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이미 사회주의 국가들은 망했는데, 그런 낡은 사상을 뭐하러 읽어?”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낡기로 치면 플라톤이나 공자, 예수의 사상은 더하지 않을까? …… 그런데도 사람들은 플라톤, 예수, 공자의 사상을 공부하고 삶의 가치관으로 삼기도 한다. 그렇다고 “왜 이미 실패한 사상을 공부해?”라고 묻는 이들이 있을까? 희한하게 마르크스에게 이런 치우친 잣대를 들이댄다. 왜 그럴까? 마르크스의 불온함이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향한 마르크스의 비판이 여전히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 11~12쪽
[노예] 연작이 르네상스의 한 천재가 인류의 근원적 존재론, 곧 자유를 향한 투쟁을 형상화한 작품이라면 《공산당 선언》은 그런 투쟁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내 승리하리라고 확신하는 예언서다. 또한 《선언》은 노동자 계급이 해방을 위해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격문이면서, 노동자 계급의 동지이자 ‘전위(앞서 가는 이들)’인 공산주의자들의 ‘커밍아웃’ 선언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 지금 여기에서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내걸고 다른 세력들하고 어떤 관계를 맺을지 제시하는 ‘실천 매뉴얼’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선언》은 공산주의 혁명의 역사적 필연성을 밝히면서 혁명이 성공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안한다. ― 16~17쪽
이 책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소수가 풍요롭게 살려고 다수를 궁핍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이 체제는 정의로운가? 돈을 벌려고 자연을 파괴하고 사람 목숨이 달린 안전 규제를 무시하며 필요하다면 전쟁까지 서슴지 않는 이 체제는 계속 유지돼야 하는가? 자본주의는 혹시 침몰하는 배가 아닐까 침몰하는 사이에도 배 위에 객실을 자꾸 지어 올려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면? 그럼 우리는 이 자본주의를 탈출해 다른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그 일은 누가 해야 할까? ― 22~23쪽
여전히 마르크스는 현재형이다. 그것만으로도 마르크스를 공부할 이유는 충분하다. 물론 마르크스를 성급히 비난할 필요도 없고 무조건 옳다고 끄덕일 까닭도 없다. 먼저 마음을 열고 마르크스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어떤 비판의 방법을 썼는지 알아보자. 누구보다도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사회를 미워했고, 역사의 망치로 돌 속에 갇힌 인류를 끄집어내려 한 사람, 신의 구원이나 부자들이 베푸는 자선이나 엘리트들이 그린 유토피아 설계도에 기대지 않고도 노동자들 스스로 해방을 얻을 수 있다고 믿은 사람, 그리하여 인류 전체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 마르크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44쪽
마르크스의 안경을 빌리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보이는 모습이 이해된다. ‘무노조 경영’은 삼성의 잘 알려진 기업 방침이다. 그런데 헌법 제33조에는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명시돼 있다. 삼성은 헌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드러내놓고 말하는 셈이다. …… 지금까지 어느 정부도 삼성을 처벌하기는커녕 경영 방침을 바꾸라는 권고조차 한 적이 없다. 국가가 부르주아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과연 틀린 걸까? ― 63쪽
노동자는 ‘일자리를 찾는 한에서만’ 먹고 살 수 있고, 그 일자리는 ‘자본의 증식’에 달려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을 조각내어 판매’하지 않으면, 곧 자기의 노동력을 고용주에게 팔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 이런 점은 19세기의 공장 노동자나 오늘날의 편의점 알바 노동자, 최신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나 막노동 일용직 노동자가 모두 같다. 노동자의 기준은 급여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임금이나 수수료 등을 받고 자기 노동력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노동자’다. ― 87쪽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 나서게 되는 이유는 뭘까? 첫째, ‘지켜야 할 자신의 것’이 없기 때문이다. 토지도 없고, 가게도 없고, 자본도 없다. 한마디로 더 잃어버릴 게 없다. 둘째, “자기 자신의 취득 방식을, 이제까지의 취득 방식을 없애버려야 사회적 생산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부를 공유하려면 사적 소유를 없애야 하는데, 자본가의 사적 소유를 유지하는 제도가 바로 ‘임금 노동’이다. 노동자가 임금 노동 안에서 한두 푼 더 벌려고 아등바등 경쟁할수록 자본가의 힘은 더 커지고 노동자의 상대적인 힘은 더 줄어든다. 그러니 임금 노동이라는 방식을 없애야 한다는 얘기다. ― 103쪽
자본주의가 혁명의 안전핀을 스스로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나라 정부들은 앞다퉈 세금을 깎고 복지를 줄이면서 국가가 책임지던 서비스를 민영화하고 있다. 노동조합하고 맺은 파트너 관계를 깨고 비정규직을 늘린다. 이런 흐름은 소득 불균형을 높여, 미국에서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50년대 30퍼센트대에서 2000년대 50퍼센트로 치솟았다. 당연히 노동과 자본의 갈등도 부추긴다. 인화 물질이 바닥에 흥건히 깔리면 작은 불씨만 있어도 혁명적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 112쪽
만약 우리가 10대 재벌 기업을 사회화할 수 있다면, 재벌 대기업을 모든 시민의 소유로 바꾼다면, 많은 배당금을 포함해 기업의 이익을 총수 일가에 몰아주는 게 아니라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소득이 늘고 사회복지도 크게 좋아진다. 노동 시간을 줄여 예술을 하든 연애를 하든 공부를 하든, 원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과거를 현재에 봉사하게 만들 수 있다. ― 127쪽
이런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게 만들어가려는 개혁가들에게 “그래봤자 안 바뀌어. 국민 의식이 너무 저열해” 같은 말을 툭툭 던지는 사람들. 그런 냉소적인 사람들은 스스로 대단한 통찰이라도 한 것처럼 굴지만 사실 마르크스가 한 비판처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낮은 의식은 낮은 사회 구조의 산물일 따름이다. 새로운 사회 요소들이 낡은 요소를 조금씩 대체할 때, 낡은 조건에 연관된 낡은 이념이 조금씩 해체될 때 새로운 이념도 확대된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냉소나 보낼 게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사회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 진보 정당, 노동조합, 시민단체, 협동조합, 풀뿌리 자치 공동체, 비판적 학습 공간 등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관계를 곳곳에 많이 만들자. 또는 이런 요소들을 후원하자. 그게 사람들의 낡은 의식을 바꾸는 길이다. ― 148쪽
누진 소득세, 아동 노동의 폐지, 기간산업의 국유화(또는 공기업화) 같은 10대 조치의 몇몇 항목은 그 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 제도로 자리 잡았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시대와 사회에 따라 이 조치들은 달라질 테니, 오늘날 《선언》을 쓴다면 어떤 조치를 고치고 또 새롭게 제시해야 할까? ― 155쪽
마르크스는 유토피아주의자들의 사상과 실험이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한계 또한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감을 줘 미래 사회를 선취하게 도왔지만, 정작 그 미래 사회를 만들 주역이 노동하고 생산하는 대중인 프롤레타리아라는 사실은 모르거나 애써 보지 않으려 했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 노동자들이 계급 투쟁에 나설 때,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왜 노동자들이 자기네 아름다운 공동체를 외면하고 매번 깨지기만 하는 싸움에 매달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몇몇 엘리트 지식인은 민중의 이런 주체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 공학’으로 민중의 처지를 개선해주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마르크스는 유토피아를 저 하늘에서 모셔오는 데는 무관심했다. 오로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대중들의 힘으로 스스로 유토피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확신했다. ― 199~200쪽
그래도 힘을 내시오. 내가 어느 글에 썼듯이, 인간은 항상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하는 법이오. 문제란 언제나 그 해결을 위한 조건들이 함께 주어져 있는 곳에서 출현하거나 적어도 그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는 곳에서만 출현한다오.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인간의 소외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와,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찾으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오. 내가 말한 ‘지배 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전율하게 하라’는 말을 자칫 혁명의 과격함을 강조하는 말로 오해하지 마시오. 나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면서 말이오. ― 210~211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