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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증후군

묘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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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3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40*195*20mm
ISBN13 9788990028952
ISBN10 8990028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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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현준
철원 와수 출생. 원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현재는 춘천에서 살고 있다. 2005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제4회 여수해양문학상 소설부분 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10년 동안 간간이 문학잡지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三文文士(서푼짜리 소설가)’로 부르며 살아왔다. 여행과 낙서, 걷기를 좋아하고, 전업 여행작가가 평생 꿈인 게으름뱅이이다. ‘철학’과 ‘국문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대학에서 글쓰기 관련 과목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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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고양이 하나가 앞서 걷고 있다. 이미 내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면 미안하다, 나도 말을 걸었다. 하지만 녀석은 무심한 듯 앞만 보며 걸을 뿐이다. 마치 산행 중 만나는 길앞잡이 벌레처럼 내가 가야 할 곳을 알려주려는 듯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앞서간다. 일정함은 곧 존재를 잊게 한다. 이를 아는지, 녀석은 중간에 한 번씩 느닷없이 데굴데굴 구르며 허공에 발짓을 한다. 흠칫, 내가 놀란 듯 걸음을 멈추면, 희뜩 바라보곤 또 앞서 걷기를 반복한다.
--- p26

언제부터인가 남자는 병적으로 개미를 죽이기 시작했다. 방의 어딘가에서 커다란 바퀴벌레의 살점을 뜯는 개미의 환청이 그를 미치게 했다. 지나가는 개미들을 라이터로 태워 죽이거나 손가락으로 짓이겨 버렸다. 음식으로 몰려든 개미들을 향해 살충제를 뿌려댔고 바닥의 틈새를 실리콘으로 모조리 막아버렸다. 하지만 개미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남자는 죽이고 또 죽이다가 결국 포기해 버렸다. 방 안 곳곳에서 적대의 눈초리로 그를 감시하고 있을 수만 개의 시선이 느껴졌다.
--- p.86

“심장을 찾았어요.”
잠든 줄 알았던 소희가 내 주절거림이 끝나자마자 속삭였다. 마치 인형 뽑기 기계에서 원했던 예쁜 인형을 건져 올린 소녀의 말투였다. 그녀 말대로 심장이 다시 조금씩 뛰고 있었다. 얼굴과 팔다리에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가슴을 두어 번 쳤고, 심장이 놀라 움찔움찔 피를 토해내더니 정신없이 뛰어대기 시작했다. 가슴이 뻐근해져 왔고 몸이 나른해졌다. 난 손끝이라도 썩는다면 심장을 도려내겠다고 중얼댔다. 심장이 내 엄중한 경고를 알아들었을까? 그치지 않는 펌프질에 내 손가락과 발가락이 찌릿찌릿 저려오고 있었다. 이내 내 몸은 마치 3,000미터 달리기를 마친 소년 시절처럼 축 늘어졌고 소희는 식은땀까지 흘리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p.134

“아우라지 길을 따라 당신이 걸어오네. 강물에 비친 모습 어여뻐라. 반가운 맘 달려가 맞지마는, 흐려지는 물 위로 사라지네.”
어머니가 강가에서 정선 시내를 다녀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부르던 노래의 가사였다. 늘 조금씩 가사가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어머니 손을 잡고 아우라지 강가에서 듣던 그 아라리는 잊지 못할 것이었다.
아라리의 끝 부분은 아버지에 의해 가사가 완전히 바뀌어있었지만 어느새 나도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자꾸 눈물이 났다. 이제 와 들으면 연인도 아닌 시골부부의 촌스러울 정도의 유치한 사랑 노래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아라리 속에서, 나는 잃었던 길의 초입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p.217

“난 가끔 네 소설에 등장하는 나를 상상한다. 그건 정말 매력적이고 행복한 일일 것 같아.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의 이름이 등장하는 너의 이름이 찍힌 소설책을 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짜릿하거든. 정말 꼭 나를 위해서라도 좋은 소설가가 되길 빈다.”
희수는 잔을 올려 보였고 나는 그의 술잔을 맞받아치며 그동안 잊고 지내던 소설가에 대한 내 꿈이 슬근거리며 다시금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 꼭 써주마.’
나는 쓴 소주를 삼키며 내심 다짐하고 있었다. 내가 희수 아버지의 목각인형으로 남길 바랐던 것처럼, 나의 소설 속 인물로 희수가 남길 바라는 것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 p.2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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