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은 공허한 삶을 살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적절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면 자기에게 안성맞춤인 즐거운 일을 발견할 것이다. 물론 이 아가씨의 지론 가운데 결혼이라는 주제에 관해 수집한 생각들이 없을 리 없었다. 그 가운데 첫 번째는 결혼에 대해서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은 천박하다는 확신이었다. 그녀는 결혼에 대한 열망에 빠져드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여자가 특별히 취약점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홀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소 비루한 마음을 가진 이성과 교류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권 제6장 109~110면)
이사벨 자신도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상상했던 것만큼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느낀 것은 선택에 따른 막중한 책임감이나 선택의 크나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이것은 선택하고 말고 할 것이 없는 문제라고 여겨졌다. 그녀는 워버턴 경과 결혼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가 여태껏 마음에 품어 온, 아니 이제 마음에 품을 수 있게 된, 인생의 자유로운 탐구를 찬성하는 지적 선입견을 조금도 뒷받침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 사실을 편지에 써서 그를 설득해야 한다. 그 의무는 비교적 단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의아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을 어지럽힌 것은 그 굉장한 〈기회〉를 거부하는 데 거의 힘이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제한하더라도, 워버턴 경은 그녀에게 대단한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상권 제12장 207~208면)
「그럼 미국에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 「아마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여기서 지내는 것이 무척 행복하거든요.」 「당신은 조국을 포기할 생각입니까?」 「어린애처럼 굴지 마세요.」 「당신은 정말로 내 시야에서 벗어나겠군요.」 캐스퍼 웃우드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이 모든 곳들이 잘 연결되고 서로 접하고 있어서 세계가 다소 작다는 인상을 주거든요.」 「내게는 너무나 거대한 곳인데요.」 캐스퍼가 소박하게 소리쳤다. 양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사벨은 그 소박함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확고한 태도는 그녀가 최근에 받아들인 가설이랄까, 지론의 한 부분이었다. 그 지론을 철저히 밝히기 위해서 그녀는 잠시 후에 덧붙였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나를 몰인정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 당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당신과 같은 곳에 있으면 나는 당신이 나를 관찰하고 있다고 느낄 거예요. 나는 그것을 좋아할 수 없어요. 자유로움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니까요. 내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 단 한 가지 있다면,」 그녀는 다시 약간 숭고한 어조를 띠면서 말을 이었다. 「그건 내 개인적 독립성이에요.」
뉴욕 올버니 출신의 아름답고 영리한 아가씨 이사벨 아처는 방종하지만 자식에게는 너그러웠던 아버지가 죽은 후, 앞날이 막연하고 불확실한 상태에서 돌연 찾아온 이모의 제안에 따라 유럽 여행길에 나선다. 영국으로 이주하여 은행가로 성공하고 은퇴한 이모부 터치트 씨의 대저택 가든코트에 머물게 되면서, 이사벨은 상냥하고 우아한 영국 귀족 워버턴 경과 재치 있고 다정한 사촌 오빠 랠프를 알게 된다.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성공한 사업가 굿우드 씨와 워버턴 경의 청혼을 거절한 이사벨은 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꿈꾼다. 랠프는 이사벨이 이상을 펼칠 수 있도록 자기 몫을 유산을 나눠 달라고 아버지 터치트 씨에게 부탁하고, 얼마 후 터치트 씨가 죽자 이사벨은 7만 달러라는 거금을 상속받는다. 한편 이모의 친구 마담 멀을 알게 된 이사벨은 그녀의 고상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마담 멀을 통해 알게 된 길버트 오즈먼드라는 남자는 굿우드 씨나 워버턴 경의 세속적이고 인습적인 성향과는 다른 매력으로 이사벨을 사로잡는다. 결국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돈도, 명예도, 미래도 없는 오즈먼드와 결혼을 결심한 이사벨은 몇 년의 결혼 생활 후,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다시 고찰하게 되는데…….
열린책들 세계문학
낡고 먼지 쌓인 고전 읽기의 대안 불멸의 고전들이 젊고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목록 선정에서부터 경직성을 탈피한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본격 문학 거장들의 대표 걸작은 물론, 추리 문학, 환상 문학, SF 등 장르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들, 그리고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한국의 고전 문학까지를 망라한다.
더 넓은 스펙트럼, 충실하고 참신한 번역 소설 문학에 국한하지 않는 넓은 문학의 스펙트럼은 시, 기행, 기록문학, 그리고 지성사의 분수령이 된 주요 인문학 저작까지 아우른다. 원전번역주의에 입각한 충실하고 참신한 번역으로 정전 텍스트를 정립하고 상세한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를 더하여 작품과 작가에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품격과 편의, 작품의 개성을 그대로 드러낸 디자인 제작도 엄정하게 정도를 걷는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실로 꿰매어 낱장이 떨어지지 않는 정통 사철 방식,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재질을 선택한 양장 제책으로 품격과 편의성 모두를 취했다. 작품들의 개성을 중시하여 저마다 고유한 얼굴을 갖도록 일일이 따로 디자인한 표지도 열린책들 세계문학만의 특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