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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말

류성룡의 말

: 큰 글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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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5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297*210*20mm
ISBN13 9788960604377
ISBN10 896060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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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류성룡 柳成龍(1542~1607)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이현, 호는 서애다. 16세에 향시에 급제했고 25세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한 뒤, 여러 자리를 거쳐 1590년 우의정에 올랐다. 왜란에 대비해 형조정랑 권율과 정읍 현감 이순신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했으며, 조선의 기존 방어체제인 제승방략 대신 진관제도를 주장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다. 영의정이 되어 피난을 떠난 선조를 수행했으나 평양에 이르러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다. 평안도 도체찰사로서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으며, 뛰어난 외교적 역량으로 명과 왜의 조선분할 획책을 저지했다. 신분이 아닌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중시한 인재채용 정책을 주장했으며, 백성들을 위해 면천법?작미법 등의 각종 민생 개혁정책을 만들었다. 1598년 북인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당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저술과 학문에 몰두했다. 1604년 다시 풍원부원군에 복직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1607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쟁 후에 집필한 『징비록』『서애집』『신종록』『영모록』『운암잡기』등이 전해진다.
편자 : 강현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졸업 후에 줄곧 출판기획자의 길을 걸어왔다. 최근에는 ‘고전 다시 읽기’라는 취지로 고전들을 원전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흥미롭게 재구성해 엮어내고 있다. 방대한 완역 고전을 읽어낼 수 있는 독자들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서 전문 연구자와 대중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이 기획의 취지다. 엮은 책으로 『이순신의 말』 『영조의 말』이 있다.
역자 : 박승원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철학과에서 문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명대학교?한국체육대학교?경인교육대학교 등에 출강했으며, 재단법인 성균관 학술교육팀장 다산학술문화재단 정본여유당전서 출간팀장 등을 역임했다. 논저로는 ‘주희와 절동사공학파의 논변에 관한 연구’ ‘정이의 천리론과 공부론 연구’ ‘정이 철학에서 성과 기질의 문제’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이순신의 말』『명심보감』『채근담』『영조의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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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을 위해 군주를 세운 것은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옛사람이 “한 백성이 살 곳을 잃으면 왕정의 잘못을 알기에 족하고, 한 여자가 버려지게 되면 백성들의 곤궁함을 알기에 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하니 오늘날 경기 지역 내에서 구렁텅이에 빠져 살 곳을 잃고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하늘에 울부짖어 조화로운 기운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몇 억만이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소의간식(宵衣?食: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옷을 입고 늦게야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임금이 정사에 부지런하고 걱정이 많음을 뜻함)은 언제나 백성의 삶에 두었고, 가엾게 여기고 어루만질 방책을 강구하심은 진실로 이미 이르지 않은 것이 없는데, 오직 백 년 동안 쌓인 폐단이 고질에 빠지게 되어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군사의 수효는 날마다 줄어들지만 인보(隣保: 변방에 사는 백성들에게 가까운 이웃끼리 뭉쳐 적의 침입을 막고 치안을 유지하게 하는 것)는 홍수나 화재보다도 심하고, 공물과 세금은 가혹해 방납(防納: 공물을 대신 납부하고 이자를 붙여 받는 일)하는 무리들은 사나운 호랑이와 같습니다. 이것은 큰 것이고 나머지는 다 논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바꾸어 바로잡지 않는다면, 벌판을 태울 것 같은 기세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 나라의 근본이 무너질 것입니다. --- p.26~27

무릇 작위를 내리는 것은 애초부터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은 덕망이고, 그다음은 재능이고, 그다음은 공로이고, 그다음은 연차입니다. 만약 이 몇 가지에 해당되지도 않는데 까닭 없이 작위가 주어지는 것은 정사에 있어서도 잘못이고, 개인 신상에 있어서도 상서롭지 못합니다. 신은 이미 재능과 덕망으로 선택된 것도 아니고 또한 연차와 공로가 쌓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순서와 등급을 뛰어넘어 우뚝 재상의 반열에 올랐으니 정사의 체통에는 어떠하며, 물정에는 어떠하겠습니까? 신은 영남 변두리의 미천한 출신으로 어리석은 주제에 평소 학문도 제대로 통하지 못해 쓰일 만한 재능이 못 되고, 체질이 허약해 질병마저 더해졌으며, 식견과 도량이 어둡고 얕아서 일에 부딪치면 어쩔 줄을 모르니, 이 어찌 사무를 담당할 만한 그릇이겠습니까? --- p.38

한 번 위급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모두 동요하게 되고, 장군이 없는 군사들은 먼저 들판 가운데 모여 천 리 밖에서 올 장수를 기다려야 합니다. 장수가 이르기도 전에 적의 선봉이 이미 쳐들어온다면, 군사들의 마음이 먼저 동요되어 반드시 궤멸될 것입니다. 큰 무리들은 한 번 흩어지면 다시 모이기가 어려우니, 이때는 장수가 비록 도착했다고 해도 누가 함께 싸우겠습니까? 이전의 진관 제도를 다시 정비해 평시에는 훈련에 용이하게 하고, 유사
시엔 소집할 수 있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또한 앞뒤가 서로 응하고 안팎이 서로 기댈 수 있어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되지 않아 일에 있어서 편리합니다. --- p.57

너희들이 힘을 다해 성을 지키면서 어가(御駕: 임금의수레)가 성에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니, 나라를 위하는 충성이 지극하구나. 다만 이것을 핑계로 난을 일으켜 궁문을 시끄럽게 하는 것은 매우 놀랄 만한 일이다. 또한 조정에서도 성을 굳게 지키자고 장계를 올려 청하고 성상(聖上)께서도 이미 윤허하셨는데 너희들은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하는가? 네 모습을 보니 식견이 있는 사람 같은데, 반드시 이러한 뜻으로 여러 사람들을 타일러 물러가게 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들은 장차 중대한 죄를 범하게 될 것이며,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 p.72

지금 성상(聖上)께서 서쪽으로 피난하신 것은 본래 명나라에 의지하려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지금 북도에 깊이 들어갔다가 중간에 적병이 가로막아 명나라와 소식이 끊기고, 또 불행히도 적병이 북쪽을 침범한다면, 그 위태롭고 절박함이 더욱 심할 것입니다. 지금 조정 신하들의 가족이 모두 동북 지방에 피난해 있기 때문에 각자 사사로운 계책을 마음에 두고 다투어 북도로 향하려 합니다. 신 또한 노모(老母)가 동쪽으로 피난을 떠났으니 반드시 함경도 지역으로 흘러들어갈 것입니다. 사사로운 계책으로 말한다면, 어찌 북쪽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다만 나라의 대계의 측면에서 사사로운 의도는 용납할 수 없기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 p.90

생각건대 명나라 군사들이 퇴각해 주둔한 뒤로 장수들의 마음이 동요되어 어지러이 모두 물러나는데, 좋은 계책이 아닌 듯합니다. 신은 다시 권율을 독려해 행주산성으로 돌아가 지키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목책과 군영이 이미 모두 불타버려 군사들이 자리 잡을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임시로 파주의 뒷산에 주둔하며 이빈(李?)·고언백(高彦伯) 등과 물고기 비늘처럼 진을 치게 했습니다. 이미 임진(臨津) 이남 지역을 굳게 지키고 있으니, 또한 기회를 보아 도성의 동서를 습격해 나아가 취할 계획입니다. 전해 듣건대 이 제독은 지금 황해도 봉산(鳳山)에 주둔하고 있는데, 자못 후회하는 뜻이 있어 군사를 돌려남쪽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만에 하나 이렇게 여러 왜적들이 아직 다 합세하기 전에 뒤쫓아 군량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을 때 대군이 다시 진군한다면 큰 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상께서는 또한 중신을 계속 보내정성을 다해 간절히 요청해 큰일을 이루게 하십시오. --- p.108~109

이렇게 적이 후퇴할 즈음에는 정예 병사를 뽑아 많은 전략을 쓴 뒤에야 적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신이 경기(京畿) 내 여러 고을의 군대를 살펴보니 여러 해를적과 싸워서인지 마음과 담력이 이미 단단해 매번 전투마다 먼저 나섭니다. 추의군·창의군 같은 의병들이 비록 오합지졸이기는 하지만, 열 가운데 하나만 취한다면 어찌 쓸 만한 자가 없겠습니까?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삼남 지방에는 쓸 만한 자가 더욱 많을 것입니다. 강원도 산간에는 사냥을 생계로 삼아 맹수를 때려잡으며 굶주리고 목말라도 지치지 않는 자가 또한 많이 있습니다. 이제 곳곳에서 그런 자를 뽑아 활과 화살, 전투용 말, 양식을 대주고 용맹한 장수들에게 분배해 항상 훈련하게 하고, 또한 각 고을 수령에게 명해 자기 지역 내의 정예 병사를 가려 뒤섞이지 않게 하여 한곳에서 변란이 발생하면 서로서로 응원하게 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군졸이 잘 훈련되어전쟁에 임해 적의 소문만 듣고 흩어져 도망갈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적이 믿는 것은 그저 조총뿐이니, 우리나라도 마땅히 밤낮으로 훈련해서 군사들이 배우고 익히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면, 적의 장기(長技)를 우리도 가지게 될 것입니다. --- p.122~123

신이 금번에 거쳐 간 여러 읍들은 하나같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충주는 적이 오래 주둔하고 또 명나라 군사들이 오가면서 경유한 곳이어서 피해가 더욱 심했는데, 혈혈단신으로 남은 백성이 며칠을 살아가지 못할 것이니 너무나도 애통합니다. 도내 여러 고을의 식량 창고가 이미 모두 비어 서로 옮겨 구제할 대책이 없는데, 다만 소금 굽는 일 하나는 조금 시행해 볼 만합니다. 신이 듣건대 황해도의 풍천?옹진?장연 세 고을의 반경 안에 서너 개의 섬이 있는데, 그 섬 안에 잡목이 빽빽하다고 합니다. 만약 염호(鹽戶)를 불러 모아 소금을 생산하게 한다면, 한 달 사이에 수만 석의 소금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배로 소금을 운반해 호남과 호서 해변의 농사가 조금 잘된 곳에 흩어놓고 곡식과 바꾸어 도성의 백성을 구제하고 또한 개성 같은 곳에 그 곡식을 나눠주어 봄과 가을에 종자로 쓰게 한다면 그 이로움이 매우 클 것입니다. --- p.134~135

충주는 상류에 있어 나라의 문호가 되니, 충주를 지키지 않으면 강 연안의 수백 리가 모두 왜적의 공격을 받는 지역이 될 것입니다. 충주를 보전하려면 마땅히 조령을 막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수문장 신충원(辛忠元)이란 자가, “조령 정상에서 동쪽으로 10여 리를 내려가면 양쪽 언덕이 깎아지르고 가운데 시냇물이 감아 도는 곳이 있는데, ‘응암’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이곳에 성을 쌓아 막으면 불과 백여 명의 굳센 병졸만으로도 조령의 파수가 저절로 견고해집니다. 연풍 읍내와 서면(西面) 수회(水回) 마을은 땅이 아주 비옥해서 마땅히 파수하는 군사들로 둔전을 설치해 경작하면 군량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할 일은 마땅히 사람마다 군사가 되고 곳곳에서 농사를 지어야 만에 하나라도 효과를 바랄 수 있습니다. 신충원과 같은 자를 지금 내려보내 그의 말에 의거해 길목을 지키고 둔전을 설치할 계책을 세우게하십시오. --- p.147~148

나라가 태평하다가 갑자기 왜적의 변란을 만나니, 사람들이 남에게 뒤질새라 흩어져 달아날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힘을 다해 고립된 성을 지키다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도 있었고, 전장에서 마구 죽어가면서도 용맹함을 굽히지 않아 빛나는 의열(義烈)이 다른 사람들의 귀와 눈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때에 너무 많이 죽고 포상도 미치지 못해 지하의 충혼을 위로하지도 못하고 그 명성을 앞날에 드러낼 수도 없었습니다. 경상?전라?충청 감사에게 명해 널리 묻고 찾아서 공론에 따라 보고한 뒤 차례로 포상 명부에 기록하고 또 그 처자식을 구휼해 충의를 권장하십시오. --- p.160

하나, 지금 사람을 등용할 때 반드시 문벌을 먼저 따지는데, 문벌이나 비천함을 따지지 말고 오직 재주에 따라 등용하십시오. 또한 우리나라는 남쪽 지역의 선비를 많이 쓰고 서북에서는 전혀 없었다가 이제 겨우 몇 명이 있습니다. 실제로 서북에 일찍이 재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변란이 일어난 이래 7도가 와해되고 어가가 서쪽으로 거둥했을 때에 관서(關西) 사람들은 그 마음과 힘을 다해 접대하느라 바빴고, 군사를 차출해 군량을 운반하고 명나라 군사들에게 길을 인도했습니다. 이렇게 해 국토를 수복했으니, 그들의 공로가 매우 크지만 지금 조정에 등용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와 같으니, 무엇으로 그 지역의 민심을 위로하며 장래를 위해 권고하겠습니까? 청컨대 해당 관청에 명하여 널리 더 찾도록 해 함경도 사람과 함께 간간이 발탁해 등용하고, 인재들을 다투어 권고하게 해 남과 북에 차이가 없게 하십시오. --- p.176

이때 왜장들 가운데 도성에 있던 자는 평수가(平秀嘉)뿐이었는데, 관백(關白: 풍신수길을 말함)의 조카 또는 사위라고 했다. 나이가 어려 사무를 주관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사 업무는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주관했고, 가등청정(加藤淸正)은 함경도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만약 소서행장·평의지·현소 등을 사로잡았다면 도성에 있는 적군은 저절로 궤멸되었을 것이다. 도성의 적군이 궤멸되면 가등청정은 돌아갈 길이 끊어지고, 군사들의 마음은 어수선하고 두려워져서 반드시 바닷길을 따라 도주하려 했겠지만 도움은 안되었을 것이다. 한강 이남의 적진은 차례로 와해되어 명나라 군사는 북을 울리고 천천히 행진해도 곧바로 부산에 이르러 술이나 실컷 마시면 되었을 것이니, 잠깐 사이에 모든 강산이 조용하고 깨끗해졌을 것이다. 어찌 몇 년 동안 시끄러움이 있었겠는가? 한 사람의 잘못이지만 일은 천하에 관계되었으니 진실로 통분하고 애석할만하다. --- p.194~195

이순신은 한산도에 있을 때 ‘운주(運籌)’라는 이름의당을 짓고 밤낮으로 그 안에 거처하면서 여러 장수들과 군사에 관한 일을 함께 의논했다. 비록 하급 군졸일지라도 군사에 관한 일을 말하고 싶은 사람은 찾아와 말하도록 해서 군중의 사정에 통달했다. 이순신은 작전을 개시할 때마다 부하 장수들을 모두 불러 계책을 묻고 전략을 세운 후 나가서 싸웠기 때문에 패하는 일이 없었다. 원균은 애첩을 데려와 운주당에서 함께 살았으며 무거운 울타리로 안팎을 막아 여러 장수들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또 술을 즐겼는데 날마다 주정을 부렸으며 형벌을 쓰는 데 법도가 없으니 군중들이 수군거리기를, “만일 적병을 만나면 우리는 오직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여러 장수들도 서로 원균을 비난하고 비웃으면서 경외하지 않아서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 p.208

선학(禪學: 선불교)에 대한 경계는 매우 절실합니다. 그러나 강서(江西)의 이단의 학문(양명학)은 퇴계 선생께서 벌써 충분히 철저하게 물리치시고 유가에서 대대로 지켜 왔으니, 이제는 변별해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합니다. 마음 측면에서의 장점은 본래 덮을 수 없고 선현들도 받아들였으니, 무엇이 나쁘겠습니까? 학문과 사변, 성찰과 극치(克治: 사욕을 이겨내고 다스리는 것)는 진실로 급한 일이지만, 만약 마음속에 길러서 쌓아놓은 힘이 없다면 또한 어디에 근거하겠습니까? 평소 벗들과 학문을 논할 때 이와 같이 말했는데, 벗들 사이에서도 저의 본의를 살피지 않고 매번 선학이라고 비난하기에 늘 웃음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보내주신 서신에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니 이제부터라도 통렬히 반성해야겠습니다. --- p.237

대개 군자는 착한 일을 하고 소인은 악한 일을 하는데, 반드시 그 부류들과 서로 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의사소통하게 됩니다. 그런데 소인은 치우친 마음과 사적인 꾀로 오히려 남을 시기하고 누르려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간혹 그렇게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군자는 마음 씀씀이와 일 처리가 모두 공정해 처음부터 남을 시기하거나 이기려는 마음이 없고 동지들과 서로 의논하기를 즐거워해 오직 착한 일을 따릅니다. 그래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고 반드시 벗들과 강론한 다음에 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착하게 여기는 일들을 모아서 착한 일을 하고, 충실하고 유익한 일을 더 확대해서 시행합니다. 그래서 행동에 과실이 없고, 사람들도 또한 그를 위해 충고해주기를 즐거워합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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