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탄식 속에서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은, 통상의 다른 철학자들처럼 노자는 자신은 위대하고 세상이 천박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와 반대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노자의 특이한 점이다.
소크라테스만 해도 그가 아테네 법정에서 구사했던 자기옹호의 변론을 들어보면, 그것은 다방면에 걸친 인생의 지혜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결국 아테네의 어떤 누구도 소크라테스 자신 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자는 소크라테스와는 정반대의 관점에 서있다. 노자에 따르면, 지혜롭고 영특하며 똑똑하고 쓸모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고 오히려 자기는 우매하고 어수룩하고 촌스럽다는 것이다. 공개리에 남보다 자기가 더 못났다고 말하는 노자, 이런 사람을 상대로 우리는 결코 싸울 수 없다. 그래서 노자에게는 결코 적이 없다. 고요한 물처럼 노자는 소리 없이 우리 옆을 흘러간다. 주변의 만물을 촉촉이 적시면서. 우리는 노자가 우리 곁을 지나가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노자이다.
---「진리는 말하여질 수 없다」중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려 하는가.
[평범 속의 평범] ─ 이것은 평범 속에 묻혀 어떤 비범한 일도 못해보고 죽은 인생, 찌질한 삶이다. 노자식으로 표현하자면 ‘무위이무위(無爲而無爲)’라 할 수 있다. 무위(無爲)가 아무리 좋지만, 아무것도 못 이루는 무위는 무위도식(無爲徒食)일 뿐이다.
[비범 속의 위태] ─ 이것은 너무 비범하려 애쓰다가 인생을 망친 경우이다. 노자식으로 표현하자면 이것은 ‘유위이유태(有爲而有殆)’라 할 수 있다. 함이 있으나 위태롭다. ‘너의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약하리로다’가 이 경우이다.
[평범 속의 비범] ─ 사람들은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남들이 번쩍번쩍 빛나려 할 때 이 사람은 자신의 광채를 부드럽게 하여 주변과 하나 되려하고, 남들이 부산하게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이 사람은 고요히 뿌리로 돌아가려 하며, 남들이 날카롭게 칼끝을 벼릴 때 이 사람은 적당한 지점에서 멈추어 서려 한다. 요컨대, 남들이 가득 채우려 할 때 이 사람은 자신을 비우려 하는 사람이다.
늘상 비우려 하는 까닭에 이 사람은 언제나 새롭다. 그는 비어있기 때문에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기 때문에 더욱더 새로울 수 있는 것이다. 노자는 이런 사람을 평하여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라 하였다. ‘함이 없으나, 하지 못함이 없다’란 뜻이다.
---「문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중에서
몇 년 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용산참사’와 같은 일은 노자의 관점에서는 국가의 존재의의를 의심케 하는 일이다.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 국가는 백성을 해쳐서는 안 되고,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 요컨대, 국가는 ‘상인(傷人 :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국가의 책무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것을 수행하는 자도 위정자이고 어기는 자도 위정자이다. 위정자가 독선과 교만에 빠지면 사회가 위험에 처한다. 노자가 성인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취지이다.
---「문 밖에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중에서
만일, 검약의 정신을 결한 자에게 나라의 곳간을 맡기면 그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똑같다. 그들은 얼마 안 가서 나라의 곳간을 거덜낸다. 그 고양이들은 좋은 대학 나오고, 말 잘하며, 똑똑하다. 몇 년 전에 있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세계를 뒤흔든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 등은 멍청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자들이 한 짓이다. 그들은 거의 고양이처럼 세련됐다. 발걸음은 사뿐사뿐하고 눈은 쉼없이 반짝인다. 그들은 먹잇감을 포착해내고, 뜯어 발기며, 피로 목욕을 하며, 웃어젖히면서, 샴페인을 터트린다.
---「학문이 끝나는 곳에 도가 있다」중에서
노자의 말은 오묘하고 그윽해서 어떤 자들은 그것으로 ‘꽃’을 만들고, 어떤 자들은 그것으로 ‘칼’을 만든다. 노자의 글귀를 통해 ‘꽃’을 만들던 ‘칼’을 만들던 그것은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다만 꽃을 만든 자는 널리 향기를 세상에 퍼트려 주기를 바라고, 칼을 만든 자는 그 칼날을 너무 벼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향기는 멀리 퍼져갈수록 좋지만, 칼날이 예리하면 서로 상하기 때문이다.
---「학문이 끝나는 곳에 도가 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