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초상화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세 말기부터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온 왕권의 이상을 형상화한다면, 초상화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엘리자베스 정부의 당면 과제인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여성 군주로서의 약점을 극복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 p.52
이자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중세적 개념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토머스 아퀴나스는 로마법의 개념을 차용했다. 로마법의 개념에 따르면 사물은 사용 후 원래의 상태대로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들non-fungible goods이 있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소비·마모·수축되어 원상태로 돌려줄 수 없는 것들fungible goods이 있는데 집이나 토지 등은 전자에 속하고 음식이나 돈은 후자의 범주에 속했다. 아퀴나스는 전자의 경우에는 사용료rent를 받을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원래의 상태대로 돌려줄 수 없으므로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남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곧 그것의 사용권(소비권)을 포함하는 소유권 자체를 넘기는 행위이며 따라서 금전 대출은 곧 화폐의 판매와 같다. 그러므로 이 경우 원금의 상환으로 쌍방 간의 거래는 종결되며 그 이외의 것, 즉 이자의 요구는 하나의 물건에 대해 두 번의 지불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아퀴나스는 이를 사기와 절도에 해당되는 범죄로 규정했다. --- p.265
엘턴은 튜더 의회가 중앙(국왕, 중앙정부)과 지방(지방 귀족, 젠트리, 법률가, 시읍borough 정부, 지방 상인 등)의 기대와 야망이 충족되고 이해가 조정되는 ‘접점point of contact’이었으며, 이는 통치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했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과 가격혁명 등이 야기한 여러 가지로 힘든 시대 상황 속에서 전문적인 직업 관료도, 정책의 집행을 물리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경찰이나 상비군도 없었던 튜더 정부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통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의회의 접점으로서의 기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 p.132
토머스 울지(1472~1530), 토머스 모어(1477~1535), 토머스 크롬웰(1485?~ 1540) 세 사람은 영국 역사의 격동기라 불리는 16세기 전반부에 헨리 8세 치하에서 재상을 지낸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하층 계급 출신이었다. 울지의 할아버지는 평범한 농부였고, 아버지는 가업을 이어받은 중농이었다가 1466년 입스위치Ipswich로 옮겨 푸줏간을 열었다. 울지보다 5년 정도 늦게 태어난 모어의 할아버지는 런던의 링컨 법학원Lincoln’s Inn 구내식당의 와인 관리인butler이었고 아버지 존 모어는 이 직업을 물려받았다가 법학원의 평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서 법학원 학생이 되었다. 그는 말년에 고위 법관직에 오르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는데, 모어가 태어났을 당시 그의 직업이 여전히 식당의 와인 관리인이었는지, 아니면 법률가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이후인지는 알 수 없다. 한편, 크롬웰의 아버지는 대장장이로 알려졌다. --- p.148
세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대역죄로 참수당하거나 참수될 처지에 놓였었다는 점이다. 모어는 1535년, 크롬웰은 1540년에 각각 대역죄로 참수되었고, 울지는 대역죄 다음으로 중대한 교황 존신죄praemunire(교황이 국왕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죄)로 유죄를 선고받아 지위와 재산을 모두 잃었으며 1530년에는 대역죄 혐의로 체포되었다. 런던으로 압송되는 길에 병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참수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실각이 국왕의 이혼 내지 재혼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 p.150
크롬웰이 1535년 6월 3일 모어를 심문한 기록을 바탕으로 둘 사이의 대화를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크롬웰: 국왕께서는 자신이 영국 교회의 수장인지 아닌지 당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것을 명령하셨다.
모어: …….
(크롬웰 재차 묻는다.)
모어: 그런 물음은 검의 양날 같은 것이다.
크롬웰: 무슨 뜻인가?
모어: 만약 어떤 사람이 국왕이 교회의 수장임을 마음속으로는 믿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국왕의 수장권을 인정한다면 그의 영혼을 속이는 것이 되고, 그렇다고 양심에 따라 국왕의 수장권을 인정하는 선서를 거부하면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크롬웰: 대법관 시절에 당신도 이단 혐의자들을 심문할 때 그들에게 교황이 교회의 수장인지 아닌지 의견을 밝히라고 강요하지 않았나? 그들도 지금의 당신과 마찬가지 상황에 있었다. 그렇다고 답변하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이 되고, 아니라고 답변하면 화형이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
모어: 두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내가 이단 혐의자들을 심문할 때에는 모든 기독교 국가에서 교황이 교회의 우두머리임을 법률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지금 영국 국왕이 영국 교회의 수장이라는 법률은 오직 영국 한 나라에만 인정되고 있을 뿐, 다른 나라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