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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노트
김지숙 | 다른 | 2015년 06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0 리뷰 1건 | 판매지수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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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6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284g | 140*210*14mm
ISBN13 9791156330479
ISBN10 115633047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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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 8반 이영주가 자살했대!
나는 요약노트를 내려놓고 말한 아이를 쳐다보았다. 시험 점수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늘 전교에 떠도는 소문을 실어 나르는 아이라는 것밖에는,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 어제 애들 몇 명한테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나 봐. ‘난 먼 곳으로 떠나. 끝까지 너희를 저주할 거야, 안녕.’ 하고.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뭐야, 그게 다야?
--- p.10-11

예쁘게 태어났다는 것, 인기가 많다는 건 생각보다 피곤한 일일지도 몰랐다. 기분 나쁘지 않느냐고 영주한테 물어보면 “별로 신경 안 써. 이제 좀 익숙해서.” 하고 잘라 말했다. 영주는 실제로 어린이 모델 제안이 몇 번 들어왔는데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거절했다고 했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친구인데도 가끔 옆에서 걷고 있는 영주의 얼굴을 황홀하게 바라볼 때가 있었다. 우리는 함께 다니고 이야기하고 교환일기까지 썼지만 다른 세상에 사는 것만 같았다. 나는 특별한 아이의 삶을 간접 체험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 p.53

집에 가서 오랫동안 거울을 봤다. 넓은 모공과 울긋불긋한 피부를 보며 영주와 나를 비교했다. 그럴 때마다 전신 성형을 한 뒤에 영주 앞에 나타나는 상상이 더욱 정교해졌다.
영주와 나는 더는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걸 깨닫자 영주랑 지내는 게 더는 즐겁지 않았다. 영주한테 문자와 와도 일부러 한참 있다가 답장을 보내며 미안, 배터리가 없어서 꺼놨어, 하고 둘러댔다.
--- p.63-64

욕설이 가득한 문자를 여러 번 받은 뒤로는 핸드폰을 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번은 아이들이 한 단어씩 순서대로 보내 한 문장을 만드는 협동 정신을 발휘하기도 했다. 모두 이어 붙이면 ‘미친년아, 너 같은 건 지옥에나 떨어져라.’였다. 다 같이 모여서 햄버거라도 먹다가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직접 주고받는 비밀노트는 안전한 느낌이었다. 수아에게는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나도 이 건물에서 너희랑 살면 좋겠다.
- 옥상에 텐트 치고 살면 어때?
우리는 키득거렸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고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새벽까지 수다를 떨던 우리는 어느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들어 버렸다.
--- p.134-135

노트에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았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늘어났다.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속에서 지뢰가 터지는 기분이었다.
----------------------------------------------------------
이영주, 너 따위 나한테 필요 없어.
넌 항상 사랑받고 살겠지. 그치만 모두가 널 좋아하는 건 아냐.
이영주 자기 자랑 듣는 것 정말 지겹다.
왜 걔는 자기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를까.
----------------------------------------------------------
노트 속 수아는 내가 평소에 알던 수아와 달랐다. 항상 내 말을 들어주고 잘 대해 주는 모습이 평소의 수아였다면 이 노트는 그 정반대의 모습만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하이드’를 보는 것처럼.
--- p.157-158

둘은 결국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단짝 친구가 되었고, 선생님들마저 그 둘이 같이 있는 것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봤다. 내가 보아도 둘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둘 사이에 낀 어울리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셋이 있을 때 수아와 영주는 둘만 아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를테면 나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책 제목을 말하면서 요즘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느니, 곧 영화화가 된다느니, 했고 이야기는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로 이어졌다. 그럴 때 나는 관심 없는 척했지만 책 제목들을 외워서 나중에 찾아보고는 했다.
--- p.195-197

내 손은 아무도 못 알아챌 만큼, 심지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제대로 깨닫지 못할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숙련된 소매치기처럼 감쪽같고 뻔뻔했다.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몸이 휘청거렸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빗물펌프장에 걸려 있던 그림을 떠올렸다. 내가 넘치는 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힘을 내! 다 휩쓸어 버려! 그동안 너를 얕보고 외면한 것들한테 네 힘을 보여 줘! 누군가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다.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물이 저렇게 무서운 거란다. 평소에는 소리 없이 흘러가다가 갑자기 얼굴을 바꾸거든.’
--- p.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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