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를 즐기다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할 기회가 있다. 이 중 유창한 말로 사람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그저 상대의 말에 끄떡끄떡 몇 번만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특별한 유머 없이 상대를 즐겁게 한다면 이미 유머지존이다. 사람을 웃기는 것은 유머의 기술에 속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경청함으로써 상대를 즐겁게 하는 능력은 예술의 경지에 속한다.
유머감각을 갖고 싶어 하는 리더들이 정말로 많다. 그들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수십 년간 맺어 온 인간관계를 통해 웃음과 유머의 파워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리더들은 수첩 속에 유머 몇 개쯤은 비상용으로 준비해놓고 자신의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는 귀를 열어 상대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기보다는 준비한 유머를 던질 기회를 찾는데 몰입한다. 당연히 상대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화하는 내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언제 유머를 던질 것인지 살피느라 낑낑 대기만 한다.
사실 유머가 웃기는 것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웃어주는 것에 있다. 그래서 잘 웃기는 것보다 잘 웃어주는 사람이 고마울 때가 많다. 유머 하나 던질라치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 이야기에 귀를 열고 웃을 준비를 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재미가 없어도 웃음으로 반응해주며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고 싶을 정도로 고마운 마음이 든다. 잘 웃기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고 반응해주는 사람은 그 자체로 강력한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긴다.
몇 년 전 유럽여행을 하던 중에 한 중년의 프랑스인과 한 숙소에 머문 적이 있다. 둘 다 영어가 제 2외국어인지라 서로를 배려하며 굼벵이 굴러가듯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사람들의 유머감각을 키워주는 일’을 한다고 소개했더니 재미있는 일을 한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이 아는 유머감각은 사람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말할 때 고개를 끄떡이고 웃어주며 반응해주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나의 견해와 생각이 달라도 이해해주고 반응해주는 프랑스의 똘레랑스Tolerance 정신의 핵심이 유머감각이라는 것이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유머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좋은 도구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입으로 웃기는 것보다 귀로 웃기는 사람이 진정한 유머지존이라고 믿게 됐다. 유머를 전혀 몰라도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부전승의 전략은 바로 온 몸으로 반응해주는 “경청”에 있었던 것이다.
‘수재는 달변이요 천재는 눌변이며 도인은 말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말이 없음은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몰입되어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웃기지 않아도 그런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인간관계에서 입보다는 귀가 훨씬 무서운 이유다.
_ 마음을 잡으려면 귀로 잡아라(38p-40p.)
저격수가 무서운 것은 무작정 많이 쏘아서가 아니다. 한 발을 쏘더라도 목표에 명중될 확률이 높고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리더의 유머는 당연히 저격수 같아야 한다. 그런데 어디서든 사람을 웃기려고 하는 유머조급증 환자가 꽤 많다. 회의시간, 술자리, 모임 등 따지지 않고 유머를 무차별적으로 쏘아댄다. 하지만 눈감고 그저 하릴없이 쏘아대는 딱총과 같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준비 없이 웃기려고 대충 유머를 막 던지면 쏟아지는 비난에 데뷔전이 곧바로 은퇴전이 될 수 있다. 매일 서너 개씩의 유머를 쏟아내며 웃으라고 협박하는 것보다 상황에 적절한 단 하나의 유머가 사람의 마음속에 파고든다. 단 하나의 유머지만 저격수처럼 단 한방에 사람들을 뒤집어놓고 끄떡이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폼 나는 유머를 저격수처럼 할 수 있을까?
1단계: 좋은 유머를 선별하라(Pick up)
2단계: 유머에 메시지를 부여하라(Point message)
3단계: 유머시나리오를 작성하라(Plan)
4단계: 미리 상황을 예측하라(Predict)
5단계: 연습하라(Practice)
---「100% 성공하는 5단계 유머시나리오 성공기법」중에서
코미디의 황제 밥 호프는 ‘유머는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유머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갑작스런 상황이지만 그에 딱 맞는 유머를 던질 수 있다면 최고의 유머고수라 할 수 있다. 특히 분위기가 긴장됐을 때, 상대방을 설득할 때, 위기상황을 벗어나고자 할 때 등 수많은 상황에서 유머를 던져 유쾌하게 빠져나오는 것은 모든 리더들의 꿈이다. 하지만 원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타이밍을 잡고 멋진 유머를 던지는 것은 타고난 유머감각의 영역이다. 유머를 많이 수집한다고, 유머 책을 많이 읽는다고 단시간 내에 유머감각이 늘지 않는다. 타이밍을 잡는 능력은 거의 본능적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타이밍을 잡고 효과적인 유머를 하는 방법이 있다.
유머스피치는 형세를 파악하라
손자는 싸울 때 형세形勢를 중요시했다. 형形은 움직임이 없는 상태이고 세勢는 움직임이다. 물이 저수지에 가득 담겨있는 모습이 형形이라면 저수지의 물이 한꺼번에 계곡을 휘몰아치면서 쏟아지는 것을 세勢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유머스피치는 이미 준비된 상황이기 때문에 원하는 상황에서 형세를 장악할 수가 있다. 잘 준비하고 연습한 유머시나리오를 가지고 파죽지세처럼 공략하는 것이다. 파죽지세란 대나무 결을 칼로 쪼개면 한 번에 대나무가 갈라지듯 끝까지 밀어붙이는 에너지를 말한다. 따라서 형이 잘 준비되어 있으면 세로서 주도권을 가지고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나무가 갈라지듯,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 채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가듯 타이밍을 잡아챌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준비된 유머시나리오이기 때문에 타이밍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
유머타이밍을 기다리지 않고 만들어라
전쟁학자 클라우제비츠는 다양한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을 전쟁의 천재라고 했다. 나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빌려 상황에 맞게 정확하게 유머를 던지는 사람을 유머고수라 부른다. 유머고수는 타이밍을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타이밍을 만든다. 유머타이밍을 만드는 것은 일상적인 유머토크의 상황에서 자주 벌어진다.
_ 타이밍을 잡아야 웃음을 잡는다(99-100p.)
이탈리아의 유명한 예술가인 루시가 외국 인사들을 자신의 공연에 초대했다. 그런데 참석한 사람들은 이탈리아어를 전혀 몰랐다. 루시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애절하고 절절한 표정과 어조로 대사를 읊조리면서 연기했다. 그 모습에 감동한 관객들은 서서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루시는 어떤 내용을 말했기에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게 했을까? 놀랍게도 그가 읽은 것은 바로 메뉴판이라고 한다. 내용과 상관없이 어떠한 표정과 목소리로 표현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프로이드는 유머의 성공 여부는 내용보다는 전달하는 방법에 달려 있다고 했다. 사실 웃음이 터지는 것은 유머의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표현력 때문일 때가 많다. 실감나는 표정과말투, 몸짓으로 유머를 연기할 때 더 재미있고 실감난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에게 우스개를 할 때 유머의 내용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말할 때의 표정, 손짓, 몸짓, 말투, 목소리 톤을 놓쳐버리게 된다. 유머는 유머의 내용과 표현력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상황에서 나오는 종합예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머의 내용만 가져가서 웃기려고 한다면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많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아무리 좋은 내용의 유머라도 적절한 방법으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웃음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유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3짓 기법’으로 유머표현력을 익혀보자. 첫 번째는 ‘말짓’이다. 말의 속도, 어조, 높낮이 등 어투를 잘 살펴야 한다. 목소리를 낮추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힘차게 발음해야 한다. 말짓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웃음을 만드는 펀치라인에서 호흡을 조절하고 목소리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얼굴짓’이다. 유머할 때 얼굴표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유머를 잘 구사하는 사람은 다양한 얼굴표정을 지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무엇보다 유머를 잘 구사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늘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다. 즐거운 얼굴 표정에서 나오는 유머는 더 실감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세 번째는 ‘몸짓’이다. 몸짓은 손짓, 발짓 등 온 몸을 이용해서 유머를 연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유머를 잘 구사하는 표현기법을 살펴봤다. 하지만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해도 한 번의 실천만큼 중요하지 않다. 반복적인 노력으로 자신만의 3짓을 완성하는 것만큼 유머표현력을 높이는 방법은 없다.
몇 년 전 개그맨 김원효의 인터뷰기사를 보면서 유머표현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을 배웠다. 그가 개그콘서트에서 [비상대책위원회]란 코너를 할 때 그의 분량은 A4용지 4장짜리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원고가 완성되면 무조건 100번 정도 반복적으로 읽었다고 한다. 반복적으로 읽다보면 어느 순간 대본의 상황에 맞는 표정과 몸짓이 저절로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강조하고, 멈추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대본이 저절로 외워지는 것은 기본이다.
---「유머표현력을 완성하는 3짓 기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