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dhu
박시시...박시시...
선행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겠소.
덕과 복을 쌓을 수 있는 기화를 주겠고.
가짜 사두임을 알면서도 보시를 한다면
그것만큼 더한 자비가 어디 있겠소.
가짜 사두임을 알면서도 욕을 해 댄대면
그것만큼 더한 옹졸함이 어디 있겠소.
--- p.89
햇볕에 타들어가는 잿빛 피부에
몇 날 몇 달을 씻지 않았을 것만 같은 머리칼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행색에 뼈만 앙상한 걸인이 있다.
비어 있는 그릇을 들고 손을 벌리는 걸인 앞에서
나는 멎어버릴 수밖에 없다.
굳게 다문 입은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더 큰 고함으로 나를 부른다.
감은 눈은 바라보지 않아도 강한 시선을 내게 보낸다.
무엇이 이리도 나를 당황하게 하는가.
아무도 그를 걸인이라 나무랄 수 없는
삶의 현실이 눈에 비치기 때문인가.
주머니를 뒤져 얼마를 건네야 할까 하는 동전의 헤아림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눈앞에 보이는 걸인의 모습 속에서
욕구에 허기진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가.
당신은 내게 구하고자 하는 것을 바라고
나는 내게 구하고자 하는 것을 찾는다.
단지 나는 당신과 같은 애절한 구걸에 미치지 못한
구도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 당신 모습이 내 모습이고 내 모습이 당신 모습인 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p.137
집을 세 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야채 장사를 한다오. 사람들은 내가 대단한 부자일 거라 생각하고 시샘하고 부러워하지요. 사람들은 내가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어 장사를 하는 거라 생각하지요. 장사는 단지 일을 하는 방법이고 생계 수단일 뿐인데 나는 단 한 번도 재산이 많은 부자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디까지가 부자이고 무엇이 부자를 만드는 거죠? 야채 하나 제대로 팔지 못해도 그날 하루 열심히 일한 순간순간이 더없이 소중한 것을요.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한 것을요.
--- p.199
아이
아이야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길가에 나온 네가
어쩌면 그토록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니?
아이야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비렁뱅이인 네가
어쩌면 그렇게 꾸밈없는 해맑음을 가지고 있니?
--- p.221
리키를 바라보는 동안
내 전생에 소의 몸을 받았을 때, 주인이 도끼를 내리치는 순간처럼
내 전생에 개의 몸을 받았을 때, 굶주린 사람의 몽둥이를 맞는 순간처럼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내 의식을 선명하게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내 분신이
잃어버린 굳은 의식의 상자를 열어 보입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살아 숨쉬고 있는
현실만을 바라보아야 했던 그 시절을..
그때의 고통스러운 삶이 내 영혼을 더없이 성숙하게 했음을..
--- p.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