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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빠이

라이프 오브 빠이

: 생애 한 번쯤, 내 마음의 삼포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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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35g | 134*188*22mm
ISBN13 9788997256099
ISBN10 899725609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서영진
돌연한 한순간, 더할 나위 없이 생을 대충 살아온 자만이 맞닥뜨릴 수 있는 절대적 상실, 그 통탄을 금치 못할 현존을 자각한 이후 에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평생 아니더냐 하며 본격적으로 막 살고자 여행을 시작했다.

방탕한 실존주의자이자 일가족의 화병제조기로 활약하는 가운데 무엇이 참다운 인생인가를 탐구한다는 숭고한 기치 아래 각양각국 각인각색의 찬란한 예쁜이들과 어울려 놀고 마시며 범국제적 호구로 존재전이하고 있다. 현재, 아무 대책 없다. 쓴 책으로 독자들의 전폭적인 무관심과 언론계의 치밀한 푸대접을 한몸에 받은 수상한 남자의 인도차이나 표류기 그리고 그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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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간 얼마나 애타게 그리워했던가
내 남은 생을 투신하고 싶었던 소읍, 빠이

프롤로그
버들잎 지는 앞 개울에서 소쩍새 울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봤음 직한 그녀, 기다림에 지쳐서 꽃잎이 빨갛게 멍이 들었음 직한 그녀, 어느 때엔가는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며 무작정 마음을 내려놨음 직 한 그녀, 엇갈린 인연과 비정한 운명에 휩쓸려 눈물깨나 쏟았을 듯 허 공을 닮은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그녀. 손목에 깊이 파인 흉터, 그 쓰라린 기록을 지닌 적나라한 손길로 내려준 한 잔의 커피는 물색없이 달았다. 무람없이 따뜻했다.

Three Dogs Night. 너무도 추운 날이면 한 마리의 개를 끌어안고, 그 래도 추우면 두 마리의 개를 끌어안고, 그럼에도 여전히 추우면 세 마 리의 개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는 에스키모들의 이야기.


평소 됨됨이가 부실하고 생각이 짧은 데다 성정이 난폭하여 가족 친 지들을 포함, 주변 지인들로부터 유독 개에 자주 비유되곤 했던 존재 론적 캐릭터를 살려 그녀의 애완견인 동시에 반려견으로 활약하고자 환희의 절정 37.2도를 훌쩍 넘겨 고열에 괴로워하던 그녀를 안고 있 던 벌건 대낮. 배꼽에 마주 닿은 채 낭창하게 휘어진 허리, 움푹 꺾여 내린 굴곡을 지나 매끄럽게 솟은 둔부, 휘날릴 듯 가냘픈 몸체에 비해 사뭇 불끈한 기운이 배어있는 젖가슴, 무엇 하나 툭 털어내려는 듯 선명하게 잘린 짧은 머리카락을 어깨에 얹어 뜨거운 숨 토해내던 그녀 를 휘감고 있자니 여백 없이 굳어지는 마음 하나.

나는 이곳, 빠이에 오래도록 머물겠다.
(중략)
순간을 비집고 들어선 저물녘, 색색의 활기로 메워진 빠이의 타운에 서 함께 나누는 저녁 식사. 끼이익, 울리는 브레이크 소음과 함께 우 리를 향해 멈춰선 깜찍한 스쿠터 아가씨를 그녀는 설명했으니 여기 에서 빵집을 하고 있고 남자친구는 미국인이며 식당을 하고 있다고. 이에 물었다.

“너는 여기에서 카페를 하고 있고 네 남자친구는 한국인이며 그는 글 을 쓰는 사람이야. 맞아?”
화창한 웃음이 버무려진 경쾌한 대답이 따라붙었다.
“응, 맞아!”

빠이 이야기, 수상한 남자의 LIFE of PAI는 이로써 시작을 선언한다.

#1 다시 만나 반갑다, 빠이! 中에서 (p. 24)
곡선에 접어들고 벗어날 때마다 차창 밖을 채색한 열대의 초록은 원근을 반복하며 아슬하게 뒤틀린 길을 이어 붙였다. 무슨 기구한 사연을 지녔는지 도대체 바로 누울 줄 모르는 산길을 짚어가는 사이 터널처럼 우거진 녹음 사이로 이따금씩 내리꽂히는 빗줄기에 눈동자가 아찔했다. 길의 끝을 상상하자 잘 익은 망고의 달착지근한 내음 같은 것이 느껴졌다. 주술에라도 걸린 양 흉곽을 쓰다듬는 호흡이, 뒷덜미를 타고 돌던 신경이 슬며시 느슨해지면서 스르르 눈이 감겼다. 눈꺼풀 위를 스쳐 가는 햇살이 감미롭게 더듬어졌다.

돌아갈 곳을 염두에 두지 않고 가진 전부를 걸어 떠나온 여행, 섬에서 섬으로 떠돌던 걸음이 내륙을 딛고 산중으로 흘러 든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선 일종의 쉼표이자 어떤 지표가 되어버린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길목, 재회를 앞두고 지난 시간들이 앞뒤 없이 뒤엉킨 채 절차 없이 재생되었다. 마구잡이로 솟구치는 회상 가운데 물음이 새겨졌다. 거기는 아직 그대로 있을까?

유배를 꿈꾸었던 공간. 철 지난 농담만이 자욱했던 술자리처럼 허전하고 술김에 못 이겨 마음 없이 나눈 섹스처럼 쓸쓸했던 삶의 기다란 허방 그 저편에서 유쾌한 몽상처럼, 다디단 환몽처럼 손짓하는 유혹. 바위처럼 단단했던 확신에 이끼처럼 돋아나는 불안을 사뿐히 잠재우는 성지, 그곳 빠이.

그곳으로 뻗은 길은 부단한 흔들림 속에 지속되었다. 762커브라는 가공할 구절양장의 고갯길에 놓인 여행자들은 대화를 중단하고 침묵에 젖어들어 시간의 흐름에 함몰되었다. 끓는 피로 점철된 각국의 청춘들은 항전의 의지를 초장에 말끔히 상납하고 관성의 법칙에 순응하며 이리저리 휩쓸릴 따름이었다.
(이하 생략)

#6 하여간 촌스럽긴 中에서 (p. 66)
꽃잎이 프린트된 자가드 원단의 보타이를 중앙에 두고 역시나 유혹적인 꽃문양 자수가 새겨진 새하얀 드레스 셔츠와 함께 바짓가랑이의 너비가 살벌하게 넓어 미스코리아 언니의 사자머리가 브라운관을 장식하고 떡볶이집 허리케인 박의 도끼빗이 판을 치던 쌍팔년도 적에나 어울릴 것 같은 클래식 팬츠, 더불어 어깨를 잡아끌고 허리를 끌어당기며 전신에 긴장을 불러일으키듯 딱 달라붙는 붉은색 레오파드 재킷으로 무장. 어디 좋은 데 가시나 봐요? 묻고 싶어지는 복장으로 입장한 카페.

그때 그 시절, 우리가 흘렸던 무수한 땀방울들과 눈물방울들은 모두 어디로 가 무엇이 되었단 말인가? 따위를 회상하는 눈빛으로 머다란 허공을 응시하며 담배 한 개비 깊게 빨아올리고 있자 니 때맞춰 등장한 작은 잔 하나 데미타세demitasse. 커피의 때깔과 볼륨을 배가시키는 황갈색 거품을 두툼하게 두른 에스프레소 한잔을 들어 올려 코밑을 엷게 스치게 한 다음 슬며시 혀끝을 적신 후 매끈하게 한 모금 말아 넣자 입안 가득 울려 퍼지는 강렬한 맛과 향에 절로 터져 나오는 한마디.

염병, 더럽게 맛없네.

술이나 마실 줄 알았지 평소 커피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던 작자인지라 모처럼 주문하는 커피에 긴장했던 걸까? 그래서 겨우 그걸 헷갈렸던 걸까? 마음으론 쌉싸름한 맛이 제법이고 양도 적지 않은 데다 값까지 싼 아메리카노를 원했으나 주둥이는 아뿔싸, 쓰기만 오지게 쓰고 양도 코딱지만큼 줘 가격대비 참패를 기록하는 에스프레소를 말해버렸으니 글자 수만 같을 뿐 천양지차로 나뉘는 결과를 맛보아야 했다. 그딴 걸 커피라고 만들어 놓고 파는 인간들도 원망스럽지만 그딴 걸 주문해버린 내게도 패착의 원인이 있으니 아, 인생사 정녕 쌍방과실.

“맛은 괜찮아?”
감출 수 없는 어리바리함을 그녀는 보았을 것이다.
“너무 써. 양도 너무 적고.”
지금 자랑하는 거니?

인상을 찌푸리며 고갯짓을 하자 가벼운 미소를 띠던 그녀, 각설탕 하나를 넣고서 서너 번 잔을 돌리더니 마셔보라고. 그렇게 천천히 한 모금 더 음미해보자니…… 오호라, 그거였다! 달콤쌉싸름하다가 진하게 마무리되는 한방. 연이어 마시는 따뜻한 물 한잔에 입천장과 바닥에 남아있던 여운이 깔끔하게 말려들어가며 혀끝에 작렬하는 은은한 풍미! 설탕 타 먹는 커피는 중삐리 시절에 졸업했다고, 세상 모든 커피는 설탕 없이 먹어야 폼이 난다고, 그래도 사실 믹스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던 촌놈에게 소리소문없이 다가온 커피의 신세계. 어떠냐는 물음이 담긴 그녀의 표정에 나는 답했다.

“와, 이거 좋은데!”
그렇다고 또 시켜 먹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하 생략)

#11 두근, 입맛이 다셔진다 中에서 (p. 110)
화창한 햇살이 힘껏 내달리는 오후, 단단히 차려입고서 목도 좋고 물도 좋은 술집 와이 낫의 그늘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짐짓 심각한 척, 최대한 뭔가를 하고 있는 척, 나는 단순한 놈팡이가 아니라는 척, 마치 인류를 구원할 빛을 만들고 있다는 듯이 자못 진중한 척하며 담배를 물고 랩톱을 두들기다 맥주를 들이켜고 있자면 하릴없는 누구 하나는 반드시 걸려들게 마련, 그날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예상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났을 뿐.

뮤지컬 연출을 했다던가, 제작을 했다던가 하는 한국 여행자 하나를 거쳐 한참 건기인지라 안 그래도 화목한 거리를 더욱 화목하게 하는 옷차림과 피부색과 헤어컬러를 지닌 두 스웨덴 아가씨 애나와 이사벨라, 화목한 중산층 가정에서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들을 키우며 바람직한 정서를 함양시켜왔을 것으로 추측되는 화사한 유럽 아가씨들과의 낮술로 말미암아 지구별의 평화증진에 이바지하고 말았던 뜻깊은 하루가 슬슬 저물어갈 무렵에 홀연히 마주친 낯익고도 낯선 얼굴. 정면에서 다가오며 어, 어어! 크게 놀라던 어떤 놈 하나. 어라? 나도 아는 놈 같은데 뉘시더라……?

“형님, 저 이진강입니다.”
가만있자, 이진강이라…… 엥? 이 자식이 어떻게? 아니, 왜 여기를?
“아, 그래. 그런데 여긴 웬일이야?”
예상외의 출현에 당황해 앞뒤 없이 물었다.
“형님 뵈러 왔죠.”
나를 보러 여기를? 이런, 미친…….
(이하 생략)

#12 아따, 인간들 세월 좋구나 中에서 (p. 118)
타고난 성정이 원체 소홀하고 학습을 향한 의지가 워낙에 박약하며 주워들은 사상이 유달리 회의적인 까닭인지 시간을 들이고 몸을 움직여 어딘가를 찾아가야 하는 것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 가진 것 없는 몸뚱이에 떡 하고 달라붙어 있는 목구멍이 후안무치한 깡패인지라 달리 방도가 없어 마음에도 없이 시간을 들이고 몸을 움직여 어딘가를 찾아갔어야만 했던 자질구레한 세월을 숱하게 보내왔으니 이제라도

전 생애를 담보로 잠시간의 낙원을 살아가는 지금이라도 하기 싫은 일 하지 말고, 듣기 싫은 말 듣지 말고, 먹기 싫은 것 먹지 말고 그저 내키는 대로 살아보자는 취지 하에 소홀한 성정과 박약한 의지와 회의적인 사상을 적극 활용하여 어떤 강요와 외압에도 굴하지 않으며 노세 노세 젊어서 노는 세월을 보내오던 차, 여기도 좋고 거기도 좋으니 한 번 가보시라는 추천을 강력하게 쌩 까고 말았던 것은 일견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 빌리지Moon Village 역시 개중 하나였다.

문 빌리지, 문자 그대로 달 마을이라는 근사한 정취를 풍기고 있었음에도 처음 들었을 당시 그게 뭐하는 잡것들인지 별 반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마도 공동체Community라는 개념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일 터, 이 나이 먹도록 뭐 그런 걸 겪어봤어야 알지.
(중략)
“우리도 선 빌리지 하나 만들까요?”

M 역시도 곧장 마음에 들었던지 못할 건 또 뭐냐는 듯 말했다. 언젠가는 단출한 텐트 하나로 자리를 깔고 전기도 없는(아! 내가 얘기했던가? 전기 안 들어와서 밤마다 불놀이라고), 전기가 없으니 “라디오 TV도 없고, 신문 잡지도 없고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 문 빌리지에서 한 시절 넉넉하게 탕진하게 될 것을 진하게 예감할 수 있었다. 각국의 히피들과 어울려 조선 한량의 굳센 기상과 굳은 절개를 드높이며.

보름이 다가오던 날이었다.
텐트가 밀집한 곳에선 썩 훌륭하지 못한 음색으로 노래를 불러댔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the peace……”

#16 머리에 꽃을 中에서 (p. 156)

나무 그늘 사이로 일렁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색색의 해먹에 누워 좌우로 흔들리는 그녀, 자연주의를 따르기에 이제는 파마도 피어싱도 하지 않는다며 적절히 불균질한 치아로 더없이 건강하게 웃는 무가당 처녀, 너풀거리듯 마른 체형과 브래지어 없는 젖가슴에 봉긋한 꼭지가 솟아올라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극진한 도전의식을 권장케 하는 스물일곱 살의 아가씨 메구미. 잡초처럼 자라온 인생으로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고 보살피는 그녀를 향해 뜨겁게 안겨주고 싶었다.

혼곤한 숙취에 시원한 바람이 고파 아무렇게나 당긴 스쿠터가 멈춰선 문 빌리지의 도미토리. 우리 돈으로 하루 천 몇 백 원짜리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게스트하우스의 오픈키친에 쪼그리고 앉아 장작으로 끓인 차를 따라주고 화로에서 구운 짜파티를 건네주던 그 아침. 퀼트 형식으로 천이 덧대진 그녀의 치맛자락은 아무렇지도 않게 흙바닥을 끄집었고 허름한 주방을 오가는 걸음은 경쾌했으며 뉘 집 자식들인지 모르겠으나 짜파티에 땅콩 잼을 듬뿍 발라 오물거리는 어린 남매는 빚어놓은 듯 사랑스러웠다.

다시 보자고 헤어진 그녀를 다시 보러간 이튿날의 정오, 허나 이를 어쩌랴. 메구미 양께선 이 오빠가 오시는 줄도 모르고, 하긴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안 하는데 어떻게 알겠냐마는 어쨌든 이 오빠께서 자신을 만나러 몸소 먼 길을 달려오시는 줄도 모르고 그만 자리를 비우고 말았다. 가여운 것, 이 오빠가 오셨는데. 말 타고 비단구두 사 오는 대신 스쿠터 타고 캔맥주 사 왔는데. 그것도 500mL 큰 놈으로다가.

실망은 짙었으나 오늘만 날이 아니니 멋대로 나돌아다니는 메구미를 너그럽게 용서하기로 하고, 내친걸음이니 그 양반이나 보러 가지 뭐, 하는 마음으로다가 입구의 맞은편 언덕배기에 삐딱하게 세워진 원통형 건물을 향해 걸었다. 피사의 사탑을 참조해 만들었다는 그의 집으로.

재차 삼차 익히 소문으로 들은 바 있었다. 문 빌리지의 이장? 왕초? 교주? 하여튼 그쯤 되는 양반으로 역사적인 2002년 한일 월드컵과 아무런 상관없이 생겨난 문 빌리지가 2008년에 이르러 계약 기간 만료를 맞았던 그때, (땅 주인이 방콕 사람이었다던가? 하는 의문이 뭐 중요할까?) 재계약을 단행하기엔 땅값이 너무 치솟아 난감해 마지 않던 바로 그때, 태국에선 누구? 하면 알아줄 정도로 유명한 가문의 사람이었던 그가 가진 것을 털어 외곽에 땅을 사들였고 그로써 문 빌리지는 발 뻗고 누울 자리를 마련, 이사를 감행해 생명연장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하니 문 빌리지에 있어 그의 의미는 소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생판 낯짝도 모르는 데다 12간지를 두 번 가까이 돌아야 하는 나이 차를 지닌 시커멓게 어린놈의 자식이 한 통 연락도 없이 대뜸 찾아와 날도 좋은데 낮술이나 한잔 합시다, 하면 당연히 그럽시다, 하며 받아 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마음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으니 뭐, 그런 쓸데없는 근심걱정을 다 하냐는 듯, 참으로 할 일도 없다는 듯, 그간 기다렸다는 듯, 드디어 오셨냐는 듯 헤이! 컴 인, 경쾌한 손짓과 흔쾌한 목소리가 있었다. 그는 나를 알았다.

이는 별반 중요한 사항이 아니지만 당시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인지 개폼을 잡고 다니는 한국놈 하나가 더럽게 깝죽거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슬슬 나고 있었고 그는 언제 어디선가 본 나를 기억하고 있어 더욱 반가이 맞아주었던 것이었는데 이게 왜 별반 중요한 사항이 아니냐 하면 그는 상대가 누구라도 자신을 찾아온 이라면 내치는 법이 없는 군자형 인간이기 때문, 장쾌한 웃음을 가진 그가 단박에 좋아졌다.

“형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이하 생략)

#19 웰컴 투 샴발라 中에서 (p. 186)

뜻밖의 외출에 덧대진 기다란 이야기는 꺼벙한 매력이 돋보이는 절정의 귀요미 메구미로부터 시작해 적갈색 피부 톤에 새파랗게 어린 낯짝이 상큼한 섹시미를 발산하는 꽃처녀 미나호를 거쳐 아아! 정말이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상식의 지평을 뒤집는 극단의 애교와 궁극의 교태로 무장한 대륙의 문제적 소녀 연소림 양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할 수 있다. 중간에 비자도 갱신하고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깽판도 한판 치고 했으나 그건 뭐 그냥 그렇다 치고, 후일 한울타리에서 생활하며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고 생애 처음 스토킹을 감행하게 한 매혹적인 그녀 노도카를 처음 만난 것도 그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때는 아침저녁으로 앙칼진 맛을 내는 산중의 바람이 서서히 무뎌지는 2월의 초, 간단한 세면도구와 큼지막한 타월, 비교적 편한 옷 한 벌을 쑤셔 넣고 클래식한 정장 바지와 실크 드레스 셔츠를 커버하기에 붉은색 레오파드 재킷이 좋을까, 목덜미에 싸구려 인조모피가 달린 하운드투스 체크코트가 나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스쿠터 타면 추울 테니 코트를 입으라는 동거인 3명의 의견을 적극 쌩까며 보다 경쾌한 맛이 있는 재킷을 선택하고서 빨간색 스쿠터에 가뿐하게 올랐다. 먼 길을 떠나기에 앞서 이른 아침 동거인 2가 끓여놓은 소고기 미역국까지 한 그릇 야무지게 말아 잡수고.

생각해보면 미련한 짓이었다. 혼자 갔다가 둘이 되어 돌 아온다는 사랑의 향연 샴발라Shambhala 축제, 결과적으로 둘을 넘어 떼거지로 돌아와야 했던 열흘간의 축전으로 향하기 위해 치앙마이행 버스표를 끊은 것은, 치앙마이 아케이드arcade 버스 터미널에서 다시 치앙다오Chiang Dao로 가는 버스를 타고 또 내려 터벅터벅 걸어 이동한 후 다시 썽태우를 타고서야 비로소 도착에 이른다는 그 지나치게 복잡하고 과도하게 불편한 과정을 선택하려 했던 것은 실로 부단히 미련한 결심이었다. 내겐 스쿠터가 있으니.
(중략)
“웰컴 투 샴발라!”

본래 내 것이었던 그녀의 옆자리로 향하려 하자 잔뜩 불어난 인파는 홀연히 출연한 나를 향해 환호했다. 뭐야, 이것들? 한 금발 머리 아가씨 옆으로 자리를 잡자 사연인즉, 스쿠터를 타고 내려가다 길을 물어오는 썽태우 기사에게 길을 알려준 후 자신들에게 그렇게 크게 외쳤다고. 그래서 따라 해 본 거라나.
동서양의 청춘들이 조화로이 그룹을 이뤄 무식하게 큰 포도주병을 주거니 받거니, 이어서 40도짜리 독주를 권커니 잣거니, 그러다 누구에겐가 시작된 노래가 금세 합창을 이뤘다.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 day sexy boy Jin. Happy birthday to you~.

서른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24 두 손 모아 사뿐히 고개 숙이며 中에서 (p. 230)
시내에서 10km 떨어진 외곽의 이름 모를 야산, 그곳으로부터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하는 고산족 마을 남빠묵 출신의 열일곱 소녀 찬차이가 아침에 일어나 기숙하는 집의 청소를 마치고 학교로 향하는 시간은 7시. 남색 주름치마와 새하얀 셔츠, 흙빛 머리카락 찰랑거리는 모습에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두 손 모아 사뿐히 고개 숙이며 전하는 아침 인사가 어딘지 모르게 숙연할 지경이다. 자욱한 산안개를 뚫고 픽업트럭에 올라타는 찬차이를 배웅하고선 본격적으로 삽질에 곡괭이질을 시작하던지, 하던 삽질에 곡괭이질을 이어가던지. 오후 5시에 돌아올 소녀, 멀어져가는 픽업트럭을 보며 담배 하나 문다. 음…… 오늘도 아마 덥겠지?

36년간의 한국생활을 시원하게 정리하고 이국을 떠돌다 빠이에 머물러 한 살을 더 보태는 동안 시내에서 신나게 처노는 것으로 한세월 질퍽하게 탕진하던 수상한 남자가 돌연 인근 야산으로 들어가 뜨거운 열대의 하늘 아래 삽질과 곡괭이질에 매진하는 까닭은?

문득, 더 이상 이따위로 살아선 안 된다는 경각심이 일어서? 아니면, 마음을 준 이에게 차이고 나니까 사람을 마주하는 게 무서워져서? 또는, 갑자기 돈독이 올라 노가다로 시작해 태국 건설업계의 큰손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야기는 4년 전 초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일홍이 슬며시 꽃을 틔울 그 무렵으로.

뭔가 꺼림칙한 징후도 없이, 어딘가 석연치 않은 조짐도 없이, 어쩐지 불길한 전조도 없이 그냥 그렇게 마른날의 벼락처럼 일순 내리쳐버린 불가항력의 우연, 삶은 대번에 곤죽이 되기 시작했다. 아 정말,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만사 의미도 재미도 없고, 그냥 다 될 대로 되라 하고, 밥은 또 먹어서 뭐하나 싶고, 주야장천 내처 술이나 마시고……

그렇게 먼 곳을 바라보며 한없이 무너져 내리길 얼마, 한데 이건 또 무슨 일이라니? 삶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딱히 무얼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짐 모리슨이 왜 그 발광을 했는지 알 것 같았고 에디트 피아프는 왜 그렇게 청승을 떨었는지 가슴이 끄덕여지기도 하며 커트 코베인은 왜 또 그렇게 깊은 고독으로 저편을 향해 떠나야 했는지 공명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지와 무관하게 안에서 절로 일어난 사유가 폭삭 무너졌다가 불끈 치솟는가 하면 지들끼리 치고받으며 그야말로 카오스를 일으키고 있었다. 때에 생각 없이 집어 든 시집 한 권은 아아, 뭣 하러 그리도 절절한지 원.
(이하 생략)

#26 이것들아, 오빠가 돌아왔다! 中에서 (p. 242)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다가오기 이전, 열대 몬순 기후가 가공할 더위를 내뿜으려 하는 즈음에 이르러 땡볕의 벌판에서 웃통 까 젖히고 곡괭이를 쳐들었다 당기듯 내리치는 순간, 다음 일은 관성에 내맡기고 힘을 풀어 체력을 비축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 근육 마디마디가 가쁜 숨을 오르내리며 가득 펄떡이는 가운데 잔뜩 타들어 가는 목구멍에 뜨뜻해진 물을 들이붓다 얼굴에 퍼붓는다. 그리고 담배 하나 빼어 물고 고개를 들어 올리니 쨍, 눈동자를 찔러오는 햇볕의 구리심 같은 힘줄. 깊게 빨아들인 담배 한 모금 진하게 내뱉으며,

오메! 하기 싫어 뒈져버리겠네.

일을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 파리 리뷰에서 인터뷰했던 윌리엄 포크너의 일장설, “가장 슬픈 일 중 하나는 사람이 하루 8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일이라는 사실이 다. 사람은 매일 8시간 동안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사랑을 할 수도 없다. 사람이 8시간 동안 매일 할 수 있는 일은 일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을 그토록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따위의 적나라한 직언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순수하게 하기 싫었다. 그래서 안 했다.

얘기했다시피 돌아갈 곳이 있는 자는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 여행이 끝나면 돌아가 쉴 집이 있고, 돌아가 굴려야 할 차가 있고, 돌아가 몸을 젖힐 소파와 마주할 티브이가 있는 자는 모든 것을 걸 수 없다. 자신이 떠도는 곳에 자신의 모든 것이 있지 않으므로. 하여 내가 이국의 땅에서 노가다에 별로 남아돌지도 않는 힘을 쏟아 부어야 했던 것인데…… 그랬는데, 갑자기 돌아갈 수 있는 곳, 돌아갈 수 있고 돌아가고픈 곳이 생겨버렸다면? 더 이상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 짐을 정리하고 스쿠터에 오른 아침, 아아! 그리운 곳을 향해 머물렀던 곳을 떠나는 그 아침의 공기는 어찌나 그리 상쾌하던지! 산 아래로 내려가 대로로 진입 후 진격, 우회전에 있는 타콤빠이를 지나, 좌회전에 있는 팸복 폭포를 넘어, 길가에 있는 커피 인 러브를 거쳐, 시내로 돌입.

이것들아, 오빠가 돌아왔다!
___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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