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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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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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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년 0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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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13 9788935210237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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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전영애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튀빙엔대학교와 킬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96년부터 서울대에서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Freiburg 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에서 수석연구원을 겸임했다. 2011년에는 세계 독문학, 문화 분야의 최고 영예인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의 ‘괴테금메달’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으며, 같은 해 ‘서울대 교육자상’을 받았다. 서울대에서 20여 년 동안 강의한 ‘독일 명작의 이해’는 학생들이 손꼽는 명강의로, 매번 수강 정원을 초과한다. 제자들은 수업에서 맺은 인연이 소중해 졸업 후에도 오마토(5월)와 시마토(10월)란 모임을 만들어 저자와 만난다. 평생 시인으로, 학자로 살아온 저자는 최근 ‘맑은 사람을 위하여, 후학을 위하여, 시를 위하여’ 독일과 한국에 의미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2012년에는 문화 교류의 접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독일 파사우에, 차후 시인 박물관이 될 곳에 작은 한옥 정자를 지었으며, 2014년에는 여주에 공부하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여백서원을 지었다. 그동안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 파울 첼란의 시》《괴테와 발라데》《서·동 시집 연구(공저)》 《독일의 현대문학: 분단과 통일의 성찰》 등 많은 연구서를 국내와 독일에서 펴냈으며, 《카프카, 나의 카프카》 《Regenbogen f?r Franz Kafka(프란츠 카프카를 위한 무지개)》 등의 시집을 내고, 《괴테 시 전집》《서·동 시집》《데미안》《나누어진 하늘》《보리수의 밤》 등 60여 권의 책을 옮겼다. 이 책은 저자의 첫 에세이집으로 삶과 글 사이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독일과 한국을 자주 왕래하며 마음을 오간 단상, 삶의 지혜를 담았다.
그림 : 황규백
사물의 서정성을 판화로 표현해내는 작가. 프랑스 파리를 거쳐,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뉴욕근대미술관, 파리현대미술관,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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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도라와 함께 지내던 시절, 그는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가 어린 소녀 하나가 슬피 우는 모습을 보았다. 아끼던 인형을 잃은 것이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카프카가 다가가서 말했다.
“네 인형은 말이야, 그냥 여행을 떠난 거란다.”
놀라 쳐다보는 소녀에게 카프카가 덧붙였다.
“나한테 편지를 보내서 그렇게 말하던걸.”
“잘 있대요? 편지는 어디 있죠?”
“편지를 마침 집에 두고 왔구나. 내일 다시 여기로 오면 내가 가져다주마.”
그날 밤 카프카는 인형의 편지를 썼다. 다음 날 같은 자리로 가서 아직 글을 못 읽는 소녀에게 그 편지를 읽어주었다. 3주일이 넘게 이 만남은 계속되었다. (……) 목숨이 소진해 가는 세기의 작가가 한 소녀를 위하여 쓴 30여 통의 인형 편지들. 찾아질 리 없는 그 인형 편지가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_pp.17~19

만약 천사가 당신에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작가 헤벨이 주는 정답은 이렇다. 첫째 소원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 둘째 소원은 무얼 빌어야 할지 물어서 알게 된 그 소원을 비는 것. 셋째 소원은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천사가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일은 없다. 무엇을 빌어야 할지, 어느 길을 가야 할지 아는 지혜를 누가 주겠는가. 결국 내 스스로 얻은 인식과 경험과 삶에 대한 통찰이 그 지혜다. 헤벨의 정답에 한 가지 사족은 달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인지라 택해서 가고 있는 길에 후회가 아주 없을 수야 없다. 그래도 온 지혜를 모아서 어렵사리 한 선택, 추억이 묻어 있는 선택, 혹은 정말이지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던 저 어려웠던 선택을 기억하며 견뎌가야 한다고. -pp.28~29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은 다 사라져도 남아 있어야 할 그 마지막한 사람이 시인이었다. 자신들이 게토에서 겪은 그 모든 일을 기록하여 민족이 사라진 후에도 그 이야기를 글로 전할 수 있는 사람. (……) 일 년 반 정도 수용되어 있는 동안 카체넬존은 그 모든 것을 4행씩 15연으로 구성된 열다섯 편의 긴 노래로 만들어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마침내 어찌어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사흘 동안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여섯 부를 만들어놓고 숨겨두었다.
그 직후 여권이 위조임이 발각되어 그는 곧바로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실려가 목숨을 잃었고, 숨긴 여섯 부 중 두 부가 나중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한 부는 풀려나는 유대인의 가방 가죽 손잡이를 뜯고 그 안에 넣어 꿰맸던 것이고, 다른 한 부는 유리병에 담아 수용소 안 전나무 아래 파묻었던 것이다. -pp.64~65

수술은 잘 된 듯, 다음 날 보니 할머니의 고운 표정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문득 내 환자에게 이것 좀 보라며 손을 내밀더니 자신의 손바닥을 펴 보였다. 초록빛 도는 까만 돌멩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언젠가 남편이 여행에서 가져온 선물인데 늘 주머니 속 아니면 손안에 있었다고 했다.
그 돌멩이 하나를 쥐고 있으려니 저 고운 할머니가 견뎌온 외로움의 세월이, 마치 내가 살아온 것인양 아프게 눈앞에 그려졌다. 두 환자 사이에 건네진 말 없는 말도 들리는 듯했다.
‘이것 하나 들고 나도 견디고 살았거든. 지금 잠시 아플 뿐, 행복한 당신도 견뎌.’ -pp.81~82

수능인지 무슨 문제집인지 그런 데서 나온 문제라는데, 어떤 위기 상황에서 여러 연령,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그중 몇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를 희생시킬까?’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어떤 대학생이 정교한 논리로 사회복지가의 꿈을 가진 눈먼 소년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자기들은 석연치 않고 정말 모르겠으니 조언을 달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누가, 정말이지 어느 몹쓸 인간이 그런 문제를 냈단 말인가. 한참 있다가 학생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건 답을 내고 못 내고의 문제가 아니고 문제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누구를 죽여야 하는가로 문제를 내고 설득력까지 갖춘 답을 내게 한다면, 또 그 답을 낸다면 그거야말로 범죄라는 것. 세상의 큰 범죄들도 결국은 다 그렇게 해서 생겨나지 않는가.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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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선생님은 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시며 걷는 모습이었다. 걷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무언가를 열심히 생각하면서 종종걸음으로 교정을 거니시는 선생님을 보면 가끔 다가가 살짝 여쭤보고 싶었다. “선생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그러나 그런 용기가 없었던 나는 멀리서 선생님의 글과 책과 번역을 지켜보며 선생님의 고민을 글로만 가만히 훔쳐보았다. 이제 전영애 선생님 특유의 감성이 듬뿍 담긴 에세이가 어여쁜 책으로 묶여져 나오니 더없이 반갑고 설렌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선생님이 왜 항상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며 길을 걸으셨는지. 무엇이든 맹렬하게 움켜쥐고, 집요하게 탐구하는 선생님의 열정이 어떤 일상 속에서 잉태된 것인지. 이 책이 선생님의 열정을, 지혜를, 삶을 전파하는 따뜻한 메신저가 되길 빈다.

정여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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