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와서 행패요. 자, 아가씨. 얼른 나갑시다.”
“에? 행패? 난 그냥 볼일도 좀 있고 해서 들어온 거라고요, 아저씨.”
“볼일은 무슨 볼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딱 봐도 잡상인인 것 같은데, 물건들은 어디에 뒀어요?”
“물건? 무슨 물건? 그러니까 나는…… 악! 아저씨, 잡아끌지 마요.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다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누굴 만나러 왔다고 그래요. 자, 어서 나갑시다.”
“정말 사람을 이렇게 막 대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 여기가 무슨 임금님이 사시는 궁전이라도 된데? 기껏해야 회사일 뿐이잖아? 아저씨, 잠깐 팔 좀 놔보라니까!”
갑자기 달려든 경비원 두 사람이 사이좋게 자신의 팔을 양쪽에서 나눠지고 다짜고짜 출입구로 향하는 것에 영은은 황당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힐끗, 남자를 향해 시선을 던지자 그는 어디까지나 오만하고 무표정한 얼굴에 싸늘한 비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영은은 순간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야! 너!”
“으악!”
자신을 붙든 팔을 거세게 뿌리치고, 황망한 기세로 다시 붙들려 다가오는 경비원 둘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영은은 있는 대로 화가 난 표정으로 쓰고 있던 모자를 내던지고, 남자를 향해 씩씩거리며 다가갔다.
현욱은 여자가 끌려 나가는 것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하려다가 뒤에서 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온한 아침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여자가 경비원 둘을 메치듯 던져버리고 자신을 향해 쩔뚝거리면서도 씩씩거리며 다가오는 꼴이 말 그대로 미친 여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는 대체 어디서 이런 여자가 회사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걸까 싶은 마음에, 내던져진 채 신음을 쏟고 있는 경비원들을 마땅찮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볼일이 아직 남았나?”
“당연하지! 뭐가 그리 잘난 회사라, 사람을 이따위로 대접하는 거야? 그리고 너! 너 대체 뭐야? 이 회사의 사장이라도 돼?”
“그렇다면?”
“헤에, 정말 그런 거야?”
“‘그렇다면’이라고 했잖아.”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는 영은의 얼굴을 보면서 현욱은 점점 더 심기가 언짢아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떴지만, 영은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현욱의 이곳저곳을 신기한 듯 훑어보았다.
“그렇다면, 나랑 결혼하지 않을래?”
“저 여자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정 이사님한테!”
“제정신이 아닌가 봐.”
이른 아침부터 재미있는 구경거리인 양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여자들이 영은의 엉뚱한 말에 중얼거렸고, 근처의 남자는 저 매섭기로 유명한 정현욱에게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여자를 보면서 숨을 들이켰다.
현욱은 영은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그들을 향해 다가서고 있던 경비원을 노려보았다.
“이제 보니 미친 여자 아니야? 빨리 끌어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구경만 하고 있을 겁니까? 어서 사무실로 돌아가서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하란 말입니다!”
싸늘한 그의 말에 주변에 몰려 있던 사원들은 일순간에 뿔뿔이 흩어져 넓은 회사 곳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영은은 그런 그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다가 다시 자신을 붙드는 경비원들의 손길에 짜증 어린 시선을 던졌다.
“악! 아저씨, 잡지 말라니까!”
“경찰 부르기 전에 어서 나갑시다, 아가씨.”
“경찰이 아니라, 정신병원에 신고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악! 나 저 녀석한테 아직 볼일 남았다고요. 좀 놔봐요.”
“만날 사람이 있다며, 왜 이젠 정 이사님을 붙들고 늘어져.”
“그야, 저 사람 얼굴이 끝내주게 잘생겼으니까 그렇지. 저저 싸가지 없게 노려보는 시선도 멋지잖아. 와아, 정말 마음에 드네.”
“당신 같은 미친 여자가 상대할 분이 아냐.”
“나 안 미쳤어, 누가 미쳤다고 그래?”
“어디 길에 나가 물어봐요. 미친 사람이 자기 미쳤다고 하는 법 있나. 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어서 나가요. 나가!”
“다시 한 번 이 근처에 얼쩡거리기만 하면 경찰이랑 정신병원에 몽땅 신고할 테니, 다신 오지 마요!”
“에이, 아침부터 재수 없게. 소금이라도 뿌려야 하는 거 아냐?”
“으악, 그렇다고 다친 사람을 길바닥에 내던져? 당신들이야말로 미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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