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대 국가의 틀에서 보면 남북관계는 국제관계의 틀로 규정된다. 또한 이 틀에서 보면 남북은 같은 민족이면서 서로 다른 국가 정체성 때문에 정치적 대결과 경쟁을 하는 갈등과 극복의 대상이다. 반면 남북을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로 보면 별개의 국가 정체성보다는 하나의 민족에 방점을 두면서 사실상 하나의 민족공동체와 국가를 지향하는 한시적 측면의 두 국가 정체성이 강조된다. 또한 남북은 같은 피와 언어, 그리고 오랫동안 역사 문화를 공유한 공존공영의 대상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남북이 통일 문제에 관해 합의한 문서 중 가장 중요한 대표적 두 가지 문서인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6·15남북공동선언은 두 개 국가론을 명확하게 인정하기보다는 사실상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론을 더 중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p.22
새로운 통일방안 논의는 몇 가지 수정해야 할 구체적인 문제들을 제기한다. ‘민족공동체’라는 명칭 변경을 비롯해 통일 과정에서 단계 세분화와 남북 차이 및 국제환경의 반영, 통일한국의 정치체제와 관련한 지방분권적 연방제의 도입 등이다. 이들 문제를 과연 국민적 합의에 따라 해결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사회에는 ‘민족’ 개념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이 존재할뿐더러 민족주의에 목을 매는 북한 정권의 입장을 감안하면 ‘민족공동체’를 수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통일 과정에 대한 문제도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결과로서의 통일’이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합의에 이르기 어려울 것이고, 통일방안에 국제환경 변수를 반영하는 것도 ‘자주’나 ‘자결’의 원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방분권적 연방제를 통일한국의 정치체제로 삼자는 제안도 북한의 연방제와 어떻게 차별화될 수 있을지, 또한 북한이 이를 수용할 것인지 등의 의문을 분명하게 해소하기 어렵다.--- p.54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평가는 국내 정치적 사안에 대한 시각과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평가는 국가보안법 폐지, 대미관계, 반공이데올로기와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박정희 시대 및 민주화 세력에 대한 평가와 같은 국내 정치적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대북·통일 문제는 한국 사회의 이념적 갈등의 주요 원천이며, 그러한 이념적 갈등은 서방에서처럼 경제적 가치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한국 사회의 세대 간 경험과 과거 역사에 대한 평가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남남갈등은 복합적 양상을 띤다. 남남갈등은 일차적으로 남북관계 및 통일 문제에 대한 이념갈등에 뿌리를 둔다. 이념적 성향에 따라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다르다. 또한 남남갈등은 지역갈등의 양상을 띠기도 하며 통일 문제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이를 포함한다. 남남갈등에는 이념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p.66
한편, 사회문화적 공동체를 이루는 문제는 제도적으로 민족공동체를 실현한 다음에 이질적인 사회문화의 통합이 필요한 문제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은 지난 70여 년간 이질적인 사회문화적인 환경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가치관과 문화가 체질화되었다는 점을 통합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개방적인 사회체제에서 다양한 가치관으로 생활해온 데 반해 북한은 폐쇄적인 사회체제에서 체제가 허락하는 유일한 가치관만이 존재하는 사회다. 다양한 사회를 경험하지 못해 생긴 사고체계의 경직성은 제도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유연성이 결여되는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 사회의 폐쇄사회에서 개방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울러 일인독재에서 비롯된 봉건적인 문화는 시민사회의 참여적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북한체제가 개방사회로 전환되고, 시민사회의 문화를 지닌 사회로 변화할 것이라고 쉽게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러한 변화의 동력은 북한 자체보다는 한국의 역할에서 찾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다. 즉, 한국 내 북한 주민에 방점을 둔 적극적인 교류와 협력에 길이 있으며, 민족공동체로서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작업은 체제통합 이후의 과제가 아니라 통합 이전부터 전개되어야 할 과업이다. 그러므로 통합에 대비해 적극적인 교류협력 사업을 전개해 신뢰를 회복하고 남북이 하나임을 확인하고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p.86
동시에 10·4남북정상선언에서는 한반도 평화 정착과 공동 번영을 위해 남북한 간 경제공동체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이를 좀 더 세분화, 구체화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남과 북은 경제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이 사업을 위해 각종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했다. 또한 남북한 신뢰관계를 촉진하고 정착하는 핵심동력으로 남북경협을 강화시키는 방안에 합의했는데, 이는 남북경협을 미래 지향 단계로 발전시켜 공동 번영의 틀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10·4남북정상선언에서는 군사 분야 등 상위 정치 영역의 이슈를 남북한 공식 논제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는데,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 선언 문제를 남북한 최고지도자가 합의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주장한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미국이다’는 입장을 변경시켰다는 것도 후속조치의 이행에 따라서는 높이 평가할 만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10·4남북정상선언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즉, 제1항에서 ‘6·15공동선언의 이행’과 ‘우리민족끼리’ 및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이 합의·강조된 것은 김정일의 통일론에 기초한 통일전선의 낮은 단계 연방제론, 평화 공세의 민족대단결론과 민족 공조론과 연계될 수 있기 때문에 남한 사회에서 남남갈등·이념갈등·보혁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p.115
북한이 1990년대 초·중반 ‘체제 붕괴’ 직전까지 몰린 것은 사실이다. 사회주의권 붕괴로 인한 외부 원조 감소, 소련·중국의 한국 수교(1990년, 1992년) 이후 우호가격 거래 중지, 북·미관계 악화(1993년), 김일성 주석 사망(1994년), 자연재해 및 고난의 행군(1995~1997년) 등은 북한을 붕괴 상황으로 몰았다. 40만~400만 명에 이르는 주민이 굶어 죽었다. 이때 등장한 논리가 ‘북한 붕괴론’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예상과 달리 생존했다. 후계자 김정일의 충분한 후계 준비, ‘선군정치’를 통한 강력한 통제, 주민들의 ‘일심단결’과 자력갱생, 체제 붕괴의 불안감으로 인한 핵심 엘리트 단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특히 주민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때우면서 피나는 자구책을 마련했고, 중국과의 공식·비공식 무역을 통한 식량 구입으로 근근이 버텼다. 1997년 10월 김정일이 당 총비서로 선출되어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체제는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p.127
반면 급진적 통일 시나리오는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북한체제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북한체제가 남한체제로 흡수 통합되는 시나리오다. 급진적 통일 시나리오는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며 남북 양측에 심각한 영향과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막대한 통일비용을 남한이 부담해야 한다. 경제적 부담 외에도 급속한 통합에 따른 주민 간 이질감이 통합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해 결과적으로 외형적으로는 제도적 통합을 이루어도 정서적인 통합에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독일의 사례를 볼 때 급진적 통일의 경우 한 체제가 이질체제로 통합되면서 혼란이 유발되었다. 통일한국 또한 막대한 통일비용의 재정적 부담이 따를 것이며, 최악의 경우 통일이 남북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통일 시너지가 발생하기보다 통일비용이 이익을 상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통일이 재앙이 되는 것이다.
남북이 어떤 형태로 통일을 이룰 것인지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점진적 통일 시나리오와 급진적 통일 시나리오 외에도 발생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를 설정해 그 대처방안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p.141
현재 상태의 북한 이해력으로는 통일의 길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통일을 하려는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통일을 추진해봤자 통일의 목표는 성취하지 못한 채 다시 분열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통일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반쪽인 ‘북한’이 어떤 상태로 작동하는 체제인지, 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2500만 명에 가까운 ‘북한 주민’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통일을 희구하고 미래를 생각하는지를 모른다면 통일을 향한 여정은 매우 어려운 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부터라도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북한 상황을 정확히 읽을 줄 아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보지 않고 살아보지 않고서도 북한 상황을 제대로 느끼고 읽을 줄 아는 지속적인 노력이 먼저 이뤄지지 않으면 그토록 원하던 통일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p.167
향후 한국의 통일공공외교는 주변국 국민, 특히 중국인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데 일차적 목표를 두어야 한다. 미국인의 통일 관련 인식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한국에 대한 인식보다 긍정적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인식은 북핵 문제 등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한국이 추구하는 통일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므로 통일한국이 미국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존중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한국 주도 통일에 대한 인식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2011년 중국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통일 지지가 36.7%였던 반면, 반대가 10.9%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 주목할 것은 ‘지지도 반대도 않는다’라는 응답이 50.5%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통일연구원의 다른 조사에 따르면 북한체제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중국이 북한을 지지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이 55.9%였던 반면, 부정적인 응답은 불과 8.9%였다. 또한 남북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경우 중국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한국을 지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0%에 지나지 않은 반면, ‘북한을 지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30%에 달했다. 따라서 한국의 중국에 대한 통일공공외교의 목표는 중국 내 ‘통일부담론’을 약화시키고 ‘통일편익론’을 확산시키는 데 두어야 한다. 즉,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통일한국이 등장하면 중국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며, 통일한국이 중국과의 적극적인 협력과 교류를 통해 중국에 우호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p.194
53년체제를 넘어 평화체제로 이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최우선 과제는 남북군사대화를 통해 우발적 충돌을 막는 장치와 초보적인 군사적 신뢰 구축조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남북이 ‘선조치 후보고’의 교전수칙을 동시 개정하고, 상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선제공격용 무기도 후방 재배치한다. 아울러 9·19공동성명에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와 핵 선제불사용(No First Use) 원칙을 재확인한다. 이러한 초기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들을 담아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한다. 여기에는 군사조항 외에 정치적 화해와 사회경제적 교류협력 조항을 포함시킨다.
남북기본협정의 체결을 통해 상호 신뢰가 회복된 뒤에는 한반도 평화조약의 체결로 이행한다. 한반도 평화조약의 체결은 남북이 당사자가 되고 미·중이 보증자 역할을 맡도록 한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조약이 체결되기 위해선 해상분계선 획정, 외국군대 문제의 해결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어야 한다. 이 문제들을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우므로 우회하여 남북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도기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p.216
북한은 3차 핵실험 이후 미국과의 핵 대결에도 자신 있다고 주장하면서 불안정하지만 평화를 유지시켜온 정전질서를 무력화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위기를 고조시켰다. 2012년 4월 13일 개정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명문화한 북한이 3차 핵실험 이후 2013년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3월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4월 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일련12기 제7차 회의에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란 법령 일련정함으로써 김일성 주석시켜온 정전비핵화 유훈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북한이 핵능력 일향상시키고 핵보유를 법률로 련정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추진했던 남북화해 협력 노력은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다.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통해서 주변국에 위협 인식을 높여 남북 각각의 국내 정치와 남북관계는 물론 분단체제와 동북아시아 지역질서의 재편을 모색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을 통한 새판짜기 요구에 관련 국가들은 다양한 행위자-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대처하고 있다.--- p.229
한편, 한미관계를 포괄적·다원적 전략동맹으로 전환해 구조적 딜레마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미래의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전망을 전제로 현재의 안보전략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전략적으로 사려 깊지 못하다. 먼저 미·중관계의 세력 전이는 아직 먼 장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패권 경쟁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군사력 측면에서 아직 중국은 미국에 대적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즉, 세력 전이의 시기가 불확실할 뿐 아니라 그 내용 또한 불충분하다. 또한 세력 전이의 과정이 반드시 양 강대국의 전면적 충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제로섬게임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부국강병과 국제적 영향력 확대라는 자국의 핵심 목표를 위해 안정적인 국제관계 수립이 절박하다. 따라서 중국은 현재 미국이 수립한 국제질서와 국제규범 체계에 전면적으로 도전할 의사가 없다. 중국의 국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섣부른 헤징전략은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신의를 상실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대중 전략적 가치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전략적 가치의 수준과 한미동맹의 공고화에 비례한다.
--- 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