력 증대에 기여하는 요소(노동, 자본의 가치 창출 기능)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아무리 증대했어도 도시 노동자의 중노동과 빈곤, 기아, 매연과 오염의 슬럼가, 무권리로 인한 차별과 비참한 현실은 더 깊어지고 확산될 뿐이었다. 프랑스의 협동조합 실천가와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영국보다 늦게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노동과 사회문제를 다루지 않는 영국의 정치경제학에 반발했다. 이들은 사회문제를 다루는 경제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를 ‘사회적경제eonomie sociale’라고 불렀다.
당시 사회적경제의 대표 주자는 협동조합이었다. 19세기 말에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협동조합운동가였던 샤를 지드 교수는 콜레주 드 파리에서 강의한 강좌명을 ‘사회적경제’라고 했으며 그 개념을 20세기로 전해주었다. 이후 사회적경제는 노동자들의 공제조합, 상호부조 조직, 시민 사업체와 재단 등과 단결하여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며 공정한 임금, 민주적인 작업장을 만들려는 경제조직이라고 이해되었다. 그리고 사회적경제의 작동원리는 공공부문, 사기업부문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p.63
직공이나 숙련 노동자journeyman들은 사제관계로 기술을 전승하며 비숙련 노동자에 비해 나은 생활을 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우애조합friendly society이라는 상호부조조직을 결성해 노동자들은 공동으로 질병, 장례, 실업, 출산, 육아에 대비한 공제를 실시했다. 이러한 우애조합은 공제를 통해 갑자기 닥친 어려움을 서로 도왔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산업혁명이 진행되자 직공들 사이에 분화가 일어났다. 특히 직조공들은 19세기 전반에 가장 큰 직업집단이었는데 면방적, 면방직 공장제도로 인해 임금 수준이 계속 떨어졌으며 경기 침체 시기에는 쉽게 해고되는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렸다. 1799년에는 노동자들의 단결금지법이 발효되어 노동자들의 단체활동이 금지되었다. 그러자 기계가 도입된 공장에서 일하는 미숙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욱 나빠졌다. 이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1811~1812년, 1815~1816년에 공장의 기계를 부수고 파업을 일으키는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 운동)으로 나타났다.
영국 정부와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저항을 가혹하게 탄압했지만 노 동자들의 연대감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1815년에 제정된 곡물법으로 오렌지, 차, 커피, 밀가루 등의 식품에 무거운 관세를 매기자 직조공은 연간 22파운드 가량의 추정 소득 중 세금에만 9파운드(45%)를 물게 되어(존스턴 버챌, Co-op: People’s Business) 노동자들의 단결이 가속화되었으며 마침내 1824년에 단결금지법이 철폐되었다. 결사의 자유를 얻은 노 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정치적인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어린이 노동과 여성 노동을 규제하고 최저임금을 준수하도록 의회에 요구했다. 집회와 파업을 조직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의 보통 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한 차티스트 운동으로 발전했다.
초기 협동조합운동은 이러한 노동운동의 영향 속에서 탄생했다.--- p.83~84
협동조합의 건강성과 경쟁력은 바로 조합원이 고객이고 출자자라는 소유구조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조합원(고객)들과 무관한 월 스트리트의 파생금융상품에 목돈을 맡기는 일을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폐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대다수 은행은 50% 이상의 주식을 외국계 자본이 소유하고 있어 과도한 배당 요구에 시달리곤 한다.
스위스의 최대 고용 기업으로 8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생협 미그로Migros는 아예 글로벌 전략조차 갖고 있지 않다. “조합원 고객이 모두 국내 에 있는데 글로벌 전략을 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네덜란드 최대 협동조합은행인 라보뱅크 또한 가계와 중소기업 및 농업부문의 국내 금융이 절대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외부 투자자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기업이었다면 더 많은 투자수익을 좇아 일찌감치 글로벌 무대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협동조합은행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은행의 20%를 넘어서고 있다. 소매업계에서는 생협이 선두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다. 스위스에서는 미그로Migros와 콥COOP 두 생협이 업계 1, 2위로 국내 소매시장의 절반 정도를 점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핀란드에서는 생협이 소매 유통업의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캐나다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일반기업의 5년간 생존율은 38%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협동조합은 일반기업의 2배에 가까운 65%의 생존율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생존율이 높은 협동조합은 한국의 자영업과 유사한 수준인 10인 이하 규모의 노동자협동조합들이다.--- p.112
협동조합은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 시장에서 경쟁하며 자금이나 노동력, 토지 등 필요한 자산에 대해 시장가격을 지불하고 이용한다. 이런 점에서 협동조합도 다른 기업처럼 자기 자원을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경제사업체로 설 수 있다. 협동조합 경영은 조합원의 요구와 바람을 실현하는 사업을 적정하게 운영하고 관리해 성공시키는 활동이다. 즉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사업체의 기본 목적인 조합원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경영을 한다. 경영은 창조적인 작업 방식을 만들어가도록 조직하는 과정이고 창조적인 사람(직원, 활동)을 모으고 이들이 협동조합사업체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경영의 과제는 이윤의 최대화가 아니라 자원의 적정화이다. 경영은 또한 조합원의 진화하는 욕구, 조직의 구조적 약점,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협동조합사업체가 스스로 변화를 주도해가는 과정이다.--- p.183~184
1997년 6개 지역조합이 모여 아이쿱생협의 전신인 ‘21세기 생협연대’를 설립했다. 당시 지역에서 활동하던 작은 규모의 지역생협은 친환경농산물 직거래단체 정도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독자적으로 물류사업(물품 수집, 조합원 공급, 판매장 운영 등)을 운영하면서 적은 조합원 수, 제한된 물품으로 사업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경영난을 겪던 지역생협은 효율화를 위해 사업연합을 모색하게 되었고 1997년 당시 6개의 작은 지역생협[부평(현재 인천아이쿱생협), 부천, 한밭, 볕내(현재 양천아이쿱생협), 수원, 안산]들이 모여 ‘21세기생협연대’(현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를 결성했다. 아이쿱생협은 협동조합으로써 경쟁력을 키워 조합원의 요구를 실현하고 대중적 토대를 쌓고자 출범했다.
--- p.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