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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칼라로 유혹한다

사랑은 칼라로 유혹한다

리토피아 선집-01이동
문효치 등저 | 리토피아 | 2001년 03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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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247g | 153*224*20mm
ISBN13 9788989530008
ISBN10 898953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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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아직 여물지 않은 사춘기에 더욱 아름답고 황홀하다. 그 시기의 감동은 무엇으로도 덮어지지 않는 소중한 부끄러움으로 죽는 날까지 가슴속에 묻혀있게 마련이다. 순진무구한 세계에 오직 감동만으로 가슴이 들끊던 시절, 머리 속에는 인생의 화사한 꿈으로 가득하고, 사랑하는 존재의 얼굴만 그려보아도 잠을 이루지 못하며, 그의 이름만 들어도 마냥 가슴이 설레던 시절이 바로 사춘기인 것이다.

나는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즈음부터 그녀를 알기 시작했다.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끊임없이 그녀가 등장했다. 그런 사이에 나는 알개 모르게 그녀에 대한 호기심과 친근감을 키우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그녀에게 스스로 길들여져 버리는 시간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장은 그녀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그녀의 예쁜 얼굴은 마치 전설처럼 나와 우들의 사이에 말로만 떠돌 뿐이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려면 나는 부득이 그녀의 집 근처의 개천으로 나가 하루종일 멱을 감는 수밖에 없었다. 입술이 파랗게 질리도록 물 속에 잠겨 있으면서도 내 눈을 오로지 돌다리만을 향해 있었다. 적어도 하루 한 번쯤은 그녀는 그 돌다리를 건너가곤 했으므로.

그러나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우현하게도 기가 막힌 행운이 나를 찾아왔다. 읍내로 진학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취생활을 해야 했는데, 인연치고는 정말 묘하게도 그녀의 언니가 내게 따뜻한 손길을 보내준 것이다. 언니는 갈 곳이 없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곤 했으며, 나는 거기에서 비로소 꿈에 그리던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일 학년을 막 마친 2월의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천지에는 함박눈이 가득 날리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언니를 따라 그녀의 시골집으로 들어섰으며, 묘한 방문객을 전투적인 자세로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가 질려 버리고 말았다. 가슴은 마구 콩닥거렸으며 얼굴은 주체할 수 없이 화끈거렸다. 도무지 시선을 둘 마땅한 곳도 없었다. 우리 언니는 어떻게 만난 거예요? 언제부터 만났어요? 자주 만나나요? 누나인가요? 연인인가요? 무수히 쏘아대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수줍은 어린애가 되어 별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마냥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새가슴이 되어 얼마나 버텼을까, 밖에는 눈이 그치고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그녀의 날카로움은 차츰 부드러워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나도 차츰 자신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나는 차츰 그녀의 갸름한 얼굴과 하얀 손, 그리고 가지런히 드러나 무시로 빛을 내는 치아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한껏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을 때의 그 아름다움이라니, 내게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신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우리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문득 허기를 느꼈다. 그녀가 부엌으로 나가 음식상을 차려들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녀가 집어주는 대로 내가 가래떡을 설탕을 가득 묻힌 다음, 입 속에 집어넣고 와삭 씹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가 묻힌 그것이 설탕이 아니고 조미료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뱃속의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올 듯한 메스꺼움에 나는 마루 끝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야무진 입가에 퍼뜩 번지다 사라지는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설마 일부러 그랬을 리야 없었겠지. 삼십여 년 전의 대보름날 밤을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도 가끔씩 설마를 씹는다.

그리고는 깊이 잠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혼자 웃곤 한다.
--- p.12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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