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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꽃과 원숭이
한원 | 동아 | 2015년 03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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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3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552쪽 | 642g | 147*210*35mm
ISBN13 9791155113349
ISBN10 115511334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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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리아는 눈이 아플 정도로 색이 진한 능선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그 기다림에 부응하듯 새파란 잔디를 밟고 적금발의 남자가 나타났다. 입구로 막 들어오는 참이라 거리가 있었는데도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바실리도 그녀를 발견한 모양인지 그는 에일리아쪽으로 몸을 돌렸다. 곧 망설임도 없이 완전히 정원에 들어선다. 그녀가 밟고 서있는 곳은 왕의 정원, 누구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관리가 잘 된 정원은 만개하듯 피어난 세를린 덕에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지만, 기실 그 주인인 바실리는 귀찮다고 몇 번 찾지도 않았다. 그는 무신경한 걸음으로 정원사가 곱게 키운 꽃들을 퍽퍽 밟아대며 에일리아의 앞에 도달했다. 그녀는 짧은 시선으로 왕의 존귀한 발에 짓밟힌 꽃들을 살폈다. 그가 떠난 뒤에 손으로 세워주기만 하면 무사할 것이다. 안심하는 에일리아를 힐끗 본 바실리는 팟 하며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저가 밟은 들꽃까지 신경쓰는가.
“왕녀.”
“예.”
"점심은 먹었나?"
점심때가 한참 지난 시각이었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당연한 질문이었지만 왕이 예의를 차리는 것인가 하며 에일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긍정에 바실리의 웃는 얼굴에 미세하게 금이 갔다.
"그래? 저녁은?"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배고프지 않나?"
오늘은 늦은 오찬을 즐긴 탓에 에일리아는 조금 배가 부른 상태였다. 해서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 단호한 대답에 바실리는 금이 가던 웃는 얼굴을 완전히 거둬버렸다. 에일리아는 영문을 몰라 그의 굳은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히렐의 여자치고는 작은 편이긴 했으나 그래도 누군가를 올려다 볼 정도는 아니었는데, 바실리는 그녀가 고개를 조금 젖혀야할 정도로 훤칠했다. 그는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불퉁하게 입을 열었다. 심통이 난 소년같은 얼굴이다.
“당신은 내가 왜 싫나?”
뜬금없는 바실리의 물음에 에일리아는 잠시 침묵했다. 정말 자신이 대응을 준비할 시간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왜 식사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가 거기로 튄단말인가. 에일리아는 손끝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며, 자신으로서는 정말 최대한의 진심을 내보였다.
“싫지 않습니다.”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바실리는 말을 잃은듯 짙은 눈썹을 찡그렸다. 확신하고 물어본 것인데 그리 대답해오면 할 말이 없다. 그는 뒤에서 저를 조용히 따라오는 왕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타국의 왕이라고 예의를 차려주는건가. 거짓말이라고는 할 줄도, 하지도 않을 것 같은 성정치고는 참 대단한 배려였다.
“그럼 왜 나만 보면 얼굴을 찡그려?”
좋아하니까요.
“왜 나한테만 딱딱하게 구는데?”
좋아해서요.
“왜 나한테는 안 웃어줘? 클림트 보고는 아주 광대보듯 웃더만. 아니, 세상에 걔가 웃겨? 걔보고 그렇게 미친듯이 웃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일거야.”
그것도… 좋아해서.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애꿎은 입술만 꼭 깨문 에일리아를 내려다보던 바실리는, 한숨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노을 닮은 머리칼이 잠시 붕떴다 가라앉는다. 그는 정리하지 않은 부시시한 머리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식사도 싫다, 선물도 싫다, 내가 주는 호의란 호의는 모두 칼같이 거절하면서 나는 싫지 않다 말하는 건가?"
에일리아보다는 그 자신에게 묻는 투라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해줄 수도 없었다. 그녀는 왕의 사심 없는 호의를 받아들일 입장이 아니었다. 여기서 받는 모든 감동은 히렐에 돌아가자마자 천근같은 짐이 되어 그녀를 힘들게 할 것이라. 그러나 사정 모르는 바실리는 한숨과 함께 에일리아를 돌아보았다.
“왕녀, 나에게 그정도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어. 그간 내가 행한 무례를 내가 더 잘 아니까. 내 잘못이야, 미안하다고 생각해.”
그는 거의 단정하듯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바실리는 남자답게 뻗은 콧날을 소년처럼 찡긋거리며 에일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는 나를 좀 덜 미워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아니에요.
에일리아는 그가 먼저 내밀어준 손조차 잡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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