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호국의 피에 바치는 글
올해로 팔순을 바라보시는 필자의 아버지는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에서 태어나셨다. 위로는 형님 두 분과 누이 한 분이 계셨고, 아래로는 남동생 두 분이 계셨으니 아들로는 세 번째시다. 20년 넘게 군복무를 마치시고 육군 상사로 제대하신 아버지께서는 막내아들인 필자가 어렸을 때 일제시대와 25 전쟁 때의 기억을 자주 말씀하시곤 하셨다.
일제강점기 은척면 문암리에 있던 초등학교를 다니시며 일본말을 배우셨던 얘기, 25 때 13세의 나이로 부모님과 함께 누이와 밑으로 남동생 2명을 데리고 피난을 가야만 했었던 얘기, 피난 가시면서 사람들이 죽는 장면을 보시고 아직도 그 장면이 가끔씩 떠오르신다는 얘기, 그리고 위로 형님 두 분께서 25 전쟁에 참전하신 터라 조부모님께서 아들 2명이 전쟁터에서 살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마당의 문만 바라보셨던 얘기, 그 한숨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얘기들…….
삼촌 두 분은 다행히도 살아서 오셨다. 하지만 지금은 고인이 되신 큰 삼촌은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던 중 몸에 심한 후유증이 생겨 곧 제대하셨고, 아직까지 생존하고 계신 작은 삼촌은 온몸에 총상을 입고 수술까지 했지만 결국 의가사 제대를 하셨다. 작은 삼촌은 그 유명한 백마고지에서 온몸에 부상을 입은 채 겨우 목숨을 부지하셨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작은 삼촌은 백마고지에서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도 당시 제거하지 못한 파편을 몸에 지니고 계시고, 평생 동안 다리를 절며 생활하셨다.
작은 삼촌은 이 책의 부록 「남정혁 25 사변기」에서 생명의 은인인 강영선 전우를 생전에 꼭 한 번은 보고 싶다고 하신다. 강영선 전우가 없었다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명절 때만 되면 삼촌들은, 특히 백마고지를 경험하신 작은 삼촌은 북한이라면, 빨갱이라면 아주 치를 떠신다. 몸에 박힌 채 평생을 함께해온 파편이 주는 아픔보다 기억에 박혀버린 그날의 고통이 더 잔인했던 것이다.
이런 집안 내력 때문인지 몰라도 아버지께서는 집에 먹을 것도 없거니와 특별한 기술을 배운 것도 없으셨기에 스무 살에 직업군인으로 입대하셨다고 하신다. 덕분에 아버지께서는 평생을 박봉으로 사셨지만, 빠듯한 월급으로 필자를 비롯한 우리 형제자매들을 고생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을 간직하신 채 강인한 군인의 길을 걸으셨다. 단 한 번도 뇌물을 받은 적도 청탁을 한 적도 없다는 것이 평생의 자부심이시다.
그 당시에 군에서 오고 갔던 뇌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하신 것 같다. 하지만 직업군인의 길을 택하신 아버님을 보시고 조부모님께서는 하늘이 무너졌다며 계속 눈물만 흘리셨다고 한다. 장남과 차남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경을 헤맨 경험이 있는 터라 또다시 셋째 아들이 입대하고 나서 전쟁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셨던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조부모님께서 돌아가셨고,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사진 하나도 남은 것이 없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필자의 어머니께서 못난 아들을 걱정하시며 흘리셨던 눈물이나 조부모님께서 그때 흘리신 눈물이나 다를 것이 있을까.
필자가 이렇게 집안의 내력을 말하는 것은 25 전쟁으로 인해 한 맺힌 분들께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필자가 이 책을 낸다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딱 세 마디만 말씀하셨다.
“니 빨갱이가?”, “니가 전쟁이나 해 봤나?”, “니가 전쟁통에 사람 죽는 것도 본 적 없으면서 뭐 안다고 통일이고?”
자식에 대한 실망 섞인 목소리로 걱정하셨고, 아버지께서는 한숨을 쉬셨다. 이해가 간다. 그리고 죄송스럽다. 남북한의 대립으로 인해 좋은 기억이라고는 전혀 없는 두 분 입장에서는 이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아들인 필자가 ‘통일’이라는 말을 세상에 하게 되면 그 자체로 빨갱이처럼 보일까 봐, 그리고 어쩌면 진짜 빨갱이일까 봐 걱정하시고 두려우셨던 게다.
필자의 부모님은 아들 한 명 더 보려다가 딸만 셋 낳으시고 마지막으로 필자를 낳으셨다. 2남 3녀의 막내로서 그래도 마지막에 태어나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서울에서 비록 구멍가게의 규모지만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평생의 자부심이셨다. 그런데 이런 책을 낸다고 하니 필자로부터 평생의 자부심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셨을 것이다. 동시에 소중한 막내아들이 빨갱이로 비난이나 받지 않을지 걱정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 필자는 이 책의 출판을 포기했다. 통일도 좋고 다 좋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만한 일을 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님께서 필자에게 책은 언제 나오느냐고 물으셨다. 이에 필자가 책을 내는 것은 포기했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니께서는 딱 한 마디 하셨다.
“니 할라모 지대로 해라.”
가슴이 찡했다. 그래서 필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예.”라고만 대답했다.
대한민국에는 남북의 대립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와 한을 품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남북 대립의 정점이었던 25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부모님 말씀대로 어쩌면 2년 6개월 육군 병장 만기제대가 고작인 필자는 북한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통일이라는 허상에 매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신 수많은 호국영정과 생존하고 계신 그 가족분들께도 필자가 부모님께 가진 미안함과 죄송스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 책에서 남북한 간의 이념을 말하거나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화폐와 금융구조에 관련된 경제학에 가까운 책이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지금까지의 퍼주기식 대북 지원은 무의미하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퍼주기식 대북 지원은 호국영정과 그 가족분들이 품은 한에 대한 예의가 아니요, 북한이 남한을 이용하려고만 들 것이기에 실질적 남북통일을 더 요원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14년 개성공단은 6개월간 폐쇄되었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한 개성공단은 남북 양측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경제협력의 마당이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시대를 바라보고 경제통합을 준비하는 시험대 구실도 했다는 평가를 받던 개성공단이었다. 하지만 결국 퍼주기식 대북 지원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현 정권에서도 떨칠 수 없었고, 요즘에는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의 임금 인상 여부로 남북한 간에 파열음을 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청년 실업, 부동산 시장 침체, 투자 저하 등으로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미국은 양적 완화 후 금리상승 기조, 일본은 엔저, 중국은 위안화 허브 등의 금융정책으로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통일대박론과 함께 통일지상주의까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통일대박론이라는 추상적 문구 외에 지금까지의 퍼주기식 대북 지원과는 다른 구체적이고 실천가능한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통일대박론에 급급하여 자칫하다가는 또다시 퍼주기식 대북 지원에 머물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의 개성공단을 살림과 동시에 퍼주기식 대북 지원이 아닌 남북한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통일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던 것이다. 퍼주기식 대북 지원도 곤란하지만 통일대박론도 마찬가지다. 우리 입장에서야 대박이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사회주의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말밖에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지금까지의 남북 관계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 상태로 가다가 갑자기 북한이 붕괴되면 이해관계는 더 복잡해진다. 북한이 붕괴될 때 우리에게 미치는 여파는 상상 이상일 수도 있다. 지금 현 북한 정부보다 더 과격한 단체가 들어올 수도 있고, 아니면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북한을 분신탁하는 구조로 균형점을 선택할 수도 있다.
북한이 붕괴되면 우리는 당연히 북한을 흡수통일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통일은 남한이 갑을관계로 북을 지배하거나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는 공유경제를 이루고, 이를 통해 한반도 전체의 공존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 새로운 갑을관계 형성을 통한 이윤 추구 목적의 착취경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는 또 다른 갑을관계의 투쟁만이 남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것을 나눔으로써 공멸의 길을 벗어나 공존의 길로 함께 가는 것이어야 한다. 갑을관계는 또 다른 투쟁의 장을 만들 뿐이다. 북한과 대화와 타협을 통한 통일을 하겠다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속으로는 갑을관계에서 남한이 갑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아질 것이 없다.
그래서는 통일의 문을 열 수가 없다. 한반도 전체가 공멸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 방법은 사상과 이념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우선 먹고사는 경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한편, 경제는 화폐를 통해서 구체화된다. 그래서 필자는 남한과 북한의 화폐를 연구하고 금융을 통합함으로써 진정한 경제통합을 이루어야만 통일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경제통합의 길을 여는 것만이 한반도 전체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이라 믿고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호국영정들의 피 앞에 한반도 전체의 공존이라는 말 자체가 그분들이 들으시기에 거북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의 부모님께서도 거부반응을 보이셨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그분들께 가진 미안함과 죄송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발간하기로 마음먹은 데는 다시는 이 땅에 불행한 피가 흐르지 않기 위함이요, 그 피로 인해 평생 동안 한 맺힌 가슴을 부둥켜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퍼주기식이나 이기적일 수도 있는 통일대박론이 아니라 그야말로 실질적 통일만이 그분들께 대한 진정한 사과라고 믿고 있다.
이제 시급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한 역시 경제위기에서 버틸 수 있는 맷집이 얼마 남지 않았다. 통일의 문을 열어야만 한다. 저 문을 열고 박차고 나가야만 한다. 저 통일의 문을 열면 우리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먹거리가 있는 창고가 열린다는 생각만으로는 곤란하다. 그래서는 그 안에서 통일의 문을 더 걸어 잠글 뿐이다. 공멸의 길이다. 우리는 통일의 문을 더 걸어 잠그지 않도록 서로에게 이득이 되고 합리적 분배가 가능한 황금비율의 열쇠로 통일의 문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열쇠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래서 황금비율을 가진 열쇠를 찾는 심정으로 이 책을 낸 것이다.
흔히들 화폐의 3대 기능으로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의 기능, 가치의 척도로서의 기능, 가치 저장 및 투자수단으로서의 기능을 들고 있다. 현재까지 이러한 화폐의 기능을 갖지 못하는 명목지폐에 가까운 북한 원화를 교환비율에 따라 남한 원화와 교환한다는 필자의 생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화폐가 금이냐, 은이냐, 달러냐가 아니라 일정한 지역 내에서 통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생산능력을 높이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내에서만이라도 북한 화폐가 명목지폐에서 벗어나 실물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이로써 통화의 부가가치, 즉 남북한 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실질적 경제통합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함이 이 책의 목적이다.
다시는 이 땅에 피맺힌 슬픔이 자리 잡을 수 없는 통일된 하나의 땅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호국을 위해 흘리신 피와 그 피로 인해 아직도 힘들어하시는 많은 분들께 이 황금비율의 열쇠를 바친다. 필자는 비록 말할 것 없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 황금비율의 열쇠를 받으신 분들께서 한반도 공존을 향한 실질적 통일을 바라는 필자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수용해주시길 바라며, 우리 모두가 저 통일의 문을 열 수 있게 되기를 죄송한 마음과 함께 부탁드린다.
끝으로 이 책의 발간에 있어 언제나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시며 뜨거운 애정으로 필자를 안내해 주시는 가장 존경하는 김세환 스승님, 그리고 화폐교환비율과 관련하여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셨던 기인, 필자에게 학문적 스승이시며 이 책을 펴냄에 있어 용기를 갖게 해 주신 성균관대학교 국정관리대학원 배수호 교수님, 사법연수원 입소를 앞두고 바쁜 와중에도 자료 수집을 해 준 정인환 시보, 그리고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관심과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지은이 淸 虎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