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카는 런던 상인과 재정가들에 대항한 최초의 반란자였으며, 영국 여성 지도자 계보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내 비록 연약한 여자의 몸이지만 남자의 마음과 배짱을 가졌다”고 외쳤던 엘리자베스 1세,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마거릿 대처 수상 모두 부디카 스타일이며 그녀의 후손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Prince Albert의 지시로 웨스트민스터 브리지 위에 부디카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두 딸을 옆에 태우고 하늘로 치솟고 있는 그녀 앞에 서니, 희생 없는 역사는 없으며 목적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 마음속에 던져진 파문은 커지게 되어 있어 실패만인 반란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우리는 영국 역사에서 당장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길게 봤을 때 실패만이라고 할 수 없는 반란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실패만인 반란은 없다」중에서
베케트는 순교자martyr입니까, 반역자traitor입니까? 채찍을 맞으며 속죄를 비는 왕을 본 중세 사람들의 마음속에 베케트는 성자이고 순교자였습니다. 하지만 후세의 왕들은 베케트를 왕을 거역한 반역자로밖에 여기지 않았고, 16세기에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교황과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를 세운 헨리 8세는 베케트의 영묘를 파괴하고, 미술품들에서 그의 얼굴을 긁어내게 했습니다. 순교자와 반역자 사이의 선은 가늡니다. ---「순교자와 반역자 사이의 선은 가늘다」중에서
“런던 시민들에게는 왕이 없고, 그들의 시장이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시 시장의 권한은 막강했고, 25명의 구의원들 사이에서 선출되었던 시장은 왕에게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시민들에게는 왕의 대리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어서 1191년에는 일 년에 300파운드(오늘날 15만 파운드)의 세금을 바치는 조건으로 주장관Sheriff을 직접 선출할 수 있게 되었는데, 왕의 부재 시 즉석에서 왕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던 주장관을 직접 뽑을 수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특권이었습니다. 영국이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렇게 기 세고 독립심 강했던 런던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왕과 맞먹었던 ‘로드 메이어’ 런던 시장」중에서
정치적·외교적 수완은 부족했지만 문화와 예술을 적극 후원했고, 참회왕 에드워드를 숭배하다시피 했던 헨리 3세는 참회왕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고딕 양식으로 재건한 업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대부분이 헨리 3세 때 지어진 것이며 당시 프랑스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건축물들에 뒤지지 않으려고 헨리 3세는 사원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는데, 질문이 있습니다.
백성들의 삶이 당장 더 힘들어지더라도 역사에 길이 남을 유적을 짓는 왕이 좋은 왕인가요, 아니면 화려한 건축물보다 백성들의 삶의 질을 중요시 여기는 왕이 좋은 왕인가요? 밖으로 군사적인 업적을 많이 남기는 왕이 좋은 왕인가요, 안으로 나라를 단장하는 왕이 좋은 왕인가요? 당신이 왕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헨리 3세의 고딕 양식 웨스트민스터 사원」중에서
왕의 기사들에 둘러싸여 타일러가 잘 보이지 않게 되자 농민들이 우왕좌왕 무슨 일이냐고 외치며 화살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열네 살 소년왕이 타고 있던 말을 농민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려 용감하게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당신들의 왕을 쏠 것입니까? 당신들에게 나 외에는 대장이 없습니다! 나를 따르십시오!” … 사실 타일러가 왕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것은 왕실의 기록에 의한 것이라 얼마나 공정하게 묘사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 패자의 자기기만이며, 기억력의 불완전함과 문서의 불충분함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기는 확실함”이라 하지요. ---「‘여러분은 당신들의 왕을 쏠 것입니까?’」중에서
길드들의 이름은 길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중세에 ‘마켓’을 뜻했던 단어 ‘cheap’에서 비롯된 칩사이드Cheapside에서 빵 굽는 사람들의 브레드 스트리트Bread St, 우유배달 소년들의 밀크 스트리트Milk St, 목수들의 우드 스트리트Wood St와 철물상인들의 아이언몽어 레인Ironmonger Lane이 뻗었습니다. 조류 상인들이 모였던 포울트리Poultry를 지나면 창문가에 앉아 열심히 바느질했던 재단사들의 스레드니들 스트리트Threadneedle St와 옥수수 시장이 섰던 콘힐Cornhill이 나옵니다. 이밖에도 옷감을 팔았던 클로스 페어Cloth Fair, 석공들이 자리 잡았던 메이슨스 애비뉴Mason’s Avenue, 대포 만드는 사람들의 캐넌 스트리트Cannon St와 갓 잡아온 생선이라고 소리쳤던 생선장수들의 피시 스트리트 힐Fish Street Hill이 도시 곳곳에서 예전의 길드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길드 이름이 길 이름으로」중에서
헨리와 앤이 결혼식을 올린 지 3개월 만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왕실의 의사와 점성가들이 아들일 것을 예언했기에 상속자 탄생을 위한 축하 예식의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나왔습니다. 앤은 헨리의 실망한 표정을 보고 미안하다며 흐느껴 울었고, 낭패감과 당혹감에 빠진 헨리는 뭐라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로마와 단절하고 교황에게 파문당하고, 아무런 죄 없는 첫 부인도 매정하게 버리고 저명한 학자들까지 처형했는데, 이 모든 일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또 하나의 딸을 위해서였단 말입니까
이 딸이 훗날 영국을 ‘황금의 시기’로 이끌며 영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될 것을 그때 헨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 아라곤의 캐서린: 왕은 너도 싫증내실 것이다.
앤 볼린: …만약 안 그러시면요? ---「로마와 단절해서라도 이혼하고야 말리라」중에서
좀 불공평한 것이, 이 정도 규모의 학살은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이때는 게으름 핀다고 공공장소에서 소녀들을 매질하고, 여왕에 대해 무시하는 말투를 썼다고 귀를 벽에다 못 박고, 단두대에서 잘린 머리를 창에 꽂아 전시했던 16세기였습니다. 또 엘리자베스 때 처형된 가톨릭교인들의 수가 메리 때 처형된 신교도들의 수보다 적지 않지만, 엘리자베스는 ‘블러디 엘리자베스’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메리는 다른 업적이 없고, 국민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기에 이 일이 과장되어 생각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블러디 메리’라는 별명, 사실 좀 억울하다고요」중에서
엘리자베스는 왕실의 조신 코티어courtier들과 고문 및 정치가politician들을 위치와 역할에 맞게 다른 자질의 사람들로 뽑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매력 있는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즐겼던 엘리자베스는 코티어들을 인물이 출중하고 남자다우며 고전·문학·역사를 공부해 재치 있는 사람들로 선정했습니다.
반대로 고문과 정치가들의 자리는 엄숙함과 진지함을 풍기는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검은색 옷을 입었던 이들은 종교적이고 가정적이며 일에 미쳐 사는 남자들이었고, 여왕과 이들과의 관계에는 낭만적인 면모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다 잘하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더들리도 정치가로서는 자질이 없었고, 데버로라는 코티어는 정치적인 야심을 품다가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대법관 크리스토퍼 해튼 만이 정치가와 코티어, 두 역할을 소화해냈던 남자였다고 합니다. 남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본인이 화려한 코티어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현명한 정치가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세요? 해튼처럼 둘 다 소화할 수 있는 남자라고 생각하시죠? ---「왕실의 남자들」중에서
소원이 생각의 아버지the wish is father to the thought가 되고, 분노보다 슬픔에 인해 행동하며act more in sorrow than in anger, 한 치도 고집을 굽히지 않고refuse to budge an inch, 질투에 눈이 녹색이 된다suffer from green-eyed jealousy고 말하면, 당신은 셰익스피어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물건이 ‘희박한 공기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고vanish into ‘thin air’, 좋은 것이 도가 지나쳐too much of a good thing 오히려 해가 되어 곤경에 처했을 때 피클 속에 있다in a pickle고 말하면, 당신은 셰익스피어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정해진 결론foregone conclusion임은 내 마음속의 눈my mind’s eye으로 볼 수 있고, 인생은 운에 달린 것이라as good as luck would have it, 바보의 천국fool’s paradise인 거짓된 행복 속에서 옆구리가 터질 정도로 웃는다laugh yourself into stitches고 말하면, 당신은 셰익스피어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셰익스피어를 인용하고 있습니다」중에서
그런데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없으세요? 음모자들이 너무 순진하지는 않았나요? 당시 영국에서는 화약 판매를 정부가 독점하고 있었는데, 음모자들은 어떻게 36통의 화약을 구했으며 건초와 볏짚과 함께 상원실까지 들키지 않고 나를 수 있었을까요? 이들은 당시 가톨릭 신자라서 감시받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 집을 임대할 수 있었을까요. … 왜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 개회 선언식 전 날 밤에 상원실의 지하 저장실이 수색되었을까요? 아래 나오는 ‘몬티글 편지’ 때문이라고요? 그러면 왜 케이츠비와 퍼시를 사살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하루에 10펜스라는 높은 연금을 받았을까요? ---「나는 어떤 이유도 알지 못한다, 왜 화약음모 사건이 잊혀야 하는지」중에서
의회파가 존 밀튼을 시켜 하느님의 법을 유지하기 위해 정당하게 타도된 왕에 대한 《성상파괴자Eikonoklastes》라는 반론을 쓰게 했지만《왕의 초상》이 일으킨 파문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왕의 ‘목숨’과 왕의 ‘위엄’의 두 번의 살인을 논하며, 신의 대변인인 왕을 죽이는 인간의 잔인함이 어디까지이고 인간이 얼마나 낮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찰스의 두 번의 죽음Upon the Double Murder of King Chales]이라는 시도 인기가 좋았습니다.
왕, 괜히 죽였나요. 찰스가 죽으면서 군주제는 폐지되고, 의회와 올리버에 의해 다스려지는 공화국이 성립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왕이란 것은 국민의 자유와 사회의 공익에 불필요하고 부담스러우며 위험한 존재라고 그들이 말했습니다. ---「왕, 괜히 죽였나요」중에서
흑사병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아무리 경고해도 고치지 않았던 ‘제티’집들이 다 타서 이제 새로운 집들을 지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대니얼 디포의 말처럼 추상적인 공간이 아닌 살아 있는 런던이 스스로 새로 태어날 필요를 느껴 옛것을 태워 없애려고 했던 것일까요? 불길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을까요?
1666 런던 대화재의 원인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화재 후 세인트 폴 대성당 주위에 많이 폈던 노란 런던 로켓London rocket 꽃들만이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런던 로켓은 1945년 나치의 블리츠 공격 때 또 한 번 재가 된 런던에서 다시 피어났습니다.---「저는 프랑스의 첩보원이고 교황의 대리인이며, 방화범이고 싶습니다」중에서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을 모른 척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말을 타고 지나가는 성직자까지 이 부도덕적인 광경을 그냥 지나치고 있습니다. 말이 높게 쌓인 냄비들을 쓰러트리고 가는 것은 벌써부터 몰의 하락을 암시하는 것일까요? 죽어 있는 흰 거위도 몰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마담 니햄은 실제로 매일 아침, 마차에서 내리는 소녀들을 낚으러 원정을 나갔습니다. “나를 따라오렴. 먹을 것과 잘 곳, 직업도 주고 친구도 소개시켜 줄게”라는 달콤한 말에 순진한 소녀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라갔지만, 마음 좋은 아주머니는 곧 마녀로 돌변해 음식·숙박·옷 모두가 어마어마한 빚이 되었고(‘너네가 먹은 오리고기가 싼 줄 아니’), 빚을 다 갚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창녀의 일생, 소녀 창녀 몰의 운명」중에서
대영제국이 그들의 선진화된 문명과 기독교를 세계에 퍼트려야 한다는 이타적인 의무감에 의해 이룩된 것이 아니었음은 길 가는 아이에게 물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 ‘백인의 짐’이 어쩌고저쩌고 하다가는 돌 맞기 십상입니다.
… “영국은 무의식중에 세계를 정복하게 되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이 처음부터 지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겠다고 소매 걷고 나선 것이 아니라 상업교역소, 해적질과 작은 정착지들에서 시작되어 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좋은 것이었든 나쁜 것이었든 기억할 것은, 우리는 세계를 무대 삼은 보이스카우트의 야망 같았던 대영제국이 만든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대영제국은 좋은 것이었나요 나쁜 것이었나요?」중에서
새벽 2시에 탄광으로 내려가서 그 다음날 오후까지 나오지 못하며 석탄 담은 자루를 매고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매를 맞았던 조그만 여자아이도 있었습니다. 18세기에 학교에 갈 수 없어 읽고 쓸 줄 몰랐던 영국 지방 아이들은 런던이 어딘지 들어본 적이 없었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냐고 물으면 “우리 탄광에서 일하는 분이세요”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검은 금, 석탄의 비리」중에서
차티스트 운동은 포스터·팸플릿·행진·연설·진정서까지 모든 것을 동원한 최초의 조직화된 노동자 계급의 범국민적 항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관심을 노동자 계급의 고충으로 주목시키고 그들의 문제가 곧 국가의 문제임을 인식시켰으며, 노동자들도 모이면 강력하다 못해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차티스트들의 요구사항이 바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이후에도 변화의 물결은 멈추지 않았고, 런던의 하이드 파크와 트라팔가 광장 등지에서 정치적인 운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티스트들의 6조항은 마지막을 제외하고 모두 이루어졌고, 그들의 노동 운동은 노동당으로 이어졌습니다. ---「산업혁명의 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을!」중에서
‘전후 우울함을 벗어버릴 수 있게 새로운 패션에 돈을 쓰자’라는 사고방식이 생겨, 패션 매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남자들은 당시 모드mod족의 최신 패션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소호 근처의 카나비 스트리트로 몰려들었고, 킹스 로드에서는 메리 퀀트의 미니스커트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세계 ‘쿨’함의 수도, 장발과 미니스커트의 시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