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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의 나라 2

반월의 나라 2

[ 부록 : 삽화 엽서 4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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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502쪽 | 522g | 128*188*35mm
ISBN13 9788959139002
ISBN10 8959139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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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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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그가 날 데려온 곳은 서소문 형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버드나무 앞이었다. 그는 그곳에 말을 세우더니 먼저 말에서 내렸다. 그다음에는 내게 손을 뻗었다. 난 아무런 의지가 없는 투명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다가,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 위에서 내리자마자,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용무늬가 새겨진 단도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그것을 빼내 그의 목에 갖다 대었다. 이런 나의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그런 그의 눈마저도 외면하려 애썼다. 단도를 그의 목 깊숙한 곳에 갖다 댄 채 힘을 주었고, 그는 단도의 날을 피해 뒷걸음쳤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그의 등은 버드나무에 닿았고 더 이상 뒤로 갈 곳은 없었다. 이제 단숨에 그어버린다면 그는 이 자리에서 숨이 끊어질 것이다. 단도를 쥐고 있는 내 오른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역시 그런 나의 손을 보고는 짧은 한숨과 함께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고는 말했다.
“죽여라.”
“!”
“과인은 네 부모를 죽인 원수가 아니더냐. 그러니 어서 과인을 죽여라.”
태평하게 자신을 죽이라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내가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이리도 당당하게 자신을 죽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봄을 닮은 사람] 中

“사흘 뒤에 만나자고 했었죠. 그리고 지금은…….”
“나를 기다렸었소?”
“난…….”
기다렸다.
기다렸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 사흘 뒤에도 나타나지 않는 그를 보름이 되기까지 매일 기다렸었다. 이것이 오로지 그를 향한 일방적인 내 마음뿐이라면, 내 마음을 모르는 그를 미워해야 할 텐데 어떻게 미워하는 마음보다도 가슴이 더 아픈 것일까?
게다가 다시 만난 그를 보자 보름간의 애타는 그리움은 모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가 왜 나타나지 않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내 곁에 있어줘서 좋았으니까. 고통스러운 악몽에서 눈을 뜬 순간 그가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악몽에서 나를 구해준 손의 주인이 그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난 무릎 위에 올려진 그의 손을 잠깐 응시하고는 다시 그의 얼굴을 향해 입을 열었다.
“종묘에서 악몽을 꾸던 내 손을 잡아준 게 당신이죠?”
이 물음에 그는 즉각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나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살며시 흔들렸을 뿐이었다. 난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고모님이 어린 시절 악몽을 꾸면 손을 잡아주셨다면서요. 사실 종묘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알아차렸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내 손을 잡아준 거죠? 내가 악몽 꾸는 걸 알고요.”
진지하게 말하는 나를 윤후는 장난스럽게 받아친다.
“난 또 그때처럼 조용히 잠들 줄 알았소. 그리되면 이번에도 들키지 않고 그대가 잠든 사이에 조용히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여겼거든.”
“왜 내가 깨어나는 걸 보지 않고 가려고 한 거죠?”
“그거야…….”
그가 웃으며 말끝을 흐린다.
“혹여 외간 사내가 양반가 규수가 지내는 별당을 넘나드는 게 알려지면 흉이 되지 않겠소? 시집을 못 가게 되면 어쩌려고?”
그는 어쩌면 이런 장난스러운 말로 자신의 민망함을 감추려 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난 그런 그의 모습도 좋았다. 그의 모든 것이 좋았다. 지금 내 곁을 찾아온 그에게 솔직한 마음을 모두 고백하고 싶었다. 난 그가 지금 한 말이 장난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럼 당신에게 시집가면 되지요.”
내 솔직한 답변에 그의 눈이 당황한 듯 크게 커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곧바로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내 말을 못들은 듯 말을 넘겨받았다.
“문현에게 내가 온 사실을 말하지 마시오. 난 그를 지기라 여기지만……. 어쨌든 그는 애리와 함께 대왕대비마마의 사람이기도 하니까.”
---「좌포청에서의 재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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