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을 점차 잃어가던 클래식 음악은 최근에 들어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퓨전이다. 21세기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코드가 퓨전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실제로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음식에서 패션, 디자인, 그리고 산업 자체, 문화 자체가 퓨전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퓨전의 대두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구별지어 놓았던 경계들을 허물며 더욱 다양한 문화를 창출해 낸다. 음악에 있어 퓨전은 8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크로스오버 움직임이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크로스오버 음악은 그동안 시도되었던 많은 실험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미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크로스오버 음악 중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팝페라(Popera)이다. 팝(POP)과 오페라(Opera)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이 합성어는 '대중화된 오페라' 혹은 '팝음악 스타일화 된 오페라', '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음악 스타일' 등을 뜻한다. 물론 오페라 전체가 팝음악화됨을 칭하는 것은 아니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오페라 아리아들이 마치 대중음악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팝페라'는 최근 몇몇 가수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는데, 사라 브라이트만을 비롯해, 엠마 샤플린, 필리파 지오르다노, 그리고 남자 가수로 안드레아 보첼리를 들 수 있다. 물론 이들 이전부터 클래식 음악을 노래한 팝 가수들은 많다. 나나 무스쿠리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심지어 마이클 볼튼은 얼마전 오페라 아리아 음반을 낼 정도였다. 그러나 팝페라 가수들은 항상 클래식 음악 가까이에서 팝페라라는 자신들만의 음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또다른 특징은 오페라라는 고전적인 음악을 기계적인 효과에 힘입어 미래적인 느낌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들과는 약간 다르게 정통 성악공부로 시작하여 여러 가수들을 능가하는 신예 팝페라 가수가 바로 이지(IZZY)다. 영국 출생의 이지라는 이 보컬리스트는 사라 브라이트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풍부한 성량과 부드럽고 안정된 목소리로 깊은 첫인상을 남기고 있다.
올해 26살이 되는 이지. 그녀의 본명은 이소벨 쿠퍼(Isobel Cooper)다. 4살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는 그녀의 첫 악기는 리코더. 5년 동안 모든 종류의 리코더와 피아노, 클라리넷, 플루트 등을 마스터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녀는, 9살이 되던 해부터 성악훈련을 받게 된다. 그 후 영국의 전통있는 음악학교인 길드홀 스쿨에 입학한 그녀는 로열 알버트 홀과 런던 페스티벌 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바실리카, 플로렌스 대성당 등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당시 이지는 노래를 부를수록 자신만의 힘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와 스타일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면서 그녀는 평범한 성악가의 길을 접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훈련을 받았고, 그렇게 자라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클래식 음악만을 해야 한다거나, 엄격하게 제한된 방법으로만 노래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지는 클래식 음악에도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타고난 목소리를 자유롭게 발전시켰다. 이는 이지가 일반 성악가나 다른 팝페라 가수들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지니게 된 비결이기도 했다. 다른 팝페라 가수들처럼 마냥 달콤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정통 성악 훈련을 통해 다듬어진 그녀의 목소리는 생동감이 넘치고, 기품 있으며, 감정처리에 능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신선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녀의 말처럼 젊고, 새롭고, 참신한 가수가 우리에게 나타났다. 21세기를 향한 다양한 실험 가운데 하나인 팝페라가 자리를 잡고 성정하느냐는 결국 이지와 같은 성악가들이 나와주어야 가능한 것이며,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녀의 탄탄한 실력과 아름다운 목소리, 타고난 자유분방함은 조만간 그녀가 팝페라의 새 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