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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5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639g | 148*200*35mm
ISBN13 9791129518675
ISBN10 112951867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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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별장에, 주인이 온단 말입니까?”

“주인이라기엔 그 위치가 좀 애매하지요. 사실 아직은 글래스턴 후작께서도 처분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폐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국왕의 아들이 아닙니까? 후작 각하도 별수 없으니 제 아들더러 양자로 들이라 시키고 그렇게 몇 년간 외손자를 수도에 두었던 모양이지만, 이제 세상이 바뀐 지도 제법 되었고……. 딸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이니, 그저 처치 곤란인 모양이지요. 그래서 후작께서 일단 도슨 가에 부탁하시려는 겁니다.”

“하긴, 딸 인생 망쳐놓은 손주가 달갑진 않겠지요. 저 역시 딸이 있는 입장이라 이해는 합니다. 참 끔찍한 일이 아닙니까, 그녀가 그렇게 죽은 게……. 그런 일은 생각하기도 싫군요. 그러나 그 아이는 불쌍하게 되었으니.”

“그러고 보니 도슨 씨의 따님이 벌써 열둘인가, 열셋인가……. 따님 보내실 날이 머지않았지요?”

“노튼 씨, 무슨 그런 망발을 하십니까? 제 딸아이는 아직 열둘입니다. 한참 멀었어요!”

장난으로 던진 게 분명한 말에 필립이 씩씩대며 대꾸했다. 필립의 뒤에서 의미 없고 일방적인 언쟁을 바라보고 있던 비비안이 필립의 허리를 덥석 껴안았다.

“아버지!”

“오, 비비. 레이디들과 놀지 않고.”

거짓말처럼 완벽히 누그러진 인상으로 다정하게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 필립을, 노튼이 조금 기가 막힌 듯 바라보았다.

“레이디들은 재미없어요. 안녕하세요? 노튼 아저씨.”

“안녕, 비비안. 더 아름다워졌구나.”

비비안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를 들은 듯 윤기가 흐르는 흑발을 휙 쓸어 넘겼다. 그 반응에는 단 한 톨의 겸손함도 없었다.
노튼이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실소하고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비비안에게 물었다.

“비비안, 네가 몇 살이라고?”

“열둘이요.”

“마침 잘됐구나!”

상당히 작위적인 외침이었다. 비비안이 표정 변화 없이 되물었다.

“뭐가요?”

“그 글래스턴 공자가 열둘이라던데!”

비비안은 그게 뭐 어쨌냐는 표정으로, 필립은 도끼눈이 되어 노튼을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어차피 어린아이들인데.”

“남자애 아닙니까?”

“아니죠. 어린아입니다. 벌써부터 그리 도끼눈 뜨시면 나중에 결혼은 어찌 시키시렵니까?”

비비안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필립과 노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슨 얘기예요?”

“비비 넌 알 것 없…….”

“글래스턴 후작의 손자가 곧 여름 별장에 온단다. 알지? 너희 저택 바로 옆에 있는 고택(古宅) 말이야.”

“그런데요?”

“그 아인 너와 동갑이야. 둘이 놀이 친구가 되면 좋겠는데.”

“무슨 얼어 죽을 놀이 친…….”

“전 놀이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는데.”

비비안의 단호한 거절에 노튼이 순간 당황한 듯 필립을 바라보았다. 입이 찢어져라 흐뭇하게 미소 짓는 얼굴에 곧 고개를 돌렸지만.

“공부할 시간도 부족해서요.”

아무리 평화로운 랭카셔에서 돈 많은 도슨의 딸로 태어났다지만, 그렇게 타고난 것만으로 게으르게 희망찬 장래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비비안은 생각했다.
그녀는 전도유망한 미래를 꿈꾸는 소녀였고, 준비된 인재였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랭카셔의 도슨은 제 손에서 남부의 도슨이 될 것이다.

“하지만 비비안, 글래스턴 공자는 그냥 남자아이가 아니야.”

“그럼 뭐죠? 왕의 사생아? 더러운 불륜의 씨앗?”

또박또박 되묻는 소리에 아이의 앳된 음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노골적인 단어가 섞였다. 노튼이 당황한 듯 덧붙였다.

“도슨 상회가 지금의 크기로 확장하는 데, 글래스턴 후작께서 얼마간 뒤에 계셨다는 건 알고 있지?”

“무슨 애한테 그런 걸 물어보십니까? 당연히 모르…….”

“아버지가 글래스턴 가에 요 몇 년 줄을 선 것쯤은 알고 있어요. 그런데?”

“똑똑하구나. 그래. 도슨 가와 글래스턴 가는 아주 긴밀한 사이란다. 그렇기에 소중한 글래스턴 공자를, 도슨 가를 믿고, 랭카셔에…….”

“듣자하니 별로 소중하게 들리지는 않던데요.”

“……보낸 거지. 그러니까 도슨 가는 그 공자를 잘 돌봐줄수록, 아,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글래스턴 가에 좀 더 잘 보일 거라고요? 눈도장 찍는다고요?”

아이 주제에 어른이 왠지 할 말을 잃게 하는 반문이었다.

어쨌든 비비안은 전도유망한 장래를 위한 자기투자의 일환으로, 노튼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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