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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넥타이

붉은 넥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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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4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572g | 145*205*30mm
ISBN13 9791195236947
ISBN10 1195236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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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사회의 이방인인 탈북자, 그리고 이성애 사회의 이방인인 성소수자…….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었다. 이 사회가 나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넘을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었다.--- p.17~18

나에겐 일 년에 두세 번 돼지고기 먹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생겼다. 아버지 원수님의 탄생일을 맞아 이제 아홉 살인 우리 모두 조선소년단에 입당하는 영광을 받아 안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던 붉은 넥타이를 목에 두른 소년단원.--- p.58

드디어 오전 운동회가 끝났다. 온 학급이 백양나무 그늘에 빙 둘러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달걀을 싸온 나는 우쭐해서 다른 아이들 보란 듯이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담임선생인 채청자가 왼쪽 손엔 빈 도시락을, 바른쪽 손엔 기다란 젓가락을 들고 아이들 쪽으로 다가왔다.
“자, 여러분. 어떤 맛있는 도시락을 싸왔나 한번 볼까요?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한 가지씩 걷겠어요.”
내 앞에까지 온 채청자가 손을 뻗었다.
“우아, 맛있는 계란을 싸왔군요.”
채청자는 기다란 젓가락으로 하얀 달걀 두 개를 다 넙죽 집어갔다. 나는 수탉 쫓던 누렁이처럼 입을 하 벌린 채 채청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나 기대했던, 몇 날 며칠을 기다렸던 달걀은 한 입 베어 먹어보지도 못한 채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p.86~87

아이들은 자맥질하여 갯바위 틈새에서 섭을 따고, 수영을 마친 최영호 선생은 백사장에 누워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족집게로 턱수염을 하나하나 뽑아내고 있었다. 나는 선생의 발치에 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눈길이 자꾸만 선생 쪽으로 향했다. 구릿빛 각진 얼굴, 몇 가닥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반듯한 이마, 부드럽게 솟은 콧날과 윤곽이 뚜렷한 입술, 잘 발달된 앞가슴과 군살 없는 허리선, 시원스럽게 내리뻗은 허벅지와 종아리, 몸에 딱 붙는 파란 수영 팬티 위로 우뚝 선 남성미, 그리고 탄력 있는 엉덩이…….
나도 선생처럼 손거울을 꺼내들고 코밑 까뭇까뭇한 솜털을 족집게로 하나하나 뽑아냈다. 그러다가 또다시 선생을 훔쳐보았다. 이상했다. 온몸이 꿈틀거리는 것 같고, 마음속에서 그 무엇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뭔지 모를 안타까움이 가슴을 꽉 채웠다. 그리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불같이 일었다.--- p.130

중대 생활을 시작한 첫날부터 나는 지휘관들과 구대원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식당 옆을 지나갈 때면 취사병이 나를 잡아끌어 맛있는 걸 쥐여 주었고, 총각 소대장은 귀엽다며 내 볼에 뽀뽀를 했으며, 정치지도원은 내 모포 속으로 들어와 나를 껴안고 잤다. 경석 동지는 주머니에서 빨간 사과 같은 걸 꺼내 내게 내밀며 “오늘밤엔 내 옆에서 자야 해” 하고 다짐을 받곤 했다.--- p.158

모두가 물러가고 둘만의 밤이 깊었다. 은밀하고도 자연스러운 둘만의 시간, 둘만의 몸짓이 허용된 첫날밤이었다. 나는 불을 끄고 미라와 나란히 누웠다.
그런데 캄캄한 눈앞에 불쑥, 활짝 웃는 선철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점점 더 선명해지는 선철이의 얼굴…….
나는 결혼을 누구나 이의 없이 치르는 생의 공식이라고 생각했다. 남녀 공히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들딸을 낳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수학공식처럼 남자 더하기 여자는 아들과 딸……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이게 뭔가. 이제 막 혼례를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은 나와 미라 사이에 선철이라니……. 나는 난감했다. 도저히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 p.25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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