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게 모르게, 차별화를 한다고 하면 무조건 뭔가 새롭고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남보다 앞서야겠다는 생각에 몰두하다가는 자칫 혁신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품질이나 기술의 ‘실제적인 차이’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인식상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물리적인 차이는 경쟁자에게 금세 따라잡힐 수 있지만, 인식상의 차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한번 각인되면 따라 하기가 훨씬 어렵다.
시중에 나와 있는 그 많은 차별화에 관한 책이 흥미롭게 읽히다가도 간혹 짜증이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책들에 나오는 차별화 사례는 참으로 기막히게 희한하여 도무지 천재가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나 기술로 만든 제품들 일색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차별화는, 사람들에게 우리 치킨집이 옆의 치킨집과 다른지를 어떻게 인식시킬 것인지와 같은 문제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간혹 세상을 뒤집을 만큼 놀랍고 새로운 제품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업이라도 매번 세상을 뒤집을 만한 혁신을 이어가기란 불가능하다. 어쩌면 이런 딜레마 속에 마케팅의 본질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행해지는 마케팅에서 조그마한 진화를 일궈내고, 그것을 의미 있는 차별화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인식시키는 것’이야말로 마케팅의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
- 프롤로그. 작은 차이가 큰 성공을 낳는다 중에서
지금이야 서울이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외국 친구들이 서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들로부터 서울은 어떤 곳이냐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았는데, 한국에 와본 적이 없는 친구에게, 그것도 1980년대에 서울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난감했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설명할 수도 없고, 지리적 위치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도쿄 같은 곳인데 더 활기찬 도시’라고 대답했는데, 의외로 잘 알아들어서 유용하게 써먹곤 했다.
도쿄가 서울보다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도쿄에 대한 템플레이트를 갖고 있다. 아마도 ‘이국적인 아시아의 도시’라는 이미지일 것이다. 즉 ‘이국적인 아시아 도시’라는 카테고리의 리더는 도쿄다. ‘도쿄 같은 곳’이라는 설명은 일단 그 이미지와의 유사점(POP: Point Of Parity)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그다음에는 차별점(POD: Point Of Difference)을 얘기한다. ‘더 활기차다’가 바로 그것이다. “도쿄 사람들은 밤 11시가 되면 집에 들어가지만, 서울 사람들은 그 시간이면 집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불야성을 이룬다”라고 농담처럼 건네면 눈이 동그래지며 금세 알아듣는다. ‘도쿄 같은 곳인데 더 활기찬 도시’라는 간단한 문장으로 서울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다. 도쿄에 대한 이미지를 이용해서 서울을 부각하는 방법이다.
- 1부. ‘다름’을 익숙함에 얹어라 중에서
이태원의 수제 버거 전문점인 자코비스Jacoby’s의 명물은 단연코 ‘내장파괴버거’다. 두 겹의 두터운 패티 사이에 치즈 3장과 구운 양파, 토마토, 칠리소스를 넣어주는 이 버거의 양은 위장이 파괴될 만큼 어마어마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게 거대한 이 햄버거는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 때문에 먹으려면 기나긴 줄에 합류해야 한다. 말리뇨나 자코비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기발한 차별화 제품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들이 얼마나 큰 브랜드로 성장할지 궁금하다.
차별화 성격이 강한 제품은 니치마켓niche market에서 시작한다. 이런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는 브랜드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진다. 즉 차별화로 화제가 되는 제품이라도 일정한 궤도에 올릴 강력한 추진 동력이 없으면, 시장에서의 퇴장은 시간문제다. 브랜드를 궤도에 올릴 수 있는 경쟁력은 다섯 가지, 즉 가격, 가성비, 기능, 품질, 명성이다. 이 중에서 무엇을 우리 기업의 차별화 동력으로 삼을지는 각 기업이 보유한 자금동원 능력, 기술개발 능력, 이미지홍보 능력 등의 역량과 자원에 따라 달라진다.
- 2부. 어떻게 다름을 만들 것인가 중에서
‘어떻게 실제적인 차이를 만드느냐’는 차별화 추진의 동력이자 브랜드의 실질적인 경쟁력이 되는 셈이다. 실제적인 차이 없이 차별화하려는 것은 모래 위에 집짓기다. 그러나 이에 더해 또 다른 차원의 차별화가 필요한데, 바로 ‘어떻게 인식상의 차이를 만드느냐’이다. 이 두 가지 차원을 동시에 고려하여 복선伏線을 깔아야만 차별화가 비로소 완성된다.
차별화를 보여주는 기본 방향은 아홉 가지 커뮤니케이션 범위에 대부분 속한다. 아홉 가지 중에서 두 가지 이상의 특징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세 가지를 동시에 주장하려고 욕심내지는 말라. 내가 잘하는 것의 대부분은 경쟁사도 잘한다. 대신에 한두 가지를 간결하고 강력하게 제시하라. 포커스가 작을수록 큰 브랜드가 된다. 포커스를 확대하고 싶은 유혹을 참는 것이 지혜로운 마케터가 되는 길이다.
이러한 포지셔닝positioning은 당연히 타기팅targeting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간혹 신제품을 들고 와서 내게 마케팅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이들이 있다. 그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누가 주主타깃인데요?”이다. 놀랍게도 많은 마케터들이 “젊은 사람들이 주 타깃이지만, 나이 드신 분들이 쓰셔도 좋고,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이러저러한 때 사용하는 제품”이라며 모든 사람을 바구니에 다 넣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상적인 타깃(ideal target)은 좁혀 보아야 한다.
-3부. 어떻게 ‘다름’을 보여줄 것인가 중에서
나이키는 무엇을 잘하고 리복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나이키는 전략의 초점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Just Do It”이라는 컨셉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들을 내놓았다. 나이키 특유의 도전정신을 추종하는 틴에이저들과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젊음을 유지하고자 하는 중장년층에 어필하는 제품들을 끊임없이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껍질은 바뀌었지만, 모든 제품을 관통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리복은 분명한 브랜드 ‘컨셉’ 없이 트렌드를 좇는 ‘제품’을 만드는 데 급급했다. 또한 눈앞의 점유율을 높이려는 생각으로 기능과 디자인을 단순화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는데, 단기적으로는 시장이 반응했으나 장기적으로는 그러한 강점들이 거꾸로 발목을 잡고 말았다. 그런 모델들은 새롭게 변형을 시도할 여지가 없었고, 가격을 올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주 타깃인 주부들은 재구매 사이클이 틴에이저보다 현격히 길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매출은 뒷걸음질 치기시작했다.
틈새시장을 보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업의 철학이나 소비자의 니즈보다 우선시되어서는 곤란하다. 궤도에 남아 있으려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지만, ‘자기다움’을 잃어버린 채 트렌드만을 추종하다 보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차별화하려면 시장의 빈틈을 보려고만 하지 말고, 소비자와 제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제품의 겉모습, 즉 ‘껍질’을 바꾸기에 앞서, 브랜드의 ‘본질’인 중심 컨셉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자기다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4부. 어떻게 ‘다름’을 유지할 것인가 중에서
차별화는 그저 남과 다른 데서 그쳐서는 안 되고 지속적으로 ‘~스러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 ‘애플’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애플이 창의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대체 어떻게 알까? 창의성을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광고만 해도 1984년의 그 유명한 매킨토시 광고부터 파블로 피카소, 짐 헨슨,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을 포함한 유명인사들이 출연한 광고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Think Different’라는 애플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제품의 패키지, 제품, 심지어 매장의 고객 서비스(Genius Bar)를 통해서도 애플은 창의성이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덕분에 그들이 내세우는 메시지가 좋든 싫든, 우리는 애플이 어떤 회사인지 알 수 있다.
진정한 차별화는 그 브랜드만의 이미지, 철학, 느낌을 만들어낸다. 처음 봤을 때 특정 인물이 연상되지 않는 브랜드, 즉 느낌이 없는 브랜드는 실패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브랜드를 보면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을 대하는 기분이 든다. 엄청나게 차려입지 않아도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사람, 미남미녀가 아니어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품질이 뛰어나도 자기만의 컬러가 없으면 금세 잊히기 쉽다. 반대로 품질은 최상급이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컬러로 일관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면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가 될 수 있다.
- 5부. 어떻게 다름을 ‘점검할’ 것인가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