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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으로 사는 길

선생으로 사는 길

이관희 | 삼인 | 2015년 06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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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6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558g | 153*224*30mm
ISBN13 9788964360972
ISBN10 8964360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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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해서는 안 되는 선생의 존재란 무엇인가. 아무도 나와 동행하지 않았다. 나는 막걸리를 마시고 세 번씩이나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이사장님의 저택에 들어설 수 있었다. 정종 됫병을 앞에 놓고 이사장님과 제법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할 이야긴 거의 다 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검정고시 출신인데 누구에게 배워 대학엘 갔었는가 그가 물었고, 이사님은 경기고 나와 서울 공대 들어가신 분이므로 누구한테 배울 필요 없으셨겠지만.
꾸벅 절을 하고 집을 나서면서 나는 말했다.
“저는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 p.34

선생님처럼 여러분들도 공부하느라고 서두르다 중요한 것에 소홀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사람 되기에 힘써야겠습니다. 그리고 공부해야 합니다. 2, 3학년 올라가서 공부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사람됨의 도리를 지키고, 소홀치 않았는지 챙기는 마음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
졸업한 다음 전문대 갔다고 학교 이름 대기를 주저하는 아이가 있다면 때려주겠습니다. 여러분들을 떠나보내면서 다시 한 번 말합니다. 12반 아이들이 마음만은 맑고 곱게 빛나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랍니다. 바른 사람 되자고 애쓰는 정신만은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 p.53

생활 노트를 보면 다 착하기만 한 놈들이어서 걱정입니다. 내 맘 같아서야 보듬어 안고 이 푸념 저 고민 들어주며 착한 선생 노릇 1년 하고픈 예쁜 놈들뿐입니다. 신비한 놈이라고 불러달라는 놈이 모의고사 보면서 잡니다. 푹 재우고 싶다가도 너무 평범해서--- p.딴 놈처럼 자니까) 깨워봅니다. 공부 잘한다는 놈들은 고작 글이라는 게 논술 연습입니다.
반짝인다 싶어 보면 제 우물 못 넘어서 치우쳐 있고, 비판적이다 싶으면 깊이가 없습니다.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는, 안 가르치면 자버리는 식의 청춘은 허망합니다. 세상에 정말 질긴 생명은 옥토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 p.57

청춘의 한 시절, 욕구를 다스리며, 나태를 견제하며 스스로 학업의 기초를 닦고 혹은 양서를 밤늦도록 탐독하는 일은, 멀어 가물거리는 인생길의 의미와 진실을 찾아가는 긴 여정에 불을 밝히는 첫 작업입니다.
무심한 마음으로 전념하여 어둔 밤 영어 독해하고 수학 문제 풀다, 문득 지식만이 전부가 아닌 듯하여 두터운 책, 높은 품격의 양서 한 권 찾아 읽다 까만 밤이 목에 차올라, 아쉽지만 읽던 책, 풀던 문제집 접고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 p.100

고3 수험생활의 1년은 튼실한 청년으로의 성장과 도약의 전기이면서 토대일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은 소년들인 고3 아이들의 꿈과 좌절을 온몸으로 겪습니다. 대한민국의 독특한 교육현실을 무겁고도 절실하게 겪습니다. 곱게 자라다, 갑자기 닥친 입시라는 차갑고 냉정하고 각박한 현실과도 싸워 끝내 이겨내는 야무진 사내아이들. 그러나 영혼 깊이에는 맑은 감수성이, 높은 꿈이 결코 시들지 않을 소년들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나는 밤에 또다시 시험 보는, 몇 문제 못 푸는 꿈을 꿀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악몽에서 깨어난 새벽에 나는 푸른 채소 같은 싱싱한 꿈으로 다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것입니다. 아침 6시 아파트를 나서면 한 그루 진달래의 붉은 빛이 눈부십니다.
--- p.110


L 선생이 학교 하나 사는 꿈을 이야기했다. …… 아이들과 한마음으로 진짜 사람 만드는 교육하는 아름다운 학교에서 하루라도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시 교육, 미친 교육 버티며 힘겨웠다고. 나머지 교직을 3년을 버틸지 5년까지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학교 떠난 A 선생을 보고 다시 돌아가자고, 꿈결인 듯 취해서 나는 말했던 것 같다.
아름다운 학교가 기다리고 있다고.
--- p.145


“집에 가면 어머니 계시냐?”
아니라고, 가도 집에 아무도 없다고 아이는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배가 아프다.” 말하고 그는 교실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퇴근하는데 문득 그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선생의 본능은 이상한 것입니다. 차를 몰면서 나는 아이의 자기소개서와 환경조사서를 가방에서 꺼내 다시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님 돌아가심.
아버지는 울산에 거주.
나이 차가 많은 형과 살고 있고, 부분적으로 전신 아픔.--- p.허리, 귀, 무릎 등) 가끔 두통.”
엄마를 초등학교 3학년 때 잃은 아이에게 나는 “엄마 집에 계시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배가 아프다고 조용히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아프게 제 마음을 베었습니다.
그다음 날 나는 “누가 밥 하냐.” 아이에게 물었고 “제가 해 먹습니다.” 아이가 짧게 답했습니다.
그 아이가 배 아프다는데 나는 너무 냉담했던 것입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나는 역시 애써 냉담했습니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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