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거대하고도 정교한 상상의 세계를 가진 아티스트로서, 자연히 이 시대에 가장 기술적으로 복잡하고 문화적으로 보편화된 캔버스인 영화계에 몸담게 되었을 뿐이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는 에그템페라나 깃펜으로 그림을 그려 지금 못지않은 막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기예르모는 끊임없이 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빼곡히 메모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아직은 꿈틀거리는 가공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잠재의식 속에서 새롭게 길어올리고는 한다. 그렇게 얻은 이야기는 그의 영화와 책의 청사진이 된다. ---「서문」중에서
기예르모가 영화계에 입문할 때, 그의 멘토였던 하이메 움베르토 에르모시요는 항상 기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예르모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멕시코판 몰스킨 수첩을 갖고 다녔는데, 엉성하게 스프링으로 묶어놓은 노트여서 낱장이 뜯어지기 시작했지요. 결국 1986년인가 1987년쯤에 당시에는 혁신적인 데이 러너(Day Runner)를 샀죠. 처음 나왔을 때는 한 권에 80달러인가 했는데, 나한테는 휴대용 컴퓨터 대용이었죠. 나는 곧 그 파란 메모지와 사랑에 빠졌고, 지금도 60~70개의 노트 세트가 남아 있어요. 평생 동안 쓸 블루 노트를 사둘 작정이었거든요. 나는 그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고, 서로 합치기에 편리하고 아주 튼튼했기 때문에 정말 좋았어요. 촬영 중에도 항상 노트를 갖고 다녔죠. 비가 와도 젖지 않았고요. 진짜 환상적이었어요. 그것이 노트 기록의 시작이었죠.” ---「시작하는 글」중에서
블리크 하우스는 기예르모의 두 번째 집이자 사무실이고, 예술적 걸작이자 어수선한 다락방이며, 그의 자존심이자 기쁨이다. (……) 블리크 하우스는 “550점이 넘는 원본 예술품”으로 터져나갈 지경이라고 기예르모는 말한다. 최근에 블리크 하우스를 확장하면서 컬렉션이 더욱 어마어마해졌다. 처음에는 집 한 채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이웃 건물까지 사들여 확장했고, 그곳은 여전히 별개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중이다. 첫 번째 집처럼, 두 번째 집도 기예르모가 애지중지하는 소장품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두 번째 건물의 거실은 [퍼시픽 림]에 나온 크리처들의 아름다운 사전 제작 축소 모형들로 가득 차 있고, 그 양쪽으로는 스타니슬라프 주칼스키가 만든 근사한 청동상과 리들리 스콧의 SF 영화 [레전드]에서 로버트 피카르도가 연기한 메그 먹클본스의 전신 복제상이 놓여 있다. ---「블리크 하우스」중에서
[크로노스]는 기예르모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많은 신인 감독에게 첫 번째 영화는 지우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이다. (……) 하지만 기예르모의 [크로노스]는 그렇지 않다. 이 놀라운 영화는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든 공상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본성, 즉 성적 강박, 허기,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직면했을 때 무조건적인 사랑이 요구하는 선택에 대한 사적이고 심오하며 철학적인 성찰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자신의 행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던진다. ---「크로노스」중에서
결과적으로 [헬보이]는 기예르모가 스튜디오의 지원을 받아 영어로 만든 모든 작품의 고유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기예르모는 영화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기 때문이다.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은 일관적입니다. (……) 나는 여덟 편의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모든 영화로 구성된 단 한 편의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내게 그 한 편의 영화는 블리크 하우스와도 같아요. 나는 하나씩 하나씩 방을 만들어나가고 있으니, 관객은 그 집을 한눈에 전체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헬보이」중에서
[판의 미로]에서도 기예르모의 모든 영화에서 그렇듯이 악역들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들은 악하고 현실적이며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영화 속의 어떤 요소도 기예르모의 빈틈없는 검토를 피해갈 만큼 사소한 것은 없어서, 악랄한 대위의 옷차림에 대해서도 “어깨에는 코트, 장갑, 안경…… 가운데 머리 가르마, 에나멜가죽 구두”와 같이 상세하게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대위는 아들이 자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죽기 직전에 회중시계 유리를 깨뜨려 시계를 정지시키지만, 결국은 헛수고로 끝나고 만다. 이처럼 기예르모는 관객에게 악역의 정신적?육체적 갈망과 상처를 보여주려 애쓰면서도, 그들의 잔악한 행위를 변명하기보다는 괴물 속의 인간과 인간 속의 괴물을 보여주는 쪽을 택한다.
---「판의 미로」중에서