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도 나는 분황사에 드나들게 되고 달빛 속에 떠오르는 탑신은 물에서 갓 건져낸 것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탑신을 씻어 내리는 달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설움이 깃들고, 탑의 표정도 전과는 다르게 애수를 머금고 있었다. 참으로 한 켤레의 평생 처음 신어 보는 신기한 신발을 잃어버림으로써 달과 달빛과 깊은 애수에 잠긴 탑의 서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럴수록 탑은 더욱 아름답고 달빛도 한결 아름다웠다. --- p.25
그 후 20년의 세월. 나는 ‘스스로 맺는 풀 열매’ 같은 작품을 빚으며 살아왔다. 성의를 다하였음에도 가난하기 그지없는 것밖에 이룰 수 없다면, 이미 그것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시로 말미암아 청춘이 병들었더니, 시로써 다시 뜻이 서게 되었구나.”
이것은 지훈의 말. 내게는 감개무량한 말이다. --- p.81
나는 늘 혼자였다. 사무가 끝나면 거리로 나왔다. 거리랬자 5분만 거닐면 거닐 곳이 없었다. 반월성으로, 오릉으로, 남산으로, 분황사로 돌아다녔다. 실로 내가 벗할 것이란 황폐한 고도(古都)의 산천과 하늘뿐이었다. 이 유배의 지역에서 나는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그야말로 꽃 같은 젊음을 보냈다. 왕릉에 누워서 달을 보는 것, 기와 조각을 툭툭 차면서 길을 걷는 것, 밤이면 램프 밑에서 책을 읽는 것, 그리고 아무 주막에서나 술을 마시는 것. 그 외에 낮이면 주판알을 튕기는 것이 전부였다. 이 풀 길 없는 고독이 안으로 응결되어 나의 초기 작품 세계의 터가 잡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시를 쓰는 것과 시인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소망이 없었다. --- p.91
그 시대의 절망적인 환경이 나를 향토적인 세계로 몰아넣고 그것에 깊은 애착을 갖게 하였으며 그 세계 안에서 나를 길러 준 것이다. 그 무렵에 사귄 시우(詩友)로는 지훈 한 사람뿐이었다.
지훈도 사귀었다기보다 만났다 함이 적합한 표현일지 모른다. 하루는 서울에 있는 지훈에게서 두툼한 봉서가 왔다. 지훈의 그 자획 하나를 소홀히 하지 않는 단정하면서도 멋있는 글씨로 엮은 긴 사연의 편지를 받았던 것이다. 『문장』에 추천 받은 시우와 서신 왕래를 갖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본인이 그 당시 내가 살던 경주에 나타났다. 그의 밤물결 같은 장발을 바람에 휘날리며 산을 건너다보던 모습과 후리후리한 키에 희멀겋게 시원한 얼굴과 장자풍이 있는 너그러운 몸가짐. 우리는 어두운 여관방에서 날이 새는 줄 모르고 시를, 시대를 얘기하고 서울 시단 소식을 들었다. --- p.94
직장에서 물러나게 되면 당장 생활이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 당시의 그의 형편이었다. 그는 버스 값에도 궁하여 안양에서 서울까지 걸어 다닌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었다. 시를 한 편 써서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고료를 받게 되면 그것이 그날의 양식이 되는 형편이라 하였다. 그럼에도 두진은 근엄하고 꼿꼿한 자세를 누그러뜨리는 일이 없었다. 더구나 어려운 형편을 내색하는 일도 없었다. 신문사에서 팔리지 않는 작품을 가지고 다른 신문사로 가는 동안 우리 셋은 새로이 맺은 우정과 시에 취하여 다른 것은 다 잊고 이야기에 열중하였다. --- p.109
나는 젊었을 무렵 직장 관계로 그 골짜기에 출장을 나가곤 했다. 산골로 산골로 기어드는 외갈래 소로길을 따라 들어가면 닥나무를 벗겨 백지를 뜨는 것으로 유일한 생업을 삼는 가난한 마을이 골짝마다 뜸뜸이 몇 집씩 흩어져 있었다.
이른 봄날 그 소로길에는 온통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벌건 진달래꽃 사태를 이룬 골짝과 길에 일렁거려 산이 흔들릴 듯했다.
그 아지랑이의 황홀감. 한 오리 한 오리에 꿈이 어려 있는 것 같았다. 아지랑이는 한 오리마다 일렁거리며 피어오르는 동안에 햇빛을 받아 빛나기도 하고 때때로 빛을 거두기도 해서 어쩌면 금실 같기도 하고 혹은 은실 같기도 했다. --- p.136
참으로 왜 생(生)이 고된 희열이 될까 보냐. 산다는 것은 한량없이 즐거운 것을. 다만 즐거움을 즐거움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에 고된 것이다. 설핏한 불빛으로 밝혀 보라. 램프가 물고 있는 삶의 희열을, 싸락눈이 오는 길의 서운한 평안을, 그리고 헤세의 구름의 눈매가 이룩하는 조용하게 흐르는 냇물 같은 생애를. 등의자에 앉아서 생각하라. --- p.171
가늘고도 올이 고운 은실오리처럼 봄비는 내리고 있었다. 옷깃을 세우고 나는 정처 없이 걸었다. 어디로 간다는 방향이 정해 있는 것도 아니요, 어디로 가야 하는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봄 바다의 물결이 그립고 이른 봄의 숨결이 그리워 길을 떠나온 것이며, 또한 어느 곳에서나 하룻밤을 묵게 되면 이튿날은 마음 내키는 대로 길을 떠나면 되는 것이다.
나의 오른편에는 바다가 웅얼거리고 있었다. 봄 바다의 짙푸르게 영롱한 물빛. 겨울의 어둡고도 침울한 푸름이 아니다. 바다의 물빛도 봄이 되면 안으로 투명해지며 한결 윤이 흐른다. 햇빛도 고르게 반사된다. 파도 머리가 허옇게 부서지며 포말(泡沫)을 날리는 물이랑이 덮어씌우는 검은 바위도 봄이 되면 기름이 흐르는 것 같다. --- p.211-212
옛말에 군자는 대로행(大路行)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것은 군자는 그늘진 골목길을 걷듯 마음이 외지지 않고 한편으로 기울어져 편협하지 않으며 바르게 행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도시에서 생활해도 의젓하게 대로를 걷지 못했다. 또한 군자도 되지 못했다. 늘 호젓하고도 외로운, 아침 이슬이 젖어 있는 마음의 오솔길로만 걸었다. --- p.212-213
대추나무가 밀가루를 뒤덮어 쓴 듯 하얀 꽃이 자자하게 필 무렵이다. 집집마다 황토 마당이 갈라지고 불꽃처럼 청결한 햇빛이 사방에 넘쳤다. 그 수상한 광휘, 너무나 강렬한 광도 그것은 차라리 맹목적인 광명의 세계였다.
이 눈부신 육지의 밝음을 에워싸듯 6월 바다의 생기로운 쪽빛의 깊은 투명감 속속들이 은은하게 밝은 수심의 헤아릴 수 없는 심원한 느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심상(尋常)한 일 같지 않았다. 물과 바다의 엄청난 잔치가 벌어지는 것일까, 또한 그것의 새로운 혼례 날일까.
--- p.218-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