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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안확 저 / 송강호 역주 | 우리역사연구재단 | 2015년 05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1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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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5년 05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152*225*30mm
ISBN13 9791185614014
ISBN10 118561401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우리역사연구재단에서 펴낸 여섯 번째 ‘우리국학총서’는 자산(自山) 안확(安廓: 1886~ 1946) 선생의 《조선문명사》이다. 안자산 선생은 국학자, 독립운동가로서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하 한국인의 정신사에 찬란한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이회영, 한용운, 이승훈, 오세창 등의 독립운동 선배들과 비밀결사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국어학, 국사학, 국문학, 국악, 미술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엄청난 분량의 저술들을 발표하였다.

이번에 새로 번역된 《조선문명사》는 1923년 서울에서 간행되었으며, 원래 8권 분량으로 기획되었으나, 이 책은 그중 《조선정치사》로 저술된 것이다. 내용은 문명진보론의 관점에서 민족의 생활사를 정치체제의 변화 과정에 맞추어 상고시대부터 조선왕조까지 통사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서술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너무도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해설, 간결명료하면서도 사안의 핵심을 찌르는 깊이 있는 문체, 본문 도처에서 발견되는, 조선사뿐 아니라 그리스사, 로마사, 영국사, 프랑스사, 독일사 등 당시 선진제국들의 역사와 문화에 정통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우리 역사와 세계사와의 비교분석들은 1923년 당시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민족지성의 한 특별한 정점을 보여 주고 있다. 안자산 국학의 특징은 동시대 어떤 국학자보다도 더 세련된 세계사적 감수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 책은 21세기 오늘날에도 널리 읽힐 가치가 충분하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우리국학총서(國學叢書를 펴내며
조선문명사(일명 조선정치사) 해제
부록
역자 일러두기
술례(述例)

제1장 서언(緖言)
제1절 개설(槪說)

제2장 태고(太古) 부락생활시대(部落生活時代)
제2절 조선 민족의 정주(定住)와 그 생활
제3절 조선 민족 이외의 제 종족과 그 관계
제4절 통치자를 갈망하기에 이르게 된 경로

제3장 상고 소분립 정치시대 - 단군시대에서 삼한시대까지
제5절 건국의 기초
제6절 단군의 헌법과 행정
제7절 봉건정치와 그 성질
소분립시대
제8절 정치상 분열
제9절 북방 여러 나라의 정치
제10절 남방 여러 나라의 정치
제11절 당시의 도시
제12절 각 방(邦) 정치의 일관(一貫)
제13절 한토(漢土)에 대한 식민과 그 변동 1
제14절 한토(漢土)에 대한 식민과 그 변동 2
제15절 신설 부락과 그 변동

제4장 중고 대분립 정치시대
상의 일변
대분립시대의 전기(삼국시대)
제18절 세 왕조 건설의 성질
제19절 고구려의 정치
제20절 고구려의 대신(大臣)
제21절 백제의 관제(官制)
제22절 백제의 해외 정책
제23절 신라 왕위 계승법의 특색
제24절 신라 제도의 발달
제25절 관리의 선거법
제26절 신라 지방정치
제27절 삼국 헌법의 공통된 특성
제28절 씨족제도의 발달
제29절 국민의 계급
제30절 경제의 상황 1
제31절 경제의 상황 2
제32절 종교
제33절 삼국의 관계
제34절 고구려의 강적과 외교
제35절 외교로 발생한 자연적인 영향
대분립시대의 후기(남북조시대)
제36절 문무왕의 통일
제37절 후고구려와 대조영(大祚榮)
제38절 대조영의 발해국
제39절 통일신라의 행정
제40절 지방자치
제41절 당나라 제도의 채택
제42절 불교와 귀족
제43절 통일신라의 쇠퇴

제5장 근고 귀족정치시대(고려)
제44절 근고사(近古史)의 의의
제45절 고려조 수립의 과정
제46절 천수대왕의 혁명
제47절 신정치의 4대 강령
제48절 신관제(新官制) 1
제49절 신관제(新官制) 2
제50절 군제(軍制)
제51절 귀족정치의 발생
제52절 귀족정치의 요소 그 하나=승(僧)
제53절 귀족정치의 요소 그 둘=무신(武臣)
제54절 귀족정치의 요소 그 셋=궁신(宮臣)
제55절 지방정치=구역(區域)
제56절 지방정치=관제(官制)
제57절 서경(西京)
제58절 향리(鄕吏)
제59절 사심관(事審官)과 기인(其人)
제60절 촌정치(村政治)
제61절 지방정치의 성질
제62절 사법제도(司法制度)
제63절 형법(刑法)의 정신
제64절 관리 임용과 정방(政房)
제65절 봉록(俸祿)과 전제(田制)
제66절 전쟁과 관리
제67절 노예(奴隸)의 운동(運動) 1
제68절 노예(奴隸)의 운동(運動) 2
제69절 관로(官路) 개방과 남반(南班)
제70절 신조직의 행정
제71절 유교도
제72절 귀족정치의 파괴

제6장 근세 군주독재정치시대(조선)
제73절 태조 이성계의 혁명과 독재정치의 유래
제74절 독재정치의 발달
제75절 입법(立法)
제76절 정기회의
제77절 임시회의
제78절 회의(會議)의 성격
제79절 의결
제80절 조지(朝紙)와 민론(民論)
제81절 국민대표의 발안(發案) 1
제82절 국민대표의 발안(發案) 2
제83절 정당의 발생
제84절 정당의 발달
제85절 당파와 정치 발달
제86절 정부(政府)
제87절 행정 각 부(各部)
제88절 대신(大臣) 1
제89절 대신(大臣) 2
제90절 대신(大臣) 3
제91절 행정장관 및 그 대신과의 관계
제92절 승정원(承政院) 1
제93절 승정원(承政院) 2
제94절 관제(官制)에서의 3대 부
제95절 대성(臺省)
제96절 관리(官吏) 1
제97절 관리(官吏) 2
제98절 관리(官吏) 3
제99절 서리(書吏)
제100절 왕실의 직사(職司)
제101절 지방정치=구역(區域)
제102절 도(道)의 감사(監司) 방백(方伯)
제103절 읍의 원 [수령(守令)]
제104절 어사(御史)
제105절 유향소(留鄕所)
제106절 향회(鄕會)
제107절 향헌(鄕憲)과 촌자치(村自治)
제108절 촌회(村會)
제109절 경찰행정 1
제110절 경찰행정 2
제111절 경찰행정 3
제112절 종교행정 1
제113절 종교행정 2
제114절 교육행정 1
제115절 교육행정 2
제116절 구제행정(救濟行政)
제117절 경제행정(經濟行政)=농업
제118절 경제행정(經濟行政)=상업
제119절 경제행정(經濟行政)=공업
제120절 경제행정(經濟行政)=어염(魚鹽), 삼림(森林), 목축(牧畜)
제121절 토목행정(土木行政)
제122절 교통행정
제123절 외무행정
제124절 군무행정(軍務行政)
제125절 군무행정(軍務行政)=징발(徵發)
제126절 군무행정(軍務行政)=병역(兵役) 1
제127절 군무행정(軍務行政)=병역(兵役) 2
제128절 재무행정(財務行政) 1
제129절 재무행정(財務行政) 2=세입(歲入)
제130절 재무행정(財務行政) 3=지출
제131절 재무행정(財務行政) 4
제132절 사법행정(司法行政)
제133절 가족제도
제134절 계급
제135절 족내(族內)의 도덕과 그 영향
제136절 독재정치의 말기 1
제137절 독재정치의 말기 2=관리의 악화
제138절 독재정치의 말기 3=민의의 타락
제139절 독재정치의 말기 4
제140절 독재정치의 사명

자산 안확 연보와 주요 논저
《조선문명사》 역자 후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자산 안확 安廓 自山
국학자·독립운동가로 호는 자산(自山), 팔대수(八大搜). 필명 운문생(雲門生).
1895년 서울 수하동 소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교육받았다. 1900년대에는 서북 지방의 교육활동에 참여하고, 1910년 일제의 조선병탄 이후 마산의 창신학교(昌信學校)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1914년경에 일본에 유학, 니혼대학에서 정치학을 수학하였다.

1916년경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에 참가하여 마산지부장을 맡았고, 이회영(李會榮), 이승훈(李承薰), 오세창(吳世昌), 한용운(韓龍雲) 등이 참여한 고종의 해외망명 유치계획에 관여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마산 지역의 만세운동을 조직, 주도하였다.

1921년 창간된 조선청년연합회 기관지 《아성(我聲)》의 편집을 맡았고, 다음 해에는 신천지사(新天地社)의 편집인이 되었다. 이후 《조선문학사》와 《조선문명사》(1923) 등의 저서와 국어, 국문학, 국사, 국악, 미술사 등 국학 전반에 대한 글들을 다수 발표하였다. 특히 우리의 전통 음악인 아악(雅樂)이 당대의 중요한 인류 문화유산임을 깨닫고 1928년부터 이왕직(李王職) 아악부(雅樂部)에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4년 동안 아악에 대한 기본적인 정리와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거두었고, 이를 토대로 국어학·국문학에도 새로운 업적을 많이 쌓았다.

저술로는 《조선문명사》, 《조선문학사》, 《조선문법》,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 《시조시학》 등의 저서와 〈조선의 미술〉, 〈조선철학사상개관〉, 〈조선의 음악〉, 〈조선상업사소고(朝鮮商業史小考)〉 등 140여 편의 국학 관계 논문이 있다. 1994년 그의 저술을 모아 영인본으로 간행한 《자산안확국학논저집(自山安廓國學論著集)》이 있다.
역주 : 송강호 宋康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만주학센터 연구원
고려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문사철(文史哲) 전반에 걸친 폭넓은 공부를 하였다. 우리 고대사에 대한 관심에서 《고조선의 화폐와 명도전의 비밀》이라는 대중적인 역사서를 선보인 바 있으며, 만주어 관련 문헌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하였다.
주요 논저와 번역에 《청대 만주어 문헌 연구》, 《청대 만주족의 샤먼제사》(공역), 《만한합벽삼국지》, 《중국어 한자의 어원》, 〈박태원 삼국지의 판본과 번역 연구〉, 〈청대 만주어로 번역된 한적 연구〉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92년 전에 쓰여진 독립운동가 안자산의 너무도 현대적인 한국통사!!

우리역사연구재단에서 펴낸 여섯 번째 ‘우리국학총서’는 자산(自山) 안확(安廓: 1886~ 1946) 선생의 《조선문명사》이다. 안자산 선생은 국학자, 독립운동가로서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하 한국인의 정신사에 찬란한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이회영, 한용운, 이승훈, 오세창 등의 독립운동 선배들과 비밀결사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국어학, 국사학, 국문학, 국악, 미술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엄청난 분량의 저술들을 발표하였다.

일제강점기는 민족문화의 암흑기라고 하지만, 박은식, 신채호, 한용운, 정인보, 최남선, 안재홍, 권덕규, 홍명희 등과 같은 천재적인 민족지성들과 석학들이 국학연구와 저술을 남김으로써 정신사의 명맥을 이어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고 의미 깊은 시대라 할 수 있으며, 안확 선생 또한 위의 국학선구자들 대열에 서서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는 독보적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이번에 새로 번역된 《조선문명사》는 1923년 서울에서 간행되었으며, 원래 8권 분량으로 기획되었으나, 이 책은 그중 《조선정치사》로 저술된 것이다. 내용은 문명진보론의 관점에서 민족의 생활사를 정치체제의 변화 과정에 맞추어 상고시대부터 조선왕조까지 통사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서술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너무도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해설, 간결명료하면서도 사안의 핵심을 찌르는 깊이 있는 문체, 본문 도처에서 발견되는, 조선사뿐 아니라 그리스사, 로마사, 영국사, 프랑스사, 독일사 등 당시 선진제국들의 역사와 문화에 정통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우리 역사와 세계사와의 비교분석들은 1923년 당시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민족지성의 한 특별한 정점을 보여 주고 있다. 안자산 국학의 특징은 동시대 어떤 국학자보다도 더 세련된 세계사적 감수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 책은 21세기 오늘날에도 널리 읽힐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안확의 국학 연구에서 가장 정채(精彩)를 드러내는 것은 《조선문명사 - 일명 조선정치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저술은 8,500책이나 참고했다는 저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료 섭렵이라는 측면에서도 단연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체계적인 정치사라는 점에서도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조선문명사 - 일명 조선정치사》의 구성은 총 6장 140절로 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조선시대를 다룬 장절이 68절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체재면에서 통사형식의 서술을 갖추었으며, 특히 전편에 걸쳐서 세계 각국 정치와의 비교를 시도한 점은 비교사학의 차원에서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 구분과 관련해서도 안확의 시대 구분은 역사의 발전 내용을 담은 것으로 한국 근대 역사학에서 가장 앞선 시대 구분이라고 평할 수 있다. 이는 신채호, 박은식과 같이 단순한 시기 구분에 그치지 않고 자치제의 발달 과정이라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자세한 검토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의 시대 구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태고 부락생활시대

2. 상고 소분립 정치시대
단군 건국부터 삼한 말까지 2,200년간

3. 중고 대분립 정치시대
삼국 초부터 남북조까지 1,000년간

4. 근고 귀족 정치시대
고려 500년간

5. 근세 군주독재 정치시대
조선 500년간

안확은 조선정치사를 서양정치사에 비교해 보면 봉건시대가 없으며, 조선은 고대 그리스와 같이 부족자치와 각 왕들의 분립 정치로 상고시대와 중고시대의 역사를 이루었다고 하였다. 또 자치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데, 조선의 자치제는 단군건국시대부터 있었던바, 그리스 정치와 같은 것으로 동양에서는 선진적인 독특한 생활이라고 하였다. 특히 조선시대 자치단체인 향회(鄕會)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하였다.

“이 향회의 조직은 형식을 오늘날의 회의 단체들에 비하면 못한 점이 없지 않으나, 서양에서 그리스의 정회(政會)보다는 대단히 발달된 경우인 셈이다. 또한, 이 향회는 동양 여러 나라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오직 우리 조선에서만 정치의 발달이 구현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근세 정치의 원기(元氣)는 이 향회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에 정치가 쇠퇴한 것은 향회에 원기가 없기 때문이다. 향회가 있을 때는 군주독재정치이기는 해도 입헌군주제나 공화제와 다름이 없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락함을 이룩하였다. 이 제도가 만일 점차 발달하여 향청회와 유회를 통합한 완전한 조직체를 이루었더라면 어찌 오늘날의 문명국의 정치제도를 부러워할 이유가 있겠는가?”

안확은 또 자치와 관련해서 계(契)에 대해서도 모두가 서로 돕는 일을 실천했기 때문에 일반 자치기관보다 계가 훨씬 훌륭한 조직이라 하면서 이처럼 훌륭한 제도는 명나라의 향약보다 우수하다고 평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조선정치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정신이었다고 강조하였다.

조선의 구제행정에서도 상평창(常平倉) 같은 제도는 1,000년 전 신라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었다고 하고, 의료구제에 있어서도 병을 치료할 길이 없는 이들을 무보수로 치료한 점을 거론하며 박애사업의 전통이 서양보다 앞서 있었다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안확은 조선정치사에서 우리 민족이 자부심을 지닐 만한 대목에 특별히 주목하였다. 이러한 그의 시각은 본문 곳곳에 드러나 있는데, 경제행정의 경우 현재 각국의 제도에 비해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나 시대상황에 비추어 보면 조선의 정치가 서양보다 크게 발달해 있었다고 하면서 “역사를 보는 눈이 있는 자는 나의 말을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하기도 하였다.

안확의 《조선문명사 - 일명 조선정치사》는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선의 정치적 자치 능력과 우수한 전통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이 같은 저자의 입장은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에 대해서도 다수 국민의 힘을 강조하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최초의 건국은 한 사람의 강한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전 민족이 공동 일치된 최대 다수 또 최대의 강한 힘으로 기초를 이룬 것이라 생각한다.” (제5절)

“500년 전제정치라는 것도 태조 이성계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조선 사람 전체가 만들어 낸바, 정치진화사의 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제140절)

안확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서도 당시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외세를 끌어들인 신라를 민족적 반역행위로 비판하며 고구려와 만주사 중심의 역사를 외치던 것에 비하여 삼국통일의 원인을 자치제가 발달한 신라의 정치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서술하였다.

“살펴보면 신라가 당나라를 의지하여 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된 것은 흡사 스위스가 프랑스 혁명시대의 지원 병사에 의지하여 독립 상태의 여러 무리를 통일한 것을 방불케 한다. 이에 대하여 어떤 역사가는 외국의 군대로 동족을 멸망시켰다고 신라를 책망하여 토론하였다. 그러나 동족을 내세우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민족 관념이 확고해진 시대에 치우친 견해이니, 당시에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공격한 것은 동족 간에 원수가 된 것이지만, 당시 민족 관념은 없었던 것 같고 국민적 의식이 상이했던 시대이다. 어찌 시대적 사상의 다름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편견에 의지하여 평론을 고집하겠는가?”

또 조선시대의 붕당정치에 대해서도 당시의 부정적인 평가와 달리 붕당정치의 장점을 긍정적으로 기술하여 동양의 여러 국가들 중에서 조선의 정치가 발달하게 된 데에는 이 당파들이 존재했던 것이 한 가지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모두는 안확이 일제강점기라는 열악한 시대 환경 속에서 조선 민족의 자각과 개조에 주력하고, 또 조선의 자치 능력을 강조하려는 뜻에서 펼친 애국적, 계몽적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회원리뷰 (1건) 리뷰 총점9.0

혜택 및 유의사항?
조선문명사의 현대어 번역이 반갑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g*****o | 2015.06.01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1923년 국학자 안확(安廓) 선생이 쓰신 한국사 개설서인 『조선문명사』를 읽었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위당 정인보의 『조선사연구』, 민세 안재홍의 『조선상고사감』, 남창 손진태의 『조선민족사개론』 등과 함께 자산 안확의 조선문명사는 20세기 초 국학자들의 대표적인 저서로 손꼽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일찍부터 쉽게 풀이된 책이 나온 조선상고사를 제외하면;
리뷰제목

1923년 국학자 안확(安廓) 선생이 쓰신 한국사 개설서인 조선문명사를 읽었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위당 정인보의 조선사연구, 민세 안재홍의 조선상고사감, 남창 손진태의 조선민족사개론등과 함께 자산 안확의 조선문명사는 20세기 초 국학자들의 대표적인 저서로 손꼽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일찍부터 쉽게 풀이된 책이 나온 조선상고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저서들은 그저 이름만 거론될 뿐, 실제로 읽은 이들은 많지 않다. 30년 전 대학도서관에서 위당 정인보의 조선사연구를 처음 접했을 때였다. 위당이 어떤 주장을 펼친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과, 그의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어떤 의무감 때문에 독서를 시작했지만, 너무나 어려운 한자들과 외국어 등이 난무한 그의 책을 읽는 것은 고역이었다. 결국 완독을 하지 못하고, 중요한 부분만을 발췌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들의 책은 대개 20세기 초반의 국한문혼용체로, 한문 원전만큼이나 읽기가 어렵다.

 

안학은 한글 전용론을 펼친 주시경과 심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국한문혼용을 주장했다. 지금 우리들은 국어 전용론의 한계로 국한문혼용체의 그의 글을 읽기를 어려워한다. 한글 전용론을 펼치는 우리나라라면, 마땅히 국한문혼용체로 쓴 20세기 고전들을 쉽게 한글로만 바꾸어놓은 노력을 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학문의 단절없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의 고전들은 읽기 쉬운 현대어로 제대로 옮겨지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역사연구재단에서 수년 전부터 우리국학총서를 발행해, 국학자들의 책을 현대어로 바꾸고 역주까지 달은 책들을 출판해오고 있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 권덕규의 조선유기략, 정인보의 조선사연구 상, , 안재홍의 조선상고사감, 그리고 이번에 송강호씨의 역주로 조선문명사가 새롭게 출간되었다.

우리나라는 해방 된 후, 단재와 위당 등의 학문이 단절되고,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식민사학자들과 그의 제자들이 사학계를 장악하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 국학자들의 학문은 배척된 반면, 서구식(일본식 포함) 교육을 받은 학자들의 연구 방법 또는 업적만을 제대로 된 것이라고 인정되면서, 우리나라 학문은 사실상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해 버렸다. 그 때문인지 한국사학계에서도 사고전서를 소화해 주제별로 분류해 계통을 세운 한치윤의 해동역사조차 제대로 인용하는 학자들을 거의 없었다. 국한문혼용체에 20세기 초 고전적인 어법으로 사용된 국학자들의 책을 읽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단재의 학문조차 배척당하는 마당에 위당이나 민세, 자산의 업적들 되돌아보는 이는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국학을 진흥시키기 위해 여러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가장 좋은 국학 진흥 방법은 먼저 국학의 기틀이 되는 선배 국학자들의 연구 성과들부터 현대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후학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역사연구재단의 사업 방침은 요란하게 국학을 진흥시키겠다고 떠드는 단체들보다 훨씬 더 현명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글쓴이도 30년 전 읽지 못했던 조선사연구를 완독할 수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안확의 조선문명사는 안확이 본래 계획했던 조선문명사 8권 가운데 한권인 조선정치사에 해당된다. 나머지 7권 가운데 조선문학사는 간행되었지만, 나머지 6권은 출간되지 못했다. 1886년에 태어난 안확은 1923년 삼일운동을 경험한 후 저술했다. 안확이 이 책을 출간할 당시,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그의 문명사가 출간되자, 동아일보는 출간 축하회가 열린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0년대 저명했던 그는 오랫동안 잊혀왔다. 그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다시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연구업적에 비해 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감탄스러웠던 점은 그가 조선의 역사를 서양사와 비교하면서, 우리 역사가 결코 서양에 비해 후진적이지 않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서양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정치사의 양상을 그리스, 로마, 중세 유럽, 근대 독일이나 영국 등과 비교하면서 우리 정치사의 장점을 드러냈다. 그는 사회진화론의 관점의 영향을 받아 우리 역사를 진화의 관점에서 발전적으로 보았고, 특히 지자체의 발달을 크게 강조했다. 그는 다수 인민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우리 역사를 발전시켰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이해했다. 당시 식민통치하의 지식인들이 조선사를 비판적으로 본 것과 달리, 그는 조선을 민족사에서 가장 문명이 발전한 시기로 보았다. 조선국권회복단 마산지부장을 맡기도 했던 독립운동가인 그의 글에는 우리 민족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들어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스스로 조선문명사를 쓰기 위해 8,500권의 책을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정치사 분야에 해당되는 이 책에서도 그의 폭넓은 독서량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 많다. 신라의 화폐에 금전, 연전, 3종이 있고, 그 형태는 모두 문양이 없다는 표현은 그가 한치윤의 해동역사를 보았거나, 1149년 송나라 홍준이 펴낸 전통(錢通)을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내용이다. 물론 그가 6두품인 최치원을 평민이라고 본 것이나, 고려 말에 남반이 권력을 독점했다고 본 것 등 현재 학계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도 펼친 점도 많다. 몇몇 사소한 문제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우리나라 정치사를 긍정적으로 정리한 거의 최초의 학자라는 점에서 그의 학문적 업적은 결코 무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안확의 조선문명사가 현대어로 옮겨져 출간된 것은 우리나라 국학 연구에 있어서 소중한 디딤돌을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업적으로 볼 때 이런 책들은 결코 많이 팔릴 수는 없는 책이다. 이런 책들을 묵묵히 남들이 알아주건 그렇지 않건 간에 뚝심을 갖고 국학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역사연구재단의 노력은 참으로 존경스럽다. 동북아연구재단 등이 해야 할 일을 민간 재단에서 말없이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아름답다. 묵묵히 일하는 이분들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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