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의 국사 또는 세계사 교과서를 끝으로 역사와 작별을 고한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도 드물다. 여기서 말하는 불행이란,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보다 폭넓고 풍부하게 가꿀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특히 세계사 교과서는 방대한 역사 지식을 극히 제한된 분량으로 압축, 단순화시켜 놓은 것이다. 수많은 인물, 사건, 지명들을 시대 순으로 나열한 무미건조한 노트에 불과한 셈이다.
앞서 말한 '불행 끝, 세계사 읽기의 행복 시작'을 알리는 책이 있다. 바로 최근 출간된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인데,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알기 쉬운~~'류의 책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모지즈 핀리, 브로노프스키, 브루스 매즐리슈 등 이 책의 필자들은 서양사학계에서는 당대 정상급의 역사학자들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정상급의 역사학자들이 집필했기에 교과서보다도 더 무미건조하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다.
예컨대 우리는 고대 사회에 노예제가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다. 사실 노예제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그리스, 로마 문명의 문화적 업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 노예제의 구체적인 모습은 교과서나 일반적인 서양사 개론서에는 나와 있지 않다. 이 책에서 모지스 핀리가 집필한 '노예 상인 티모테오스'을 통해 우리는 그 모습과 만날 수 있다. 해방 노예 출신으로서 노예 상인이 된 티모테오스라는 한 개인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어, 노예가 획득되는 과정, 노예 시장에서의 거래 관행, 주인과 노예의 복잡다단한 인간 관계, 검투사를 비롯한 전문 기능 노예가 등장하는 과정, 고대 노예제가 차지하는 문명사적 의의와 그 쇠퇴의 과정, 고대 노예제와 미국 노예제의 차이점 등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
고대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477년 무렵에 300명의 스키타이 노예들로 구성된 경찰대를 설립했다. 이후 100년 동안 유지되었는데, 그 숫자가 1,000명으로까지 늘어났고, 아크로폴리스에 주둔하기까지 했다. 노예로 구성된 경찰대라니. 당시 스키타이인들은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고, 이에 비해서 그리스인들은 거의 활쏘기를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스키타이인들의 뛰어난 활쏘기 실력을 활용할 목적으로 급기야 노예 경찰대가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카를 프리드리히가 집필한 '대립과 극단의 시대, 바로크' 부분도 특기할 만 하다. 바로크 정신이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그 대표적 예술가들이 예술사에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 바로크 예술의 발전이 그 시대 정치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바로크 양식이 중세 제도의 쇠퇴 및 근대 국가의 등장과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 이런 중요하고 흥미로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로크 회화가 인간을 시간적 배경 속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을 서술하는 부분.
'서구 세계에서 초상화는 수백 년 동안 각별한 관심사가 되어왔다. 그러나 기존의 초상화에 그려진 얼굴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젊음이나 영원한 장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크 예술은 노인과 젊은이의 초상화를 통해 최대의 걸작을 산출했다. 인간을 시간적 배경 속에서 바라보는 이러한 새로운 방식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어린이들, 그리고 렘브란트가 그린 노인들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책은, 교양으로서의 역사와 전문적인 학술 연구 분야로서의 역사 사이의 간격을 성공적으로 메워주고 있다. 요컨대 전문적인 역사학 연구 성과와 그것을 평이하게 풀어서 전달하는 글쓰기가 성공적으로 만나고 있다. 번역자의 성실함도 그러한 성공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도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게 된다.
한편 이 책과 비슷한 미덕을 지닌 책으로, 최근 풍부한 사진 자료를 수록하여 새롭게 출간된 『반 룬의 예술사 이야기』(들녘), 『서양미술사(예경)』로 널리 알려져 있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곰브리치 세계사(자작나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