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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관계

갑과 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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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3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368g | 130*190*22mm
ISBN13 9788969761842
ISBN10 896976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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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의 지을은 숨이 넘어가라 서럽게 울어 재꼈다.
“이게 뭐야! 할머니 미워!”
지을이 울고불고 소리치는 이유는 부모님을 잃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라면 이미 한 달여 동안 매일같이 울었기에. 지금 지을이 우는 이유는 순전히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내 머리 내놔!”
지을은 바닥에 누워 발버둥 치며 복순을 향해 소리쳤다.
“이런 상황일수록 니가 남자만치 강해져야지. 혼자 살아가는데 가스나처럼 여리하면 이 험한 세상 못 산다. 그니까 이 할미 말 잘 들으라. 짧은 머리도 억수로 예쁘네.”
지을은 짧은 숏컷에 바가지 모양인 제 머리를 양손으로 쥐고 잡아 뜯으며 쉬지 않고 울부짖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을은 파마를 해 준다는 복순의 말에 속아 따라간 미용실에서 이 꼴을 당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지을이 사내아이처럼 짧은 머리에 뾰로통한 얼굴로 툴툴대며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날 무렵,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을 사건이 일어났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B&W에 안채현이라고 합니다. 지을 양 부모님께서 훌륭한 일을 하셨지만 남겨진 지을이가 큰 충격을 받았을 거 같아서요. 저희는 지을이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당시 열여덟 살에 불과했던 채현은 앳된 얼굴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밝게 웃는 모습으로 복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지을을 발견한 채현은 냅다 지을에게 달려갔다.
“안녕! 네가 지을이니?”
‘와, 잘생겼다.’
지을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을 냈다.
“누구세요?”
“반가워. 난 안채현이라고 해. 지을이 만나려고 왔는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채현은 몸을 숙여 지을과 눈높이를 맞추며 활짝 웃었다. 그러자 부끄러웠는지 지을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지을은 몸을 배배꼬며 작게 대답했다.
“네.”
방 안에 들어선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지을이 채현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지만 채현은 계속해서 지을과 눈을 마주치며 친근하게 말을 꺼냈다.
“근데 우리 지을이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엄마, 아빠 보고 싶어서 그래?”
채현의 질문에 지을은 아무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방문을 벌컥 열고 복순이 소리쳤다.
“그마 내 머리카락을 댕강 잘라 버렸다고, 요 며칠 내내 그러고 있다니까.”
지을은 고개를 홱 돌리며 복순을 째려봤다. 가뜩이나 속상해 죽겠는 걸 복순이 제대로 건드린 것이다.
“지을아, 오빠는 말이야. 이렇게 짧은 머리 한 여자가 참 좋더라.”
채현이 지을의 머리를 쓰다듬자 지을의 얼굴이 빨개지며 수줍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채현은 지을의 두 손을 잡고 시선을 마주한 채 부드럽고 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이번에 오빠가 지을이 생각하면서 노래 하나 만들게. 약속!”
채현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지을이 그 손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약속.”
“지을이가 그 노래 듣고 항상 웃으면서 힘냈으면 좋겠어. 긍정의 힘! 아자, 아자!”
채현이 옥탑방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지을을 향해 인사했다. 하지만 못내 아쉬웠는지 지을은 채현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는 놓지 않았다.
“지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우리 다시 또 만나자. 그때까지 긍정의 힘 잊지 말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지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잡고 있던 채현의 옷자락을 놓았다.
그렇게 지을에게 있어 채현은 첫사랑이자, 지을의 인생에 희망과 빛을 가져다 준 사람. 세상을 긍정의 힘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준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기억하는 게 오히려 신기한 거야. 한낱 꼬맹이였던 나를.”
지을은 자기 위로를 하면서도 내심 속상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내가 뭐 대단한 거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살갑게 대해 주고 미소 한 방 날려 주면 어디가 덧나? 표정 싹 굳어 가지고 무섭게 노려보기나 하고. 그리고 남자 같아서 뽑아? 커트 머리가 예쁘다고 할 때는 언제고! 내가 당신 때문에 17년째 이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고만. 정작 기억도 못 하고…….”
지을은 속상했지만 채현을 이해했다. 어찌 보면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당시 세상에 혼자 남겨진 지을과 달리 채현은 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에.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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