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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인 2

인간인 2

: 장편소설 10

이청준 문학전집-0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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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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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1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64쪽 | 540g | 153*224*30mm
ISBN13 9788970632506
ISBN10 897063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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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손은 암자로 올라오고 보니 우선은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높은 산중에 외떨어진 초막 토굴이라 그간 좀 소홀히 해온 신변상의 안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일일이 울컥거리고 노여움을 자주타던 심기도 모처럼 허물없는 의지를 찾아든 듯 차분했졌다. 그는 별달리 할 일도 없겠다, 노인이 아는 체를 하거나 말거나 멋대로 뒤쪽에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긴긴 봄날 하루가 기울고 다시 밤이 깜깜 깊어질 때까지 늙은이와 말없는 강단내기 싸움을 벌였다. 그것으로 마지막 결판까지는 낼 수 없더라도 젊은 육신의 힘으로 노인을 끝까지 괴롭혀 우선 그 육신의 굴복이라도 얻어내보자는 지구력 싸움이었다. 오랫동안 불기를 하지 않은 밑바닥이 눅눅하여 처음에는 군불이나 한 부샄 일어넣고 올까 싶기도 했으나, 늙은이가 견뎌온 걸 나라고 못 참아내랴, 그대로 오기스럽게 자리를 지켜나갔고, 기왕지사 한자리에 밤까지 지내게 된 바에 무불의 그 괴상한 앉음자세까지 흉을 내어 좇아갔다. 이제는 그것이 싸움의 진짜 목적은 아니더라도 이번에야말로 늙은이와 한자리에서 그의 앉은잠을 확인해 볼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장손이 그 노인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가 노인을 이길 수 없었으므로 그 앉은잠의 확인도 물론 불가능했다.

밤이 점점 깊어가면서 노인의 자세나 기척에 얼마간의 변화가 생긴 건 분명했다. 그 끈질긴 노인의 몸놀림과 입 속 흠얼거림 사이로 뜸뜸이 긴 침묵이 끼여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간격이 벌어져 간 그 깜깜한 침묵의 늪 속으로 머리가 풀려가던 스님의 소리가 아예 까마득히 가라앉아 들어간 적도 있었다.
---pp.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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