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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해서라면

너를 위해서라면

유수경 | 동아 | 2015년 06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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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6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448쪽 | 414g | 128*188*30mm
ISBN13 9791155113868
ISBN10 1155113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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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화 안 해?”
작업실 앞에 뻔뻔하게 서 있는 남자. 재수 없는 놈. 그런 그가 감히 따지듯 물었다.
“경찰에 신고할 생각 없으니까 겁먹지 말고 돌아가세요.”
“왜 전화 안 해, 아침에 했으면 오후까지 고생하지 않아도 되잖아?”
천하는 비현 성격에 불같이 화를 내며 아침에 벌써 들이닥칠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비현은 그를 찾지 않았다.
왜? 왜 화를 내며 달려오지 않을까? 천하는 비현이 너무 낙심한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다른 대안을 준비한 골탕이었지만 그 대안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저 작은 사건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심심풀이로 비현의 생활을 망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사과하고 더 좋은 일을 주려고 꾸민 일인데 그게 천하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기가 막힙니다. 진짜 뭘 먹으면 그렇게 대책이 없어지는 건가요?”
“당신이 찾아오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진즉 찾아왔으면 모두 다 잘될 일이었어.”
“진즉 찾아갔으면 둘 다 경찰서에 앉아 있어야 했어요. 아세요?”
“왜?”
“제가 당신을 가만뒀을 거 같아요? 얼굴 믿고 정신 나가더니 이제 돈 믿고 정신 나간 사람하고 상대하기 싫어요. 돈 많으신가 봐요? 좋으시겠어요.”
“비현.”
“이름도 아세요? 작업실도 알고. 그러면 다 아는 건데 이제 저는 무릎 꿇고 남은 인생 제발 괴롭히지 말라고 빌어야 하는 건가요?”
“미안하다고 말하려다가 이렇게 된 거야. 당신을 오해한 게 미안해서 사과하려는데 얼굴 보기 어렵잖아. 무서워서 그냥은 마주할 수 없었어. 돈도 많고 생긴 것도 잘난 내가 사과 한번 하려고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니까 좀 봐줘. 이 일은 진짜 내 의도는 아니야.”
“아르바이트 못 하게 한 게 천천하 씨가 아닌가요?”
“아니, 그건, 그건 내가 그런 거지만, 내 의도는…….”
“사과하려고 했다는 거 믿을 수 없어요. 이런 게 사과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어요. 배운 분이면 아시겠죠? 이거 진짜 이상한 일이에요.”
천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사과하려고 한 일은 맞지만 다른 의도도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사과보다 다른 의도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녀가 이상한 일이라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천하는 비현을 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었다. 그래서 벌인 일이었다.
화분을 배달하는 일은 위험하고 힘들어 보여서 그만두게 하고 싶었고 커피전문점 일은 남자들이 비현에게 수작을 거는 게 싫어서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이런 그의 마음을 비현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그 자신조차도 이런 자신의 마음과 이기심에 기막혀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드러낼 수 없었다.
“미안해. 내가 덜 배웠나 봐. 아무튼 사과하려던 의도는 맞아. 기분 나쁘고 힘들게 해서 미안해. 처음에 오해한 것도 미안하고. 그럴 사정이 좀 있었어. 길게 설명할 순 없지만 오래 시달려서 날카로워진 상태였어. 그때 당신을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니까 불쑥 이상한 생각이 든 거야. 미안해. 다 내 착각이었어.”
“씨.”
막장까지 갈 것 같은 얼굴로 넙죽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니 밀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현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란 결심이 수그러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바닥에 한번 패대기를 쳐야 하는 건데. 시원하게 천하를 밟아 주지 못해 속상했다. 이렇게 사과를 받아 주면 오늘 하루 종일 시달렸던 그녀의 지친 몸과 마음은 어디에서 보상을 받느냔 말이다.
“다른 아르바이트 제안하려고 했어. 다른 아르바이트 찾느라 애쓰지 마.”
“내 맘이에요.”
“들어나 보고 결정해.”
듣기도 싫고 천하와 마주하기도 싫었지만 잔뜩 숙이고 들어온 그를 계속해서 내칠 수 없었다. 이미 결심도 밀렸고 감정도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얼른 말하세요.”
“좀 어려울 수도 있어.”
막상 말하려니 갈등이 생겼다. 천하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잠깐의 시간을 벌었다.
“어려운 거 맡기려고 쉬운 아르바이트 다 잘라 낸 거예요?”
천하의 잘생긴 얼굴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바람에 비현의 눈이 사로잡혔다. 잘생긴 걸 십분 활용하는 지능까지 두루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보수는 넉넉히 줄게.”
“무슨 일인데요? 극한직업이에요?”
천하가 머뭇거리자 조금 걱정이 들었다. 이 재수 없는 남자를 아직 믿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어머, 너무 뻔뻔하신 거 아니에요?”
“당신한테는 정신병자 취급도 받았으니까 더 조심할 필요가 없지.”
비현은 기가 막히지만 그의 진지함에 함부로 비웃지는 않았다. 마침내 결심한 건지 천하가 비현을 똑바로 내려다봤다.
“여섯 살짜리 아이 좀 돌봐 줘.”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나보고 보모가 되란 말이에요? 아니, 뭘 믿고 그런 일을 저한테 맡겨요?”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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