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글로 말하고 싶다.”
짧지만 강렬한 소망이 담긴 이 말을 나는 종종 듣는다. 자신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 남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 굴곡진 삶을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을 활자화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생산해낸 이야기만으론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 안에 있기 때문이다.
-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든 자기 글을 써볼 것을 권장한다. 글쓰기와 책 쓰기를 인도하는 나의 직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나이 마흔을 넘긴 사람이면 그에게는 책 한 권의 분량만큼, 아니 그 이상의 노래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우리 인생들에게 밋밋하고 호락호락한 환경만을 제공하진 않는다. 그가 누구든 ‘산골짜기를 지나고 험한 바다를 건너는’ 다양한 인생 체험을 얹어준다. 또한 그 질곡을 용케 딛고 일어섬으로써, 기어코 ‘자기만의 고유한 음률과 장단과 노랫말’을 갖게 한다.
- 삶의 여정을 글로 쓰는 작업은 자기 이해와 자기 정화의 과정이며 자기치유의 의식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하면서 비틀거렸던 지난날의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한 자기 삶의 검은 그림자와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아픔과 어둠들은 글쓰기를 지속하는 동안 정리되고 치유된다. 글쓰기는 결국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헤아리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 평범한 사람들의 글쓰기를 통해 나는 ‘삶의 드라마’를 보아 왔다.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정리해가는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자서전은 나를 돌아보는 일이며, 나 스스로에게 배울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한다.
- 자신의 이야기야말로 ‘힘’이 세다. 그간의 궤적들,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학습과 기나긴 배움의 시간들, 무수한 만남과 그 관계성 안에서의 훈련들, 일과 전공 분야, 사회활동에서 얻은 성취의 기쁨과 실패의 쓰라림, 이별의 아픔, 사랑과 결혼, 가족 이야기……. 이런 알록달록한 삶의 재료들과 경험들을 통해 오롯이 나만이 배우고 깨달은 인생의 지혜와 기술들은 이미?누구에게나 차고 넘친다. 이 정도면 ‘인생의 진수가 담긴’ 두 세권의 책은 족히 펴낼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이다.
- 파편처럼 흩어진 자기 삶의 경험과 흔적을 돌아보고, 의미를 꿰어보면 그 누구의 인생이라도 소설보다 흥미진진하고 어떤 역사보다도 가치가 큰 기록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역사 속엔 우리 모두의 삶과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책이며 인터넷에 온통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이 시대에 자신의 삶을 소외시킨 채, 남의 인생에 열광하며 그들에게만 박수를 보내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어떤 종류의 글이든 그 글 속에는 글쓴이의 사유 과정이 담겨 있고, 글쓴이의 삶의 무늬가 드러난다. 그러하기 때문에 글은 멋지고 매끈하게 쓰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특히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하고 담아내는 자서전 쓰기에 있어선 더욱 그러하다. 왜곡되지 않은 삶의 자취, 내용의 진정성이 바로 자서전의 생명이며, 글의 중심인 것이다. 하여 나는 종종 강조한다. ‘글쓰기는 객관적이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삶을 이끌어온 생각과 가치들을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고.
- 내러티브 글의 특징은 설명하는 대신에 보여주는 것(Don't tell. Just show)이다. ‘그는 키가 무척 컸다.’, ‘그녀는 마음이 여렸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좋지 않다. 대신 ‘그는 내 집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문지방에 머리를 찧곤 했다.’, ‘그녀는 약속시간에 늦었으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수의 노래를 차마 끊지 못해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다.’와 같이 키가 크다면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큰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독자가 상상할 수 있도록 보여주어야 한다. 글 쓰는 이의 시각으로 단정 지어서 ‘그녀는 감성적이다.’ 또는 ‘그는 지나치게 직선적이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해설에 가까운 서술이지 묘사가 아니다.
- 글쓰기는 글이 지닌 ‘은근한 힘’을 깨닫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좋은 글은 사람들의 잠자는 의식을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가려진 진실을 밝혀내기도 하며,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와 새로이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반면에 어떤 글은 사람을 해치거나 평생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혀 망가뜨리게도 한다. 글쓰기에 앞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지향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략- 자신의 글이 타인에게 감동을 주고 사람들의 생각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나 자긍심 못지않게 중요한 것, 그것은 글이 사람에게 미치는 긍정효과와 부정효과를 진중하게 고려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 우리가 어떤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감동하게 되는 것은 작가의 글쓰기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삶을 대하는 그의 진지하고 적극적인 태도 때문이다. … 뭔가 남들과는 다른 그만의 삶의 무늬, 그만의 관점이 독자의 가슴을 울리거나 감동을 주는 것이다. 결국 독자들을 향해 자신만이 들려줄 수 있는 주장이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설령 글쓰기 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관점이 분명하고 콘텐츠만 확실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좋은 책을 만들 수가 있다. 반면 자신의 콘텐츠만큼은 어느 유능한 편집자라도 대신 쥐어줄 순 없다. 자기 삶을 담아낸 책은 ‘픽션’이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쓰기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우선돼야 하는 것은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내는 근실한 자세다. 자신에게 다가온 지금의 삶에 더 깊은 애정을 갖고,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옮겨 놓는 일이다. 진취적이고 성실하게 살아내는 경험이 우선돼야 한다.
- 자서전을 쓰는 법은 다양하나,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두 가지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되, 연령대별, 또는 주제별로 나눠 써내려 가는 방법이다. 연령대별로는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로 나누어 정리하는 방식이다. 주제별 접근은 자신의 삶을 유년의 기억, 학창시절, 일과 사랑, 결혼, 부모, 빈 둥지와 제2의 신혼 등 각각의 주제로 나눈 뒤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써내려 가면 된다. 주제별로 글을 쓸 경우엔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싶은 부분을 앞으로 끌어낼 수 있다.
- 혜안과 명철을 지닌 어르신들의 글쓰기 활동은 개인의 작업을 뛰어넘어 우리의 향토문화 전승 및 지역사회 발전에 적잖이 기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펜 끝으로 자신이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며, 그렇게 몸에 익힌 글쓰기가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길을 내어주고 아름다운 노래를 실어 날라줄 것을 확신한다.
- 요즘에도 나는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면서 ‘삶이 어떻게 해서 글이 되고 책이 되는가?’에 대하여 논의한다. 결국 그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맞물려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