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GWU)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연구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정신분석적 정치·사회이론’을 전공하여 미국 메릴랜드주립대학교(UMD)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는 미국에서 영문으로 출판된 『The Ego Ideal, Ideology, and Hallucination(자아이상과 이념 그리고 환상)』을 비롯해 『문명비판 I&II』 『성리학자 기대승 프로이트를 만나다』 『보수와 진보의 정신분석』 『예술의 정신분석학적 해석』 『심리학, 한국인을 만나다』 『서(書)의 미학』 『나는 누구인가: 일반인을 위한 정신분석학』 등이 있으며, 퇴계와 고봉의 「四七理氣 往復書(사칠이기 왕복서)」를 영역하기도 했다. 지금은 사단법인 한국 일용근로자복지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가난 탈피의 욕구야말로 우리의 자아이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신의 욕구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현실을 원망하게 되고, 그러면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현실의 원리를 무시하고 탈법과 불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 경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불법적인 행위로 법의 제재를 받는 일이다. 운 좋게 법망을 피할 수 있다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감옥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려면 이 사회 자체의 변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는 이 사회 전체를 바꿔보려는 혁명정신이 싹트기도 한다. 사회가 변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자신의 처지가 나아 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pp.106-107)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 희망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이것은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일은 잘못된 것이라는 도덕적 교화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널리 퍼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는 낫다는 속담도 있듯, 살기 좋은 세상이라면 도대체 누가 세상을 떠나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현실적인 희망의 끈이 없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죽음을 선택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자아이상은 타협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는 현실을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실의 벽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우리의 자아이상은 현실을 무시한 급진적 길을 택함으로써 그 퇴행성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될 것이다. (pp.116-117)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다수의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이론부터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쿤의 독점 이론이란 그 시대 다수의 사람들이 지지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지지를 받았다 함은, 정신분석학적으로는 다수가 원하는 바를 단 일부라도 충족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 이론은 그제야 비로소 현실적 유효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공익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 이와 연결된 시장경제 이론과 계획경제 이론, 나아가 혼합경제 이론은 현실적 요구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돼 왔다. 그렇다면 현재 다수의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것을 먼저 알아야 오늘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p.127-128)
그러나 지금은 빈부격차라는 시장경제 체제의 모순이 절정인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각 정당이 이 모순의 해결을 위한 처방을 제시하는 정책 정당으로 변화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넓은 의미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하더라도, 내부적으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세부적인 강조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정치?경제적 화두는 “빈부의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혹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난한 자들의 상대적 빈곤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각 정당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장경제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정책들을 제시해야 한다.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