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인생이 평안하고 즐거우면 타인의 아픔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왜 아침에는 울어서는 안 되는가 말이다. 내가 쓰는 이유는 그들이 애써 알고 싶어하지 않는 당대 이야기로 그런 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중에서
갈치 받아든 주인아주머니의 환호성은 생생한데 그 여관 자리에는 제과점이 들어서 있다. 이런저런 것을 샀던 슈퍼도 헐리고 단골 중국집은 한식집으로 바뀌었다. 그 자리 가만히 있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나는 긴 시간의 공백이 주는 가벼운 감흥에 젖어 한숨을 내쉬었다. ---「닻 주었던 자리」중에서
활어회는 우리나라에만 있단다. 서로 믿지를 못해 살아 있는 놈에 칼 대는 것을 봐야 한다나. 하지만 회는 적당한 시간 동안 냉장된 게 가장 맛있다. 죽음의 시간이 주는 맛이다. ---「연등천의 여인들」중에서
늙은 부부가 겨울 밤바다 한가운데서 알몸으로 껴안고 상대에게 체온 나눠주고 있는 모습을 나는 잠시 그려보았다. 부부의 애정보다도 더 깊은 차원의 그 무엇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겨울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얼어붙은 남편을 위해 옷을 벗는 그들은 하나가 없으면 남은 하나도 곧바로 소멸해버릴 그런 존재였다. ---「동행의 이유」중에서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대부분이다.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들어가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파도 더욱 높아가고 바람은 사나워진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땅한 게 없다 하더라도 먹을 게 없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도 배가 고플 것이다. ---「사람 떠난 빈 곳으로 바람이 분다」중에서
그러니까 아웃사이더와 언더의 세상에 대해 예방주사 한번 맞아보지 못한 무균의 처녀가 잡균의 사내를 만나버린 것인데 아아, 휘몰아친 그 광풍을 어떻게 다 말한단 말인가. ---「그는 지금도 걷고 있다」중에서
내가 선생께 배운 것은 글 쓰는 기교가 아니라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었다. ---「삶을 궁리하는 방법」중에서
“친구도 없고 장난감도 변변찮은 시골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논다. 무릎이 까지면 자꾸 만져보고 딱지가 앉으면 그 딱지를 뜯어내며 혼자 논다. 시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끝까지 미워할 수 없는 사람」중에서
아비의 구멍을 통해 들어간 반쪽이 나머지 반쪽을 만나 습하고 따뜻한 동굴에서 여물었다가 어미의 구멍을 통해 세상에 나왔고 평생 구멍을 통해 흘리고 먹고 말하고 듣고 풀고 빨고 짜고 쏟고 싸고 끼고 누는 행위를 하다가 마침내 땅에 구멍 하나 파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더란 말인가. 인생 자체가 구멍에서 시작하여 구멍으로 끝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