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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나잇 Last Night

라스트 나잇 Last Night

: 달로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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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526g | 140*210*22mm
ISBN13 9788975274565
ISBN10 89752745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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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맹목적으로 걸음을 떼자마자 둔탁한 무언가가 부딪쳐왔다.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시멘트 바닥 위로 나동그라진 건 간발이었다.
와장창!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바닥 위로 산산조각 난 모엣샹동이 처참히 흩어져 있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이지?
순식간에 목덜미가 싸한 게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건 종전에 만끽하고 있던 이국의 밤공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불길한 예감을 적중하듯 흐릿한 시야 사이로 한 켤레의 수제화가 파고들었다.
한눈에 보아도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어 낸 듯한 클래식한 구두. 질 좋은 소가죽으로 빚은 최상급의 구두가 은은한 광택을 발하며 유주를 저격하듯 공격적으로 서 있었다.
그 기다란 다리를 거슬러 올라가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유주는 매섭게 표정을 굳힌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금방이라도 패션 화보를 찢고 나온 것처럼 늠름하고 근사한 사내였다.
‘동양계 혼혈인가?’
지나치게 잘생긴 사내의 모습에 유주는 멍하니 넋을 놓았다. 평소 같았더라면 이렇게 무례하게 시선을 줄 리 없는데, 술기운 탓인지 그녀의 시선은 마치 박제된 것처럼 사내에게 걸려 있었다.
거의 완벽한 비율의 신장은 보통 서양인보다도 훨씬 월등했으며, 건강하다 못해 건장해 보이는 그을린 혈색, 흑발에 가까운 머리칼과 짙푸른 눈동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외모였다.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다양한 인종을 만나보긴 했지만, 이처럼 존재 자체로 강렬한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잘생긴 얼굴은 고질적인 짜증으로 무장한 채였다. 멍 하니 넋 나간 유주를 날카롭게 응시하던 그가 천천히 시선을 움직여 그녀를 훑기 시작했다.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H라인의 다소 정중한 원피스 차림, 흐트러진 치마 아래로 드러난 하얀 종아리, 뽀얀 복숭아뼈가 도드라진 가녀린 발목을 지나 마침내 그의 시선이 유주가 신고 선 지미 추에 가 꽂혔다. 일순 무심하던 시선으로 묘한 웃음이 스치고, 그는 길바닥 에 떨어져 있는 나머지 지미 추 구두 한 짝을 집어 내밀었다.
“악마라도 본 얼굴이군.”
--- p.23~24

간밤에 마크와 단둘이 호텔 앞에 덩그러니 남겨져 연락처를 주고받던 순간. 손수건으로 연신 식은땀을 닦으며 사정하던 마크의 얼굴이 떠오르자 문득 갈증이 일었다. 유주는 빨대를 입으로 가져 가 목을 축인 뒤 말했다.
“그런데 그 남자, 굉장히 낯이 익더라고. 분명 처음 봤는데, 처음 본 것 같지 않았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떽떽거리고 신경질적인 성격만 아니면 첫눈에 반할 정도로 정말이지 잘생겼단 말이야. 솔직히 내 지미 추를 내밀 때까지만 해 도 정말 근사한 왕자님을 만난 줄 알았어.”
피식, 지안의 입가로 조소가 흩어졌다.
“근데 어딘가 모르게 낯익어. 어디서 본 건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굉장히 낯이 익었단 말이야.”
“원래 동양인 눈에 서양인은 다 그놈이 그놈이고, 서양인 눈에 동양인은 다 그놈이 그놈인 법이야.”
“아니라니까. 너 내 안목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몰라?”
“그러시겠지.”
지안은 건성으로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러한 안목 은 그녀의 직업에 한해서였다. 좋은 접시나 좋은 소품을 알아보는 안목, 그것들을 예쁜 음식과 함께 매치시키는 센스는 탁월했지만 그 외의 것들에서도 유주가 능력을 발휘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 었다.
“그래도 뭐, 술병 깼다고 6백 불이나 주는 남자는 세상에 흔치 않으니까. 이름이 뭐라 그랬어? 명함 받았다면서. 이리 내 봐.”
“맞아, 명함. 분명 여기에 넣어뒀는데…….”
(……)
“애덤 데이…….”
“애덤 데이비드. 이름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기분 나쁘게 엄청 익숙하단 말이야.”
그러나 흥미롭게 명함을 훑던 지안의 표정이 이상하리만치 극적으로 돌변했다. 지안은 곧 대답 대신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을 연달아 세 번 외치며 기함했다. 유주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신경질적이고 시니컬한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개의치 않았다.
“세상에나! 스토즈의 애덤 데이비드잖아!”(31~33쪽)

단둘만 있는 순간이 처음은 아닌데, 왜 이렇게 못 견딜 정도로 가슴이 떨리는지 모르겠다. 완전한 애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유주를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땡.
마침내 52층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말로만 듣던 타이워너 펜트하우스는 한순간에 모든 걸 무장해제 시켜버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이 느껴졌다.
미국 완구재벌 타이워너(Ty Warner)가 파리의 그랑 루브르(Grand Louvre: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와 홍콩의 뱅크 오브 차이나 빌딩으로 유명한 건축가 이오밍 페이를 불러들여 탄생시킨 작품.
7년간 공들여 만들어진 이 건물은 2007년 완공과 동시에 뉴욕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그런 어마어마한 건물의 52층 최상층 전체를 객실로 쓰는 애덤의 펜트하우스는 조망을 비롯한 모든 게 완벽한 곳이었다.
네 개의 창 너머로 보이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과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뉴욕 시내의 전경. 이곳이 왜 미국에서 가장 비싼 스위트룸이자, 전 세계 부호들이 앞다퉈 예약하는 곳인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행안내 책자 한구석에 소개된 기사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실제로 이곳에 오게 될 거란 생각조차 한 적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숨 막힐 것 같은 분위기에 압도당한 채,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겠는 시한폭탄 같은 얼굴을 한 사내를 면전에 두고는 더욱이.
허공을 가르고 전해진 시선은 아직까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었지만, 유주는 알고 있었다. 둘 중 누구 하나라도 중심을 잃는 순 간, 성냥불처럼 불타오를 것이라는 것을.
--- p.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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