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프로그램에 아이들을 맞추던 것을 멈추고, 프로그램을 아이들에게 맞추어야 할 때다. 역사적으로 많은 중독 가정 아이들 프로그램은 어른들의 개념과 학습방식을 이용해 진행되었고, 어린아이들을 프로그램에 맞추고자 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많은 아이들이 나이에 비해 어른의 사고방식에 맞춰 고민을 해결해야 하는데다 부모의 문제, 걱정과 염려로 이미 부담이 배로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들을 그냥 아이답게 있도록 해주자. 매 순간 주의를 기울이면서 아이들을 사랑하자. 그들의 이름을 가능한 한 빨리 외우자. 아이들이 공유하는 중요한 것들을 적절할 때 반복하면서 공감해주자. 그러면 당신이 열심히 듣고 있다고 알아챌 것이다. 아이들이 무언가 필요할 때, 질문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너희는 소중한 존재란다!”라고 말만 하지 말고,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변함없이 보여주자. _ pp.70~71
중독 가정 아이들에게 말로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내일부터는 끊을게.” “만약 네 엄마가 또 마약을 하면 그땐 엄마랑 이혼할 거야.” “네 돼지저금통에서 돈을 빌리는 건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20분만 기다려. 담배 한 대만 피우고 돌아올게.” “때려서 미안해.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이런 의미 없는 말들을 너무나도 오랫동안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임에서 말보다는 행동을 한다. 경험은 머릿속에서만 머물지 않고 마음속 깊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면 느낌과 감정에 맞닿아 더 깊은 이해와 통찰을 할 수 있다. 이야기하기?그리기?만들기?인형극?역할극?음악?놀이 등 재미있고 다양한 활동들이 아이들의 회복을 돕는다. 또한 아이들이 자신의 회복과 새로운 발견을 하는 데 적극적으로 바뀔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충분히 이야기 나눌 시간을 허용해야 한다. 아이들마다 각 활동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그 내용을 공유할 때 모임은 더 풍성해진다. _ p.82
언젠가 극장처럼 의자가 배열된 큰 강당에서 모임을 할 때의 일이다. 숨바꼭질을 하는데 나처럼 몸집이 큰 어른은 숨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꼭꼭 숨으려는 마음에 의자 두 줄 사이에 숨기로 했다. 나는 첫째 줄에서 몸을 최대한 밀어넣고 머리를 팔 아래에 묻은 채 바닥에 엎드렸다. 숨을 곳을 찾던 아이들도 우왕좌왕 돌아다니다가 곧 모두 숨었는지 조용해졌다. 계속 놀다가 체력이 소진됐던 나는 그만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그러다 갑자기 내 위로 달려가는 화물열차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로라가 내 다리부터 등, 머리를 밟으며 지나간 것이다. 그다음으로 스티브, 신디, 필립과 프랭크가 지나갔다. 나는 아이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칼리, 타일러, 로니가 지나갔다. 프랭키는 빠르게 지나가다가 거의 넘어질 뻔했다. 술래였던 메리루가 나를 잡았다. 결국 술래에게 유일하게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구태여 재확인해주지 않아도 될 말을 들었다. “여기는 숨기에 정말 바보 같은 장소 아니에요?” _ pp.84
“전 그냥 자기-돌봄 가방에서 카드를 하나 꺼냈어요. 제가 아빠나 엄마를 변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정말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우리는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브렌트가 다시 중독의 덫에 걸린 것에 상처받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녀는 계속 두려워했다. “아빠가 영영 낫지 않을까봐 두려워요. 아빠를 잃고 싶지 않아요.” 적당한 틈을 타 나는 가볍게 말했다. “안젤라, 오늘! 오늘 하루만 견뎌보자.” 우리의 암호는 안젤라의 두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안젤라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말해주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어떻게든 도와줄테니 언제라도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대화를 마치기 전에 안젤라는 조심스레 말했다. “아까 자기-돌봄 가방에서 카드를 하나 꺼냈을 때 그 카드에 ‘믿을 수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기’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전화했어요. 제리 선생님, 도와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전화를 끊고 나서 눈을 감고 안젤라와 그 가족 모두가 별 탈 없기를 기도했다 _ p.103
중독 가정의 아이들은 건강한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다양하게 인식하는 역할모델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감정을 표현하도록 교육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선 ‘감정’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몇 해 전 러시아 출신의 심리학자가 닷새간 어린이 프로그램의 수련을 받았다. 그녀에게 가르쳐준 것 이상으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은 프로그램 과정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 단순하게 나에게 질문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프로그램의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신선한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의 질문들은 아이와 가족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나의 접근방법에 깊이와 힘을 더해주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아이들이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각적 단서를 왜 벽에 붙여 놓지 않았는지 궁금해했다. 정말 멋진 생각이었다. 바로 다음 날, 모임방 벽에는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들 64개가 그려진 포스터가 붙여졌다. 반드시 64개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8~10개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자. “오늘 기분이 어때?” _ p.140
중독의 개념을 배우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좋아할 때도 있지만 힘들어할 때도 있다. 아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중독의 덫에 걸려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애써 부정할 만한 것들이 없어진다. 그러다가도 그것은 아이들이 회복시키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해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슬픔을 느낀다. 모임의 긍정적인 면은 중독 문제의 원인이 아이들 자신에게 없고, 함께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희망을 주기 위한 노력으로 아이들과 역할극을 하면서 T&R(Treatment and Recovery)에 대해 알려준다. T&R은 중독의 최대 강적이다. 그것은 치료, 상담, 12단계 모임, 영성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중독자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자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개입을 수용하면 T&R은 그를 구하러 가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한다. 아이들과 가족이 일상에서 T&R을 가까이 한다면 진정으로 회복할 수 있다. 지역공동체와 학교 내의 상담센터, 교육적인 모임을 통해 중독 가정의 아이들은 ‘아이로 지내는 법’을 배운다. _ p.151
“너무 무서워서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도했어요.” 나는 이 용감한 소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제발 엄마를 멀리 데려가지 마세요. 엄마를 못 보게 될까봐 무서워요. 그래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엄마예요.” 나는 아이들에게 안전하게 머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위험하거나 무서울 때 언제든지 전화할 수 있는 ‘안전한 사람’을 정하라고 한다. 우리는 몇 주 동안 아만다와 다른 아이들에게 이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런 상황에서 아버지가 딸을 보호하고자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만 합법적인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릴 때가 있다. 나는 아만다가 주머니에 항상 지갑을 넣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안에는 안전한 사람의 이름, 전화번호와 함께 전화를 걸 수 있는 동전이 들어 있다. 나는 아만다의 아버지와 함께 그녀가 안전한 사람에게 전화하게 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_ p.162
아이들은 부모의 중독이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어깨에서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러면 새로 발견한 빛이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감싼다. 같은 시련을 경험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그 빛은 점점 커진다. 그들은 마침내 치유의 길에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고, 함께 울 수 있고,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내면에 희망이 생긴다. 그들은 치료사와 또래 아이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받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고 믿고 느낀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오랫동안 내면에 안고 있던 다양한 감정을 드러낸다. 심지어 몇몇은 스스로 결코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비밀도 끄집어낸다. 이 마음속에 있는 돌들을 가방 밖으로 꺼내는 순간,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는 치유의 길을 걷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이 놀이에 좀더 자발적이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 선물이다. _ p.173~174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도전에 부딪히며 늘 어려움을 겪는다. 이곳의 아이들에게 중독에 대한 고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궁금해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술이나 약물을 끊을 수 있을까?’ ‘언젠가 그 사람이 도움을 원하는 날이 올까?’ ‘혹시 우리 가족이 모두 헤어지는 것은 아닐까?’ 부모가 이미 회복중이라면 다를까? 힘들어하는 정도가 조금 다를 뿐 아이들의 고민은 여전하다. ‘부모님이 치료를 멈추면 어떻게 하지?’ ‘중독이 재발하면 어쩌지?’ 그리고 그들도 역시 가족들이 헤어질까봐 두려워하고, 아이들은 이런 고민을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친구를 사귀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학교에서도 잘 지내다가도 자기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몇 년간 나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사람’에 대해 소개해왔다. 안전한 사람이란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도움과 조언을 주는,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다. 회복력은 어려움과 역경을 건강하고 균형 잡힌 방법으로 극복하는 힘을 말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을 돌봐주고 양육해주는 어른의 존재가 회복력의 핵심 요소라고 한다. - pp.181~182
모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때쯤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하는 놀이가 있다. 그것은 가족들끼리 서로 말로만 카드를 교환하는 것이다. 카드의 주제는 ‘너에 대해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로 모임을 끝마치고 싶어서 일부러 마지막에 준비했다.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상대방의 특별한 자질에 대해 서로 말하는 놀이인데, 할 때마다 항상 감동적이다. 모든 과정을 마치기 전에 치료사가 모임에 나온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모임 때마다 가장 조용했던 7살인 레티가 재빨리 손을 들어서 매우 놀랐다. 레티를 의뢰한 아동보호기관의 보고에 의하면 가족에게 끔찍하게 학대를 당했고, 사회성도 부족해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고통을 견디며 살아온 아이가 모임에 와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지속-돌봄 프로그램에서 진정한 희망을 찾은 것 같았다. 앞으로 다른 프로그램에서 레티는 자신의 장점과 회복력을 계속해서 찾아갈 것이다. _ p.199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