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랑에 관한 한시를 읽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알았죠. 나, 바보였구나.
부끄럽고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멀뚱히 서 있기만 했구나.
붙잡지도 매달리지도 못했구나.
당신도 그래요? 당신도 사랑이 지나가는 걸 보고만 있었어요?
망설이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이 글들을 썼습니다.
당신이 잘 해내면 나도 잘 해낼 것 같아서요. ---「글쓴이의 글」중에서
무엇이었을까?
그 빛은.
그 나비는.
어쩌면 나른한 햇살이 만들어낸 환각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십수년이 지나도 왜 잊히지 않는 걸까?
어떤 날, 빛은 내 피부를 콕콕 찌르며 묻는다.
정말, 누군지 모르겠어? 라고. --- p.23
내 안에,
나보다 더 슬퍼하는 누군가 있다.
나를 때리며 운다.
괜찮아지면 좋겠다. --- p.35
그녀는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말했다.
등이 축구장만큼 넓은 남자라고 했다.
무슨 말이든 하면 웃는 남자라고 했다.
생전 여자는 한 번도 안 사귀어본 것 같은 남자라고 했다.
나는 물어보았다.
“왜, 좋은 거야? 그 남자.”
그녀는 대답했다.
“몰라. 우연히 마주치거나 먼발치에서 뒷모습만 봐도 웃음이 나와.”
한 사람의 계절을 생각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나는 슬픈 계절이구나.
모르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여자를 내가 좋아한다는 것. --- p.41
삐삐로 전달할 수 있는 건 고작 번호뿐이다.
음성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 적으면
삐삐는 음성 메시지가 왔다는 걸 알려주는 것뿐이다.
그런데 몇 개의 번호만으로 말을 했다.
사랑해,
빨리 와,
나의 천사, 라고.
그러니까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음이 깊을 때, 우리는 어떡하든 그걸 전하는 방식을 찾아낸다. --- p.59
“손 놓지 마.”
“땀났는데…….”
그녀는 내 손바닥을 자신의 옷소매에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손을 잡았다.
“손 놓지 마.”
“네.” --- p.79
마음의 전부가 한 사람을 향해 있을 것.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누군가 물으면
아마 전문가인 양 하는 사람들이
연애에 관해 수십, 수백 가지 조언을 하겠지만,
그게 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건 어쩌면 아주 간단한 문제다.
마음의 아주 작은 부분도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지 않는 것,
그런 의지를 보여주는 것.
그녀가 당신에게 오래 기댈 수 있게. --- p.117
‘너를 만나는 시간 동안 한순간도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어.
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너를 만날 거야.
너를 만나는 기쁨은,
그것이 아주 짧은 시간이더라도,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니까.’
나는 지금도 그 편지를 보고 있다.
그 사람이 이 글을 읽을까?
조금이라도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되면 좋을 텐데.
하늘을 한 번 보고, 눈물을 닦고,
다시 편지를 가슴 주머니에 집어넣고 일어나서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내 일과를 이어갔다.
긴 시간, 먼 곳에서의 여정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사랑은 길고 먼 여행 같아, 라고 답장을 적어 보내야 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렇게 된다.
곁에 있어도, 곁에 없어도.
--- pp.252-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