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마 세이조의 신작 『해적』은 여러모로 독특한 작품이다. 우선, 주인공으로 해적과 인어가 등장해서 눈길을 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해적은 우리가 익히 알던 해적이 아니다. 부하도 없고, 남의 배를 습격하지도 않는다. 자기 배를 타고, 혼자 유유히 바다를 누비며,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존재다. 물론, 바다를 누비고 다니다가 상어에게 왼쪽 다리를 뜯기고, 이 상어가 오른쪽 다리를 달라며 쫒아다니는 걸 보면, 분명히 해적은 해적인 것 같다. 그렇지만 바다의 생물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남을 괴롭히는 멧돼지와 싸우는 걸 보면, 이 해적은 ‘바다의 도둑’이 아니라 ‘바다의 지킴이’인 셈이다. 진정한 자유인인 것이다.
그러던 해적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인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자기 배에 앉아 있던 인어를 보고는 한눈에 반한 것이다. 해적은 인어를 찾아 바닷속을 온통 헤매고 다닌다. 그러다가 해적은 알게 된다. 바다가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걸 말이다. 드디어 해적은 인어를 발견하게 되고, 인어도 해적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해적을 사랑한다. 둘은 해초 샐러드를 먹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렇지만 어느 날, 인어는 편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동안 인어는 바다 오염 때문에 하나둘씩 비늘이 떨어졌었다. 그런데 이제 비늘 세 장이 더 떨어지면 그만 죽게 된다는 것이다. 커다란 배가 바다를 오염시킨다는 것을 알게 된 해적은 이제 배와 싸우게 된다. 그런데 해적은 부하도 한 명 없지 않은가. 해적은 도리어 쫓기는 신세가 되고, 이런 해적을 섬에 있는 사람들이 숨겨 준다. 그러던 중에 금빛 비늘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되고, 해적은 인어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인어가 죽고 만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인어는 바다의 생명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자유인 해적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인어는 죽고, 인어가 죽자 상심한 해적은 그만 달로 날아가고 마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해적이나 인어처럼 신기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다시마 세이조의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다시마 세이조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다시마 세이조는 자기가 사는 마을에 쓰레기장이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이 병드는 것을 목격하고 한동안 환경 운동에 뛰어든 적이 있다고 한다. 또, 관청에서 나무를 베려고 하자, 그걸 막으려고 나무 밑에서 잠도 자고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그림책을 발표하고 소개하자, ‘환경 운동하는 사람이 그림책 작가가 되었구나!’ 하고 여긴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다시마 세이조는 단지 그림을 잘 그리는 그림책 작가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를 파고드는 작가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지만, 『뛰어라 메뚜기』『엄청나고 신기하게 생긴 풀숲』『모르는 마을』은 모두 자연의 생명력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또, 『들리나요?』 같은 작품은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다시마 세이조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한다. 이 작품은 그림책이라고는 하지만, 화면 컷 수가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만화에 수렴하는 그림책이 된 것이다. 그만큼 화면 구성이 다채롭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아트 디렉터의 공이 컸다고 한다. 유튜브에 올라온 강연을 보니, 자신은 이 책의 그림을 볼펜으로 그렸고, 아트 디렉터가 디자인 설계를 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만큼 서로 긴밀하게 작업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의식 있는 이들은 환경 문제에 더욱 천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다시마 세이조가 첫 작품을 낸 지 40년 만에 낸 작품이다. 그림책 작가로서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한데 모아 만든 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마 세이조는 어린이 그림책에 ‘환경’과 ‘생명’이라는 동시대적인 문제를 담고자 ‘해적’과 ‘인어’를 등장시켰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겉으로 보면 ‘인어를 사랑한 해적’이야기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자연을 사랑한 자유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독자들이 즐겁게 읽기를 바라 본다.
엄혜숙 (그림책 비평가ㆍ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