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는 거야……. 시골에는 친구도 없고 심심하잖아.”
“두 밤 자고 엄마가 데리러 갈게. 삼촌은 너 많이 보고 싶어 하던데, 재현이는 아닌가 봐?”
엄마는 내가 간다고 말할 때까지 계속 조를 것처럼 말했다. 아무래도 꼬라비 삼촌이 나를 혼자 보내라고 한 듯했다.
“내가 보고 싶으면 삼촌이 여기로 오면 되잖아.”
투덜거리다 문득 전에 꾸었던 꿈 생각이 났다. 덜 마른 흙벽에 물고기 무늬가 또렷하던 꿈.--- pp.34-35 중에서
시골 길을 달리는 동안 버스에서처럼 산, 들판, 논이 번갈아 나타났다. 어떤 키가 큰 미루나무에는 까치집이 세 개나 얹혀 있었다.
“삼촌, 무슨 집이 이렇게 멀어?”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산굽이를 세 개 돌았을 때 다시 물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꼬라비 삼촌이 대답한 후에도 차는 얼마 동안 잠자코 달리기만 했다.
“재현아, 봐. 저기 흙벽집 보이지?”
초록 잎이 가득한 나무들 사이로 집 한 채가 비스듬히 고개를 내밀었다.---p.58 중에서
“재현아, 너 그거 모르지? 잘 때면 이 집에서 이상한 소리 들리는 거.”
변소 앞 수돗물을 틀어 세수하려는데, 종도 아저씨가 물었다.
“이상한 소리요?”
종도 아저씨는 뭐가 재미있는지 말하면서 줄곧 빙글빙글 웃었다.
“그래, 너희 삼촌이 암말 않던? 아, 무서운 얘기를 하면 네가 오지 않을까 봐 말 안 했구나.”---p.65 중에서
나는 뒤집어썼던 이불을 내리고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살그머니 떴다.
어두운데도 둘레의 것들이 똑똑하게 눈에 들어왔다. 달이 무척 밝았다. 툇마루 기둥의 틀어진 주름살 같은 자국.
‘저게 대들보라는 걸 거야.’
마루 천장을 가로지르는 굵다란 나무 기둥. 대들보를 가운데 두고 서까래가 부챗살처럼 활짝 펼쳐져 있었다. 그 사이는 붉은 흙이 메우고 있었다. 대들보와 서까래는 마치 커다란 새의 가슴뼈 같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추위에 눈을 떴다.
“삼촌!”
내 목소리에 놀란 방자가 안마당을 쏜살같이 가로질렀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해야지.---pp.77-78 중에서
“처음엔 몰랐는데, 이곳에 와서 살다 보니 저절로인 것이 참 많아요. 일부러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돋아나 저절로 열매를 맺고, 지고, 또 봄이면 다시 저절로 돋아나고.”
“그렇지요? 네발 달린 동물도 깃털 달린 새도 하다못해 흙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까지도요.”
삼촌이 덧붙여 말했다.
“삼촌, 물고기들도.”
윗개울에 가는 걸 미루게 될까 봐, 나도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p.101 중에서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르겠지만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흙벽집 지붕, 툇마루, 댓돌, 대들보, 서까래, 담벽, 외양간. 이겨 바른 붉은 흙, 흙을 이기는 데 쓴 개울물, 개울에서 주워 온 크고 작은 돌, 기둥으로 쓰인 나무가 다 함께 코를 골았다.
---p.111-11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