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식민 통치를 받으며 암울한 시대를 지나는 동안, 일본은 서구와 직접 교류하며 그들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 힘썼다. 산업혁명이 먼저 일어난 유럽 문명에 기계나 과학기술로 대응하기에는 당시 일본의 기술력이 훨씬 뒤떨어졌던 상황에서, 그들은 영리하게도 ‘미술’을 이용했다. (…)
마침 19세기 말 유럽 각국에서 계속적으로 열렸던 만국박람회(지금의 엑스포)는 최고의 홍보 수단이었다. 일본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국의 인재들을 불러 모아 최고 수준의 예술품을 만들어내도록 했고, 그것들과 함께 고미술, 불상, 공예품, 절과 신사의 건축 모형 등 서양인들의 시선을 끌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박람회에 출품했다. 그 결과 유럽의 것과 한참 다른, 너무나도 이국적이었던 일본의 미술과 공예는 박람회에 모인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고,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유행이 30년 이상 지속되었다.
- p. 8, 들어가며 중에서
이윽고 모네가 작품을 보관하는 방으로 안내하자 마츠카타는 “이거 좋은데”, “이것도 좋아”를 연발하며 무려 18점의 작품을 자신에게 양보해달라고 말했다. 이미 거장이 된 모네도 이러한 호탕한 제안에 감격한 듯, “자네, 내 그림을 정말 좋아하는군”이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이 집에 보관하고 있는 그림은 원래 팔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러지”라고 말했다.
이때 마츠카타가 모네로부터 그림을 구입하고 받은 영수증 역시 국립서양미술관에 남아 있는데, 모네 특별전 때 참고 자료로 함께 전시된 적이 있어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국립서양미술관이 마츠카타 컬렉션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 p. 23, 국립서양미술관 중에서
브리지스톤미술관은 개관 후에도 계속 소장품을 늘려가, 현재는 서양 미술 쪽만 살펴본다 하더라도 렘브란트, 코로, 도미에, 쿠르베, 드가, 르누아르, 마네, 피사로, 시슬레, 고흐, 고갱, 귀스타브 모로, 세잔, 모네, 모딜리아니, 조르주 루오, 피카소, 파울 클레, 마티스 등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작가들이 모여 있지 않은가! 인상파 작품을 비롯해 19~20세기의 근대 회화에 특히 강점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마티스의 유화를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낙 컬렉션 자체의 수가 많기 때문에, 소장 작품 전부를 한 번에 전시하지는 않고 있지만 언제 찾아가도 찾아간 보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 pp. 73-74, 브리지스톤미술관 중에서
미술관이 내건 콘셉트는 ‘하코네의 자연과 미술의 공생’이다. 벽과 천장이 모두 유리로 지어진 폴라미술관은 미술관 곳곳에서 빛과 숲이 만나 빚어내는 계절의 하모니를 느낄 수 있다. 봄에는 신록을, 여름에는 짙은 녹음을, 가을에는 단풍을, 그리고 겨울에는 다소 앙상하지만 눈으로 덮여 포근한 숲의 자태를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는 대자연 속에 있는 폴라미술관만의 장점을 극대화한 코스다. 실내에 위치한 다섯 개의 전시실에 이어지는 ‘제6전시실’로 생각해달라는 것이 미술관 측의 의도다.
- pp. 92-93, 폴라미술관 중에서
하코네 조각의 숲은 하코네의 여러 산들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7만 제곱미터라는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축구장 약 서른 개에 해당하는 넓이다. 총 소장품 1,250여 점 중에 야외에 상설로 전시하고 있는 조각은 120점이다. 부피가 커서 여간해서는 실내에 설치하기 힘들 작품들도 탁 트인 너른 잔디밭 위에 있으니 크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로댕, 부르델을 비롯해서 니키 드 생팔, 헨리 무어, 알렉산더 칼더, 나움 가보, 호안 미로, 앤서니 곰리 등 유명 조각가의 작품이 이어진다. 만화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태양의 탑〉으로 유명한 오카모토 타로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이들 조각과 더불어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와 신선한 공기, 햇볕을 만끽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 pp. 110-111, 하코네 조각의 숲 미술관
이곳을 찾은 관람객은 ‘로스코의 방’이라고 이름 붙인 긴 칠각형 모양의 전시실에서 사방을 로스코의 그림으로 둘러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로스코의 작품 중에서도 말기 작품에 해당하는 깊고 어두운 색감의 이 벽화 아닌 벽화는 음울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 같이 간 친구가 작품을 지키기 위해 전시실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직원이 정신적으로 괜찮을지 걱정된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대형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했다.
- p. 130, DIC가와무라기념미술관 중에서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둔 그였지만 그만큼 일찍 죽음에 직면해 짧은 생애를 살았고, 동성애자이자 제도권 예술에 대한 이단아로 소수자의 삶을 자처했다. 그의 작품은 얼핏 보면 유머러스하고 밝은 기운이 넘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 오노 요코는 “앤디 워홀은 굉장히 가벼운 주제를 무겁게 표현했고, 키스 해링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단순하고 밝고 명쾌하게 표현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워홀의 작품에 꽃, 수프 깡통, 팝스타의 초상과 같은 가볍고 쉬운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해링의 작품에는 기괴한 인체나 반인반수, 남자의 성기, 임신한 여성, 칼과 총기 같은 무기,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과격한 표현, 죽이고 고문하는 모습, UFO와 피라미드, 종교와 신화적인 아이콘까지 그로테스크하고 보기 불편한 소재들이 가득하다. (…) 해링이 활약했던 1980년대의 미국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가 혼란하고 치안이 악화되어 범죄가 급증했던 시대였다. 키스 해링의 예술은 이렇게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인 미국의 빛과 어둠을 배경으로 탄생했던 것이다.
- p. 143, 나카무라 키스 해링 미술관 중에서
한편 작품을 내놓게 된 미국 쪽 입장에서도 작품을 파는 게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필라델피아미술관의 자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작을 경매에 내놓게는 되었지만, 다시 구하기 힘들 세계적인 명작을 다른 나라에 빼앗겨서 되겠느냐며 될 수 있으면 미국 내의 수집가에게 낙찰되게끔 하자는 여론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야마나시 현의 호가를 넘어서는 금액이 나오지 않은 데다가, 판매자 입장에서 개인 수집가가 아니라 ‘공립’ 미술관에 낙찰되었다는 사실을 호의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하나의 호재로 작용했다.
- p. 173, 야마나시현립미술관 중에서
세계 어느 유수 미술관을 가더라도, 미술사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유명한 작품을 하루에 섭렵할 수는 없다. 화가에 따라 활동한 시대, 지역이 모두 제각기이고, 또 한 화가가 그린 작품도 사고 팔리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제각각 흩어지기 마련이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르네상스 작가의 작품만 하더라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각각 이탈리아 바티칸시티의 시스티나성당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복제화 미술관은 저작권 문제만 해결하면 미술관이 마음 내키는 대로 유명한 작품을 골라 전시할 수 있다. (…) 잰슨이나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에 등장하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들을 유럽에 가지 않고도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면? 오츠카국제미술관에서라면 가능한 이야기다. 진품에 엄청나게 가까운 복제품으로 말이다.
- pp. 239-240, 오츠카국제미술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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