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없다. 이 단어가 아우르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선을 어디에다 그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통상적인 정의로 규정하자면 전략은 목적과 방법 및 수단 사이에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 객관적인 실체와 목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수단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균형을 이루려면 우리가 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원 가능한 수단들을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들을 마련할 수 있도록 목적을 조율할 수도 있어야 한다. (……) 대체로 전략은 실질적이거나 잠재적인 갈등이 존재해서 서로의 이익이 충돌하고 어떤 형태로든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을 때 적용되는 개념이다. 인간사에서는 우연한 일이 많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고 또 우호적인 사람들이 실수하는 일이 예사로 벌어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또 전략을 중심으로 해서 매우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지기도 한다. 흔히 사람들은 전략이 바람직한 최종 상태를 염두에 두고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미리 설정된 목적을 향해서 질서 정연하게 나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목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애초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련의 상태들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진화한다. 따라서 궁극적인 목적을 포함한 애초의 전략은 중간 평가를 통해서 수시로 재조정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당연히 드러내야 할 전략이라는 것의 큰 그림은 유동적인 것이다. 또 그 그림은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의 지배를 받는다. (……) 전략의 영역은 위협과 압박뿐만 아니라 협상과 설득,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영향력 또한 행동뿐만 아니라 말까지 아우른다. 전략이 정치적 기술의 중심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략은 주어진 상황에서 보다 많은 것을 얻어내는 과정을 다룬다. 그러므로 단지 힘의 균형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전략은 힘(권력)을 창조하는 기술이다. [서문]
진화론자들은 희소하고 필수적인 자원 및 생존 투쟁의 자연적인 결과가 전략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원초적인 힘과 본능적인 공격성 차원의 최적자 생존의 문제만은 아니다. 생존자는 도태된 적들보다 생각을 더 빠르고 많이 했을 것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보다 잘 이해하고 또 이런 관계들을 이용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힘이 세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머리가 똑똑한 것도 그만큼 성공 가능성을 높였던 것이다. 그리고 적을 압도하는 과정에서 다른 구성원들을 동원하는 것이야말로 특별히 지능적인 행동이었다. 이런 패턴들은 이른바 문명기 이전 단계의 인류의 전쟁에서도 확인된다. 비록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야 ‘관례적이고 암묵적’이었으며 지금은 오로지 ‘전쟁 행동과 그것의 결과’로만 추론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당시의 전략들은 주로 소모전이었던 것 같다. 전면전과 기습 공격으로 상대 진영을 수적으로 조금씩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전략들은 폭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동맹을 강화하는 능력에도 의존했다. 이런 요소는 이후에도 거의 확장되지 않았다. 전략적 행동의 요소들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요소들을 적용할 상황이 보다 복잡해지기만 했을 뿐이다. [제1장. 기원 - 진화]
그리스신화에서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로 대변되는 힘과 교활함은 호메로스가 고안한 발상이다. 힘과 교활함은 나중에 세력과 간계로 드러났다. 이 양극성은 전략을 다룬 저작물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표현으로 재생되었다. 기지(奇智)로써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것은 공개적으로 갈등을 드러내는 것보다 고통의 위험이 덜하다. 비록 교활함과 속임수로 이기는 것이 때로는 명예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야유나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상대방이 자신이 당면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경우에는 속임수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상대방을 속이거나 기습적으로 공격함으로써 보다 강력한 상대보다 우위에 서고자 함은 자연스러운 것이지 결코 놀라운 게 아니다. 그러나 우월한 힘을 가진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제3의 여러 참가자들과 동맹을 결성하는 것 혹은 상대방이 이런 동맹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 등이 있다. [제3장. 기원 - 그리스]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장군이자 역사가였던 앙리 조미니 남작과 프러시아의 군인이자 군사 이론가였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거대한 정치적 격변기, 즉 개별적인 전투가 유럽의 지도를 새로 그리고, 대중적인 군대를 일으키고, 이 군대의 군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이동시키며, 지시를 내릴 필요성에 따라서 새로운 도전들이 제기되었던 바로 그 시기에 각자 군사 부문에서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두 사람의 관심은 전투와, 적을 정치적으로 무력할 정도로까지 패배시키는 데 있었다. 이 시기는 섬멸전이라는 발상이 군사적 사고방식에 이미 확고하게 이식되어 있던 때였다. 이 과정에서 전투를 ‘무력의 승산’이라고 보았던 견해, 즉 교전 당사자들이 분쟁 해결의 적절한 수단으로 줄곧 자리를 지켜왔던 발상이 실종되었다. (……) 19세기의 전략적 담론은 치국책에 대한 요구보다는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어떤 전투에 대한 기대에서 시작되었다. 군부에서는 국제 관계 체계를 전투 현장의 확장으로, 즉 생존과 지배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현장으로 파악하려는 관점을 촉구하고 장려했다. [제6장. 전략이라는 새로운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