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의 부서 전체 회의 시간. 모닝커피를 다 돌리고 난 유림이 자리에 앉아 숨 돌릴 틈도 없이 부장의 폭탄선언이 떨어졌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신입사원이 오기로 했습니다.”
신입사원?
유림은 하마터면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심장이 사정없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림이 여기, 드림제과 마케팅팀에 입사한 지 어언 삼 년차. 그러나 그 후로 공채가 없었던 탓에 여태 부서의 막내였던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신입사원이라니! 유림의 온몸의 세포가 일제히 일어나 환희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경사가 났네!
“아니, 공채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신입사원입니까?”
과장의 물음에 부장의 입에서는 갑자기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테이블에 팔을 올려놓고는 매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그 신입사원이…….”
모두들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유림도.
부서원들을 한 번 쭉 돌아본 후, 부장은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 친손자십니다.”
◇ ◆ ◇
“이거 놓으세요! 제가 오늘 아주 마시고 죽고 말겠습니다!”
거칠게 덤벼드는 유림에게서 현우가 소주병을 악착같이 지켜냈다.
“너 죽는 건 안 아까운데 술 축나는 건 아깝다. 그러니까 좀 아껴 마시자, 응?”
“정말 선배까지 이러실 겁니까?”
유림이 울화통을 터뜨렸다.
“입사 삼 년차에 겨우 들어오는 후배가 회장님 손자랍니다. 제가 지금 안 마시게 생겼습니까?”
유림이 뭐라고 하건 간에 술병만 철벽 마크하며 현우가 대꾸했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다. 너한테 하필 우리 회사에 원서를 쓰라고 한 내가 대역 죄인이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유림과 현우는 원래 같은 과를 졸업한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현우가 두 학번 위지만, 군대 갔다 와서는 학년이 같아지는 바람에 수업도 대부분 같이 들을 정도로 친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이거다. 그런데 그 후로 삼 년 동안이나 막내 노릇을 할 줄이야!
“정말 해도 너무합니다. 신입사원 들어오기만 얼마나 기다렸는데!”
유림이 서러움에 눈물을 글썽이자 그제야 현우는 개미 눈물만큼 술을 따라주었다.
“힘내라.”
“이제 낼 힘도 없단 말입니다!”
◇ ◆ ◇
신입사원, 아니, 신입사원님을 맞이할 준비로 일주일 동안 온 부서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덕분에 유림은 거의 일 년 만에 책상 정리도 했다. 그리고 [기쁘다 회장님 손자 오셨네]라는 플래카드만 빼놓고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을 때, 문제의 신입사원은 드디어 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된 차승현이라고 합니다.”
신입사원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을 때, 모든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딱 벌렸다.
물론 유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뭐지, 저 생물체는?
신입사원은 한번 보면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쌍꺼풀 없이도 시원하게 뻗은 눈매에 타고난 듯한 갈색 눈동자. 딱 좋을 정도로 오똑하니 예쁜 콧날. 완벽한 계란형을 그리는 날렵하고도 미끈한 턱선. 약간 도톰한 입술에 띤 매력적인 미소. 예쁘면서도 잘생겼고, 잘생겼으면서도 어딘가 묘한 색기가 느껴지는 분위기.
단언컨대 유림이 세상에 태어나서 본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합쳐서 제일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겉모습으로 일단 모두를 당황시킨 신입사원은, 다음 말로 아예 당황의 끝을 보여주었다.
“어차피 일 년 후에는 부장, 그다음 해에는 상무로 승진 예정입니다. 즉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는 건 올해 일 년뿐입니다만, 그때까지는 즐겁게들 지내봅시다.”
……즐겁게들 지내봅시다?
비주얼 쇼크에 빠져 있던 유림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어딜 봐서 이게 신입사원의 말투란 말인가!
상사들을 모두 멘붕에 빠뜨려놓고, 신입사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제 자리는 어디죠?”
신입사원의 자리는 하필이면 유림의 옆자리로 배치되었다. 그야 짬밥, 아니, 입사 순으로 앉으니까. 그리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유림에게 곧이어 이차 멘붕이 찾아왔다.
“가만있자. 차승현 씨 교육은……, 그렇지, 당분간 정유림 씨한테 좀 부탁해야겠군.”
부장이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불쑥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예?”
갑자기 떨어진 날벼락에 유림은 펄쩍 뛰었다.
“유림 씨가 사수잖아. 잘 가르치도록 해요.”
부장은 그렇게 말하더니 비겁하게 헛기침을 하면서 내빼고 말았다.
“참, 커피 좀 얼른 돌리고.”
그 와중에도 깨알같이 심부름 시키는 것도 잊지 않고!
속셈은 뻔했다. 딱 보아하니 회장님 손자가 보통내기가 아닌데, 괜히 일 가르치면서 말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가는 큰일이다. 그러니 아예 막내인 유림에게 폭탄을 떠맡긴 것이었다.
“유림 선배라고 하셨죠?”
유림의 옆자리에 앉은 신입사원이 예의 매력적인 미소를 띠고 말을 건넸다.
“전 에스프레소로 부탁할게요.”
이것이 신입사원, 차승현이 유림에게 건넨 첫 인사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