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여름부터는 뜻밖에 괴상스러운 일이 생겨서 해만 넘어가면 행인이 뚝 그치고 근처에 있는 집마다 대문을 첩첩이 닫아걸었다. 그 사정을 알지 못하는 타지 사람들은 여전히 야밤에 무심하게 그 길로 지나가다가, 열이면 열이 다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오던 길로 되돌아서 도망쳤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와 같이들 놀랐을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p.21~22
“얘 명화야! 네 일을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마는, 그래 장씨는 네 마음에 꼭 알맞냐? 내가 잠시 보기에도 장씨의 드러난 인물이 상당한 자격은 되더라만, 내가 듣기에 미흡한 것은 그 사람 아버지가 엄절하고 규모가 삼엄하여 결코 그 아들이 첩을 두는 것을 허락할 리 만무하다 한즉, 자기 아버지가 허락을 하지 않으면 너의 소원은 헛것이 되지 않겠느냐? 아가, 이 어미의 말을 부디 허수히 듣지 말고 깊이 생각하여라.” --- p.43
“사람 가운데 누가 허물이 없겠습니까. 고치면 착한 이 된다 하니 이 몸이 비록 예전에는 문간에서 웃음이나 팔던 천기였으나 지금 와서는 한결같은 결심으로 지조를 지키어 해골을 장씨 댁 문하에 누이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말을 믿지 않으시거든 이것을 보시오.” 하며 손에 들었던 식도를 번쩍 들어 제 손가락을 탁 친다. 순식간에 선혈이 낭자하게 흥건해지며 손가락 토막이 땅에 떨어져 펄떡펄떡 뛰논다. --- p.72
“내 신세는 어머니가 망쳐 놓고 아버지 보러 간 것을 서방 만나러 갔다고 몹쓸 욕까지 하시오? 어머니 행세가 글러 남편을 버리고 뛰쳐나왔으면 당신 혼자나 나올 것이지 왜 나까지 억지로 칼부림을 하여 가며 빼앗아다가 이 꼴을 만들어 놓았소! 나를 그 꼴 만들기 때문으로 남북촌에 상당한 대우를 받는 우리집 모양이 아주 창피해서 우리 아버지께서 남을 대할 낯이 없게 하여 놓으셨소? 그 지경이니까 아버지께서 딸자식까지 진저리가 나서 다시 대면을 아니하려고 하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