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중에 우리의 웃음을 유발하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만일 호머가 보고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웃음을 절제해야 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각적으로 웃으려면 (아리스토파네스가 예외를 제공해 주긴 하겠지만) 거의 영어로 웃을 수밖에 없다. 유머는 결국은 신체의 감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신체적으로 아주 다른 종족에서 비롯된 프랑스인들, 이탈리아인들, 미국인들은 우리가 호머를 읽을 때 멈추는 것처럼 제대로 된 곳에서 웃는 것인지 확인하려고 멈추는데, 이 멈추는 것이 치명적이다. 이렇게 유머는 외국어로 하면 제일 먼저 없어지는 능력이다.
--- p.35~36
산문은 느리고, 고귀하며 일반화된 감성에, 드넓은 경관을 묘사하는 데, 여러 페이지에 걸쳐 다른 화자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한결같이 펼쳐지는 긴 담론을 전달하는 데 어울린다. 반면에, 운문은 전혀 다른 쓰임새를 가졌다. 시드니가 요약하고, 강조하고, 하나의 분명한 인상을 주고자 할 때 운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찰하는 것은 흥미롭다.
--- p.51
수수께끼 같은 남자, 자신의 천부적 재능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것을 사용하기를 중단해 버린 최고의 천재이기도 했던 콩그리브는, 그의 작품의 어느 페이지를 넘겨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재능에 완전히 잠겨버리기보다는 그것을 흥미롭다는 듯이 관찰할 줄 알고, 또 그 재능 속에 잠겨 있을 때조차도 어느 정도 그것을 이끌어 갈 줄 알았던 그런 부류의 작가였다.
--- p.57
예술가는 결국 고독한 존재이다. [로마제국 쇠망사]와 더불어 보낸 20년은 먼 옛날의 사건과, 배열에 관한 복잡한 문제와, 또한 죽은 자들의 정신과 육체와 고독하게 교제하는 데 보낸 20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많은 것들이 중요성을 잃는다.
--- p.91
70여 권을 써 내려가는 위대한 소설가들이라면 어차피 문장 단위로 집필하기보다는 쪽 단위로 집필하거니와,
다양한 강도를 지닌 10여 가지의 서로 다른 문체를 부릴 줄 알며 또 언제 사용해야 할 줄도 아는 법이다. 점잔 빼는 필체도 제대로 쓰이면 매우 유용한 필체이다. 잘못되거나 아무렇게나 쓴 표현도 긴장 이완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표현들은 독자에게 숨 돌릴 여유를 주고 책의 숨통을 터준다.
--- p.108
소문에 의하면 제인 오스틴은 꼿꼿하고, 정확하고, 말수가 적어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부지깽이”였다. 이
소문에 대한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그녀는 아주 무자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문학사상 가장 일관된 풍자가다.
--- p.127
해즐릿은, 그의 으뜸가는 장점 중의 하나로, 희미한 안개 속에 발을 질질 끌며 물러나 하찮은 존재가 되어 죽어가는 그런 어정쩡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에세이는 단호히 말하건대 그 사람 자체다.
--- p.138
평론가는 표면의 의미를 걷어낼 수 있지만, “그러한 순간에 관한 문제들이 있어서 그것들에 관하여 마음이 정해지지 않으면 위대한 비평가가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록하트는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평론가였고 평론가로 남아 있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 회의적이었고, 너무 소심했고, 너무 잘생겼고, 어쩌면 태생이 너무 좋았다.
--- p.170
우리는 디킨스를 읽을 때 우리의 정신세계의 지형을 새롭게 바꾼다. 우리는 고독의 즐거움에 대한 경험, 혹은 친구의 복잡한 감정을 경이로움을 가지고 지켜봤던 일,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침잠했던 일에 대한 기억은 잊어버린다.
--- p.177
그녀의 비평가들은 물론 대부분이 반대 성性인데, 아마도 반쯤은 고의적으로 그녀가 여성들에게 대단히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분개해 왔다. 조지 엘리엇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강하게 여성스럽지 않았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소중한 어린아이의 단순성이라고 여겨지는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기질 같은 것이 그녀에게는 전혀 없었다.
--- p.186
세 명의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 중에 우리를 가장 매혹시키고 또한 우리를 가장 밀어내는 작가는 바로 톨스토이이다. 마음은 그가 태어난 곳의 성향을 따르게 마련이다. 러시아 소설과 같이 지극히 이질적인 문학작품과 마주쳤을 때 우리의 마음이 갑자기 옆길로 새어 진실에서 멀리 빗나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p.223
토머스 하디의 죽음으로 영국 소설의 지도자가 없다고 말할 때, 이것은 그 탁월함을 일반적으로 인정할 만한 어떤 다른 작가가 없다는 것, 즉 경의를 표하기에 자연스럽게 적합해 보이는 작가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하디만큼 겸손한 작가도 없었다.
--- p.224
모든 위대한 작가들에게는 그들이 가장 편하고 또 최고의 상태를 갖는 듯한 어떤 정취가 있다. 그것은 위대한 보편적인 정신이라고 하는 어떤 분위기로 그것을 그들이 해설하고 발견하기조차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이것 때문에 그들을 읽게 되는 것이지 어떤 이야기나 혹은 인물 혹은 어떤 별도의 탁월한 장면 때문이 아니다.
--- p.255
죽음이 늘 그렇듯이 우리 기억을 되살리고 집중시켜 준다 할지라도 콘래드의 천재성에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무언가 근본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어떤 것이 있다. 그의 만년의 명성은 의심의 여지없이 영국에서 최고의 수준이었으나 한 가지 분명한 예외, 즉 대중적 인기는 누리지 못했다.
--- p.290
“……콘래드는 한 가지만 있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에요. 아니란 말이에요. 그 사람 안에 여러 가지가 있는 복잡한 작가예요. 우리가 자주 동의했던 것처럼 현대작가들 사이에선 흔한 경우죠. 그리고 현대 작가들이 이런 여러 면모를 가진 자아를 연관 짓거나 단순화 시키거나,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화합시키는 성취가 (일반적으로 생의 후반부에 가서야) 일어날 때에 이런 완결된 책들을 바로 그런 이유로 걸작이라고 일컫지요.”
--- p.307
“죽음은 마음만 먹으면 도시 전체를 삼켜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도시뿐만 아니라 인간의 대집단도. 죽음을 거역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쳐 있던 나방이 다시 다리를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이 최후의 항거는 훌륭했다. 너무도 필사적이어서 나방은 드디어 일어섰다. 우리는 물론, 모두 생명 편에서 동정했다. 또한 누구 하나 개의하거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작은 나방이 거대한 힘을 상대로 아무도 대단하게 여기거나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지키려고 이렇듯 애쓰는 것이 이상하게도 감동적이었다.”
--- p.317~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