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학이 발전하고 제도적 위상을 가지게 되었지만, 북한학에 대한 엄밀한 학문적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북한학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성격 때문이다. ‘북한’을 대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북한 연구는 북한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적 지위를 가지면서도 다양한 학문 분과에서 북한을 연구해왔기 때문에 연구의 한 영역으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또는 북한이 한반도의 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국가로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학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그리고 북한을 대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주제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종합학문으로서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최근에는 북한 연구가 통일 및 평화 관련 연구와 북한이탈주민 연구까지 포괄하면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 p.10~11
북한 및 통일 연구는 지역 연구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으로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학의 일부다. 따라서 북한학은 북한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분단 반세기 동안 해결하지 못한 민족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특수한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사회현상 분석에 있어 이데올로기와 민족문제가 가치논쟁으로 개입할 경우 적절한 방법론 도입이 어렵다. 북한 연구에서도 우 편향과 좌 편향을 넘어 새로운 인식론과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북한 연구는 내재적 접근 논쟁에서 본 것처럼 인식론과 방법론이 혼재하면서 방법론 논쟁보다는 인식론 논쟁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치지향적인 인식론 논쟁을 넘어 연구주제에 적합한 방법론을 도입할 때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 p.47
북한 및 통일 문제의 사회적·객관적 환경은 과거와 달라져 있으며, 그로 인해 좀 더 복잡한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과학적 상상력’이 더욱 요청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분단의 극복만이 아니라 분단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 대한 근원을 밝혀내고, 이를 둘러싼 지배의 전략을 드러내야 할 요구가 있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분석이자, 동시에 분단에 따른 구조적 폭력과 계급지배전략과 이데올로기적 억압 등을 밝혀내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 내재한 분단담론의 질서를 해체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작업들은 사회과학이 짊어지고 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최근 북한 및 통일 연구에서 제기되고 있는 평화와 통일 문제, 북한인권 문제, 사회갈등 문제 등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서 분단을 통해 국가의 독점적인 폭력이 정당화되고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적 협소함을 벗어나 ‘삶의 평화’라는 측면이나 올바른 ‘한반도 인권’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상상력이 요청되는 지점이라 할 것이다. --- p.101~102
북한 연구에서 객관성과 실증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공식간행물에 대한 정독이 필수적이지만, 이들은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게 낮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1960년대 이후, 북한에서 출판되는 문헌들이 모두 한 목소리를 냄에 따라 북한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의 가치가 크게 감소했다. 경제분야의 전문적인 문헌의 경우, 통계를 활용해 북한의 구체적인 경제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원론적인 설명이나 주장을 펼칠 따름이다. 또한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읽는 사람들을 지치고 짜증나게 하기 십상이다.
북한에서 학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공식적인 매체에서 글로 표출하는 데 제약이 매우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자들은 당면한 제반 경제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진단과 처방을 내놓아야 하고, 더욱이 이를 일선 경제현장의 실무자 등에게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학자들 나름의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이 글은 북한의 경제분야 전문 계간잡지인 ≪경제연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공식문헌에 대한 정독을 통해 자료를 발굴하고 생산하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자료는 그 자체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연구자의 노력으로 발굴, 생산될 수 있다. 그래서 자료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해석이란 자료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 p.109~110
특히 정부 차원의 대북지원이 중단되고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북한 경제가 체제붕괴 직전에 이른 위기라는 분석이 정부 당국자들이나 일부 대북 인터넷매체들을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를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거나 결론내릴 방법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관측이 단순한 논란의 영역에 계속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따라서 북한의 경제상황을 데이터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논의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통해 북한 경제의 추이가 과연 어떠했는지를 더욱 설득력 있는 방법론으로 유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면 최선의 결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 산하 지구물리자료센터의 위성관측데이터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검토하고자 한다. 1992년부터 최근까지 매일 저녁 북한을 촬영한 야간 위성사진의 연도별 합성본과 그에 등장하는 불빛 개수의 증감추이가 그것이다.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 전 미국 국방장관이 집무실 벽에 붙여놓았다고 해서 유명해진 이들 사진은, 총 다섯 개의 미국 기상관측위성이 매일 전 세계를 돌며 촬영한 것 가운데 구름 등의 방해물이 없는 것만 모아놓은 방대한 분량의 자료다.
이 연구에서는 NOAA 위성사진에 나타난 야간 불빛 개수의 변화 추이와 각 국가의 경제상황 사이에 면밀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입증한 미국 측 관련 연구를 살펴보고, 이 데이터를 경제통계가 부실한 제3세계 국가의 상황을 가늠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선행 연구의 결론을 소개한다. 또한 이러한 방법론을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수집된 북한의 야간 불빛 개수 통계치에 적용했을 경우 해당기간 북한 경제의 변화에 관해 어떤 단서를 얻을 수 있는지 따져본 뒤, 그 결과를 한국은행의 GNI 통계치 추이나 세계은행의 통계치 추이와 비교검토하는 작업까지 진행하겠다. --- p.199~200
ANT는 그 문제의식이 지니는 성찰성만으로도 사회과학 일반뿐 아니라 북한 연구에서도 여러모로 방법론적으로 함의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연구사적 측면에서 북한 연구가 지녔던 인식과 방법에 대한 성찰의 측면이다. 사실 분단체제의 속성 때문에 북한에 대한 애증에 찬 열망들은 북한 인식의 다양성을 제약했다. 최고 지도자, 이데올로기, 권력투쟁 등 몇 가지 익숙한 연구 표상과 주제에 안주하거나 인상주의적 해석과 정책적 평가에 치우친 연구들이 주류를 이루거나, 북한사회를 여타 사회과학에서 주제로 삼는 대상만큼 일반적 연구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교정대상이나 예외적 정책대상으로 보는 태도 등이 다양한 이론적 시도와 분석기법의 적용을 가로막는 방법론적 편견으로 작용했다. 그런 측면에서 ANT를 잘 활용한다면 북한 연구가 행했던 연구주제 설정과 인식 및 방법론 구사에 대한 성찰과 메타비평의 계기를 줄 수 있다.
--- p.287~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