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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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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56쪽 | 554g | 143*204*30mm
ISBN13 9788967940270
ISBN10 8967940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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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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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박다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야후 코리아 및 삼성 에버랜드에서 근무하였다. 현재는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인문, 에세이 분야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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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나는 거의 모든 것을 놓치고 있었다. 다른 열한 명과의 산책들을 마친 뒤 나는 기분 좋은 탄성을 지르는 한편, 나의 평범한 시각의 한계를 깨닫고 코가 납작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나의 이런 부족함이 지극히 인간적인 특성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눈을 사용하지만, 시선이 닿는 대상을 경박하게 판단하고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기호를 보지만 그 의미는 보지 못한다. 남이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즉, 내게 부족한 것은 집중력이었다. 그저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그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아이들이라면 모두 선생님 또는 부모님으로부터 집중하라는 타이름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집중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 p.24~25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아이에게 우리의 ‘산책’은 이미 시작돼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아이가 걷는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실마리를 잡았다. 우리 아이에 의하면, ‘걷기’는 때로 ‘걷지 않는 것’이다. A 지점과 B 지점, 두 지점 사이의 이동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직선 위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과도 거의 무관하다. 산책은 에너지로 가득할 때 시작해서 지쳐 나가떨어질 때 끝나는 하나의 탐험이다. 아이의 산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서 시작됐다. 곧이어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고 문을 열고 계단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도 아이에게는 모두 산책의 일부였다. 아이의 산책은 어쩌면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 신발을 신을 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신발 끈을 묶으러 가자고 함께 복도를 걸어가던 순간에 이미 시작해 있었다. 아이는 벌써 몇 킬로미터나 자신만의 산책을 계속해온 것이다. 
- p.36 새로운 것을 사랑하는 병

집중과 기대는 우리가 코앞에 두고도 무언가를 놓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심리학자들은 피험자들에게 특별 제작한 짧은 영상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사람들이 시각적 장면에서 하나에 집중하느라 다른 명백한 요소를 놓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영리하게 밝혀냈다. 이 영상에서는 흰색과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농구공을 패스하고 있다. 피험자들의 임무는 팀별로 패스 숫자를 세는 것이다. 영상이 끝난 후 피험자들은 패스가 일어난 횟수를 말해야 한다. 물론 정말로 중요한 질문은 그게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농구공에 주의를 기울이던 피험자가 다른 것을 보았는가? 혹시 이상한 것은 없었는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이 피험자의 반 가까이 되었다.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 가슴을 쿵쿵 내리치며 선수들 사이를 춤추듯 걸어다니다가 화면 밖으로 어슬렁어슬렁 사라졌지만 농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느라 털이 부숭부숭하며 상당히 눈에 띄는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 p.164 그 녀석의 은밀한 도시 살이

“사람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아요.” 켄트가 인파 사이로 내게 소리쳤다. 이 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도시사회학자들이 보행자들의 행동을 염탐해 알아낸 사실을 귀띔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확실히 도시사회학자들로서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보행자들은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였는데, 이는 대체로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우리는 모두 다 같이 하나의 댄스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도시의 보행자들은 주변 사람들에 맞춰 몇 가지 사소한 사항들을 조정한다. 다른 보행자와 길이 엇갈리면 한 사람은 0.2초나 될까 말까 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걸음을 늦춰서 둘 다 경로를 바꾸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뒤에서 걷던 사람이 빠르게 다가오면 우리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살짝 움직여서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준다. 켄트와 내가 거리에서 봤듯이 편의를 도모하는 이런 행동들은 눈에 띌 정도로 뚜렷이 나타나기도 한다.
- p.197 느릿느릿 춤추며 걷기

어떤 시각장애인들은 냄새를 더 강렬하게 맡을 수 있다. 올리버 색스의 책에는 사람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극도로 민감해진 의사가 한 명 등장한다. 그는 체취는 물론 우리 몸에 묻어 있는 로션, 비누, 세제의 향기, 나아가 걱정스럽거나 불행할 때 몸에서 나는 냄새마저 맡을 수 있다. 그런데 의사는 냄새를 맡음으로써 눈이 보일 때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더욱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지각적 예리함이 후각적 천재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앞이 보이는 사람도 훈련을 통해 또는 단순히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냄새를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다. 고든은 내가 머리를 감은 샴푸나 얼굴에 바른 로션의 향을 맡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녀의 후각적 호기심을 충족해줄까, 아니면 후각적 불쾌함을 안겨줄까?
- p.255 우리가 듣지 못하는 주파수의 진동들

우리 개 피니건과 떠난 산책은 평범했다. 중요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에게 굳이 들려줄 만한 얘기도 없었다. 하지만 피니건을 관찰하면서 나는 중요함의 개념 자체를 새로 세우게 되었다. 나는 우리 세계가 냄새로 채색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동네는 냄새를 조각조각 모아 기운 조각보와 같고 그 조각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피니건이 무엇을 보는지 관찰하면서 유년기의 냄새를, 그리고 크레용 냄새와 낡은 책의 곰팡내와 새 차 냄새처럼 내 안에서 여문 냄새들을 기억해냈다. 개의 눈높이에서 난간과 창문과 쓰레기를 보다 보니 비로소 풍경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 p.328 촉촉한 코로 탐색하는 세상

이 산책들이 내 머릿속에 미친 영향은 손에 잡힐 정도로 또렷하다. 내 시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내 머리는 나뭇잎에서 벌레혹을 찾아보고, 에어컨이 윙윙대는 소리를 듣고, 도시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의 역겹도록 달콤한 냄새 또는 내 얼굴에 남은 비누 냄새를 맡을 수 있게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심장고동을 느낄 수 있고, 길을 걷다가 보도의 다른 행인들과 공간을 협상할 때 몸무게가 어느 쪽으로 쏠리는지 감지할 수 있다. 나는 걸을 때마다 팔이 다리의 박자에 맞춰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뒤에 있는 행인들이나 지나가는 차 안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 내 옆에서 걷는 피니건의 개 목걸이가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내게 있어 걷기는 단지 육체를 수송하는 수단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양을 가능케 하는 도구이자 몹시 매력적인 행위다. 유감이지만 지금의 나는 아무 때나 걸음을 늦추고 사방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산책의 동반자로 삼기에는 껄끄러운 사람이 된 듯하다. 원한다면 이런 습관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새롭게 얻은 이 습관이 몹시 마음에 든다. 나는 우리 모두가 한때 지녔으나 느끼는 법을 잊고 있었던 것, 바로 경이감을 되찾았다.
- p.338~339 진정으로, 본다는 것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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